기독교 윤리
종교는 사회 규범의 원천이자 시대 정신의 선도자가 되어야한다.
종교의 원어적 의미는 최고의 가르침이며 곧 그 사람의 삶을 이끌 진리의 빛을 의미한다.
예수는 복음을 주셨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욌음은 세상을 바라볼 항상 새로울 관점을 주신거다.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아집이 아니다. 사랑은 공존이며 생육하고 번성하게하는 본질적인 원동력이다.
사랑은 적자 생존과 권력을 탐하는 우파적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상대를 파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좌파적 독단도 아니다.
사랑은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되지 않으며, 사랑은 상대를 조롱하지 않고, 나와 다름과 양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광기와는 다르다. 사랑은 다양성 존중이란 이름으로 다양성을 억합하는 독재적 궤변과는 차원이 다른 고결한 철학이다.
사랑은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로 세상을 설명하길 거부하고, 신적 권위는 오직 세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해야하는 의무를 지게하는데만 스스로를 사용하길 허용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며, 사랑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사랑은 고여 썩는 물이 아니며, 사랑은 급진적인 것도 아니다.
사랑은 정치를 위해 소모될 도구가 아니며, 사랑은 침묵의 나선이 만든 집단 광기의 대변자도 아니다.
쉽게 말해 사랑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입장의 대변자가 아니다. 사랑은 스스로 정의라 말하는 사기꾼의 증인이 되길 거부하고 사랑 스스로가 재판관이 되어 심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이는 창조주의 철저한 자기 비하와 자기 제한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된 복음이다.
사랑은 근거다. 모두가 너를 가치 없다 말할때 너의 곁에 서서 너가 존귀하다 말해줄 너의 최후의 변호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다스리길 원한다. 모든 논리가 사랑 앞에 재정립되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생육하고 번성하길 원한다. 사랑이 다스리며 사랑으로 다스리길 원한다.
그 통치를 바실레이아라하며, 그 나라를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라 정의했다.
사랑은 참으로 정의롭다. 항상 그대 곁에 있지만 한데 머무르길 거부하며 개혁의 계속을 요구한다.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사랑에 반대되는 모든 것으로 부터 돌이키길 원한다. 사랑은 참으로 독단적으로 회개하길 원한다.
하지만 사랑은 궁극적인 자유의 근거이며, 모든 책임의 총체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랑 외엔 공의가 드러나는 바가 없다.
사랑은 참으로 의롭고, 사랑은 참으로 무한하다. 그 의로움이 무한하며, 이로써 그 영광이 참으로 빛난다.
내가 못가르친게 문제다. 내가 못가르친 이유는 내가 부족해서다. 내가 더 사랑했다면더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알아갔을 것이다.
함께 부족함을 채우며 함께 스스로 정답 내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웠을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은 돌이키게하고
그 다음으로 사랑은 겸손하게 했다.
내가 작아져서 내 좁은 세상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게 했다. 사랑으로 나의 세상이 바뀌었다면 그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까.
하나님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길 원하신게 아닐까.
하나 확신하는건 내가 적은 이 글도 정답은 아니란 것이다. 난 여전히 질문한다. 그 사랑을 더 알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