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독사 ; 우리의 죽음

기독교 윤리

by 광규김

<청년 고독사>


한 기사에서 봤다. 우리의 죽음에
그 앞에 ‘대책 없는’이란 단어를 붙이더라
정말이지 요즘은 좋은 소식 하나 없다.

문장들이 사회를 아프게 꿰뚫을수록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깊은 곳에서부터 생각이 올라왔다.

"사회적 고아"
세상에 던져진 청년.
우리를 부르는 말이다.중장년층부터 노인들에겐
그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하는데
청년들은 그런게 참 어렵다했다.

우리 청년들 혼자 버티는 사람 참 많고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이랑 연락 한번
얼굴 한번 볼 수 없는 청년이
참 많더라.
특히 요즘 같은 시대는 더 그렇다.

미래를 책임져야할 우리는
가장 사회의 외각에 살며
배고품과 추위에 떨었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이 참 많아지고 있다.
발 붙일 곳 없고, 찾아오는 이들도 없는데
이젠 찾아갈 공동체도 아픔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나는 예수님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관계, 그토록 공동체, 그리도 하나됨을 제창하면 뭣하는가.

고독해서 교회를 떠났다면
그 울타리 안엔 안계신 예수를 찾아 나간게 아니겠는가? 무릇 탕자는 아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픈 마음이 향하는 그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청원하는 일꾼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부끄러웠다.

신학을 배우기도 전에
아주 오래전에
외롭게 죽는 이들이 없게하겠다는
그 부르심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이들을
나는 얼마나 품고 돌봐왔나
얼마나 저들을 사랑했던가.

가난과 무기력은 정신의 죽음이며

고독은 인격의 죽음이다.

살아있을 때에 달래지 않으면
그들의 넋은 온데간데 없다.

대책이 없다
우리 청년들.

요즘은 이들을 위해
잘 되게 해달라 기도하기 보다
외롭지 않게 해달라 기도한다.

기도를 할때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 말이 빠지지 않고
입술에서 뛰쳐나온다

아플 때 걱정해줄 사람
슬플 때 붙잡고 울 수 있는 사람
기쁠때 축하해줄 사람...
그들의 감정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들의 정서를 알고싶어하는 그런 사람
꼭 곁에 붙여달라고

없으면 제 몸이 부서져라 보내사
저들 한사람에게라도 더 보내달라고

동행과 위로는
창조주의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을
사역자라 하며
우리는 그 일을 명할 때
선교라 부른다.

사람을 아무것이라도 만들어 주는건
오직 그를 안다고 말해줄 인격일뿐임을
계획도 수단도 없이 죽어가는 외로운 청년들
주님을 알아가려듯 이들을 알아야한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 주께하듯 하라
주님은 언제나 이들의 곤고함 속에 계신다.

가나안 교인.
목장 밖의 형제들이 있다.

여전히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찾아
쥐엄열매 씹으며 성전 없는 광야를 배회한다.
외치는 소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외치는 그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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