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무엇을 원하십니까.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직위를 떠올립니다. 혹은 더 날씬한 몸, 더 세련된 취향, 더 인상적인 이력을 갈구합니다. 이러한 대상을 원한다면, 그 갈망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추적해 보아야 합니다.
특정 사물이나 삶의 형태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누군가 그것을 누리는 모습을 보고 돌연 원하게 된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혹은 손에 넣었을 때 아무렇지 않았던 대상이 타인의 부러움을 사자 갑자기 귀하게 보입니다. 반대로 이미 소유했음에도 타인이 더 나은 것을 차지하자 내것이 초라해 보입니다. 우리 욕망이 내면에서 자생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이자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평생에 걸쳐 인간의 욕망이 자발적이지 않다는 통찰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수많은 소설을 분석하며 공통된 양상을 발견합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의 영웅들을 모델로 삼아 그들의 위업을 갈망합니다. 플로베르의 엠마 보바리는 낭만주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을 주시하며 그 삶을 좇습니다. 스탕달의 주인공들은 귀족 사회의 인물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지위와 연인을 탐합니다. (출처: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1961)
지라르는 이를 모방 욕망(Mimetic Desire)이라 했습니다. 욕망은 언제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라는 삼각형 구조를 취합니다. 주체는 대상을 직접 원하지 않습니다. 중개자가 그 대상을 갈망하기에 주체 역시 동일한 대상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욕망은 타자를 모방합니다.
내 욕망이 온전히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 짐짓 불쾌감을 자아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라르는 이것이야말로 인간 욕망을 관통하는 구조적 진실로 규정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타인이 무언가를 원할 때 비로소 자신도 그것을 원하기 시작합니다. 타인의 시선이 대상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지라르의 통찰은 이 모방 욕망이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는다는 분석에서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중개자와 내가 동일한 대상을 원하면, 우리는 즉각 경쟁자로 전락합니다. 처음에는 중개자를 동경하고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대상을 두고 경합하는 순간, 중개자는 쟁취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변모합니다. 존경은 경쟁으로, 경쟁은 적대로 악화합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인간 사회가 겪는 폭력과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진단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 구조를 극한으로 증폭합니다. 과거에는 모방의 중개자가 생활 반경 안의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만 명의 삶을 실시간으로 관찰합니다. 타인이 무엇을 소비하고 어디를 방문하며 어떠한 일상을 누리는지 쉴 새 없이 지켜봅니다. 끝없는 전시 속에서 모방의 중개자는 무한히 증식합니다. 욕망의 대상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합니다. 갈구하는 대상을 손에 넣지 못할 때마다 박탈감의 깊이도 끝없이 깊어집니다.
창세기 3장은 욕망의 기원을 파헤치는 오래된 서사를 전합니다. 뱀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묻습니다. (참고: 창세기 3장 1절) 이 질문 이전에 하와가 그 열매를 특별히 탐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욕망은 타자의 질문을 거쳐 촉발합니다. 뱀이 열매를 가리키자, 하와는 비로소 그것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지라르 자신도 이 성서 본문을 모방 욕망의 원형으로 독해합니다. 욕망은 외부로부터 다가오며, 금지와 결합할 때 더욱 맹렬하게 타오릅니다. 먹지 말라는 절대자의 명령이 도리어 그 대상을 치명적인 욕망의 표적으로 둔갑시킵니다. 하지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싶어지는 못된 심보가 여느 사람에게나 있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독해법은 욕망을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타락으로 축소하지 말아야함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 욕망을 형성하는 구조적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이 오래된 텍스트는 인간이 모방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지난한지 고발합니다.
이 통찰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마주합니다. 먼저 허무함에 빠집니다. 내가 열렬히 추구해 온 대상이 타인의 욕망을 복사한 결과물이라면,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러나 이 통찰은 새로운 인식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다르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갈구하는 대상이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지, 아니면 누군가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좇고 있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모든 욕망이 모방에서 기인한다 하더라도, 누구를 모델로 삼을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남습니다.
지라르는 욕망의 악순환을 끊어낼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모델, 즉 자신을 모방의 대상으로 내세우지 않는 존재를 갈망하라고 제안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는 다음 글에서 이어갑니다. 지금은 이 단 하나의 질문을 마주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상을 진정으로 나 스스로 원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