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용기
"용기란 불안이 부재하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불안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다섯 편에 걸쳐 정체성의 위기를 여러 각도로 살폈습니다. 자아는 고체에서 액체로 변했습니다. 삶은 전시장으로 탈바꿈했고, 또한 자아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에 자존감을 의탁합니다. 무리 속에 숨어 안락한 도피를 즐깁니다.
진정성을 찾으라는 요구는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이 시대가 빚어낸 거대한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연재를 시작하며 섣부른 처방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도 원칙을 지키려 애씁니다. 다만, 구체적인 해법 대신 우리가 딛고 나아갈 자리를 가늠해야 합니다. 그것이 글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책무입니다.
20세기 신학의 거장 폴 틸리히는 1952년 저서 존재의 용기를 출간했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목격하고 나치즘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 망명자로 살았던 신학자의 기록입니다. 그는 책의 중심에 이 질문을 놓습니다. 불안이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조건이라면,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합니까.
틸리히가 논하는 불안은 존재론적 불안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의미를 추구하고 선택과 책임 앞에 서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이 불안을 겪습니다. 그는 불안을 소멸시키는 대신 용기(Courage)를 제안합니다. 더 정확히는 자기 긍정의 용기(The Courage to Be)를 역설합니다. 불안과 유한성, 끝없는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존재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 용기의 기원을 틸리히는 신학적으로 답변합니다. 하지만 그의 논의는 얄팍한 종교적 위로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용기가 존재 자체의 힘(The Power of Being-Itself)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유한한 인간을 지탱하는 무한한 근거를 신뢰합니다. 요동치는 것들을 밑바탕에서 받쳐주는 굳건한 토대를 인식합니다.
이를 반드시 신학의 문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이 통찰은 매우 중요한 진실을 일깨웁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완벽히 소거한 상태에서 탄생하지 않습니다. 불안을 모두 해결해야만 비로소 용기 있게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불안과 함께 서는 일, 흔들림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용기를 증명합니다.
시편 22편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망적인 부르짖음으로 시작합니다. 절대자가 침묵하는 듯한 상황에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나 시편의 화자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습니다. 응답이 도착하기 전에, 현실이 바뀌기 전에, 시인은 끊임없이 절대자에게 말을 건넵니다.
성서는 이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확신이 넘쳐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는 채로 계속 시선을 맞춥니다. 불안을 말끔히 해결해서가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냅니다.
틸리히가 역설한 존재의 용기와 시편이 보여주는 신앙의 태도는 서로 다른 언어로 동일한 진실을 가리킵니다. 용기는 완벽하게 도달하는 고지가 아닙니다. 목적지를 향해 기꺼이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구조적으로 살폈습니다. 이 위기가 개인의 나약함에서 기인하지 않고 시대의 척박한 조건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거대한 구조 안에서 각자가 어디쯤 서 있는지 선명하게 인식하려 애썼습니다.
정체성의 위기를 단번에 타개할 해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짊어져야 할 조건입니다. 바우만이 통찰한 액체 근대는 비가역적입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으로, 다시 과거의 단단한 고체로 회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놓인 조건을 아는 상황과 모르는 상황은 전혀 지반을 밟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변적인 조건 안에서도 스스로 길을 선택하는 태도는 삶을 전혀 다른 궤도로 이끕니다.
존재의 용기란 어떤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까? 자아가 끊임없이 유동하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군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이 용기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불완전한 채로 자리를 지킵니다. 흔들리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고 나아갑니다. 이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용기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