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 #2 -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본업

by 광규

*본 글은 김규광 전도사의 설교 나눔 원고입니다.


멍에 #2


[예수님의 책임감]

자식이 쉬기 위해서 부모는 쉴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힘들때에 기대고 싶은 버팀목입니다.

그런 생각을 벗어나 우리가 책임감을 배울 때는 대개, 부모님의 등이 점점 작아질때,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늙음을 느꼈을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곧 아이의 휴식은 아이의 평안은 부모님이 일함을 의미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편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편해서는 안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못하겠다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힘들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못하겠다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은 어땠을까요?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예수라는 분은 결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이야기 속에서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던 때에 헤롯의 유아 살해로 인하여 베들레헴 인근의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무참히 죽임을 당합니다. 이게 바로 헤롯의 영아 살해사건이에요. 예수님 살면서 평생 이 비극에 대해서 알지 못하셨을까요? 평생 따라다녔을거에요. 별이 되어버린 무고한 생명과 부모의 눈물이 평생에 예수님을 따라다녔을거에요. 예수가 짊어진건 단순한 나무 십자가가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소명 때문에 자리를 피한적은 있어도, 소명 앞에서 도망칠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의 인생은 포기가 허락된 삶이 아니었어요.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도다.” 평강의 왕에겐 평안한 잠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살기 위해서 그리고 죽기 위해서 살아야했고, 강해야했습니다.

그분은 인자하셨지만, 그가 살았던 세상은 그에게 인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늘 나눈 말씀에 담긴 진심이 느껴질지도 몰라요.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우리는 하나님께 못하겠다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힘들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못하겠다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쉼을 주기 위해서.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평생 연약하더라도 누군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끊임 없이 일을 해야해요.

그게 우리가 오늘날 쉽게 찬양하고, 쉽게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남겨질 이들에게]

교회의 일은 남겨진 이들 곧 계속 살아가야만하는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해야할 날것의 복음은 무례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를하며 항상 양해를 구합니다. 불편할거에요. 듣기 힘들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아픈 마음으로 설교를 전할때마다 여러분도 간혹 울더라고요.

많이 힘드셨나봐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오늘도 저는 이 말을 전해드려야합니다.


살아가세요. 살아주세요.


이건 당신더러 1%의 신앙 간증을 하는 사람이 되리라는 축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야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살아주라는 말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면 예수님 배신하겠죠.

사소한 유혹에 약해져서 찬양하며 받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겠죠.

그래도 살아달라는 말입니다.


당신이기 때문에 주님은 당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삶이야 말로 최고의 선물이지만

인생이야 말로 우리의 멍에이며, 질고입니다.


[기도한들]

평생 기도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평생 치열한 싸움을 해야합니다.


당신의 뜻과는 다르겠죠. 원하던 행복과는 다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주님의 뜻은 이뤄지겠죠.


당신의 부족함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당신을 압도려는 고난 앞에서도 선한 뜻이 이뤄짐을 목도하게 될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께 변명이 되지 않을만큼 당신은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결과는 모릅니다. 완전 망한것 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그때에 당신은 에수님을 떠올리셔야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멀리 돌아가시며, 때로는 넒은 문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앞길을 아는 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으시고, 안정되지 않은 어려움 속으로 던지실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 예수의 멍에를 짊어지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쉬우십니까?


실패하고,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게 쉽습니까?

고난중에 감사하는거요? 그 말이 당신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원망하고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지금까지, 바로 이 자리까지 당신을 준비시키시고 이끄신 하나님을 믿으세요?


내 실패는 나의 실패로 밖에 보시지 않으십니까? 넘어지면 당장 하나님 생각 안납니다. 아프니까요. 그게 현실이죠.


하지만 그럴 때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격려하실거에요. 너는 나의 사람이라고. 나의 일꾼이라고.

이 순간을 위해 너를 준비시켰다고. 말 하실지도 몰라요.


뭐 음성을 들으라 그런게 아니라요.

모든 희망의 줄이 내게서 끊어진 것 같을 그럴 순간이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이끄셨다면 왜 이렇게 되느냐는 순간 있잖아요. 그곳에 있는게 하나님의 뜻이라면요. 지금까지 그러셨듯 앞으로도 당신의 길을 책임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게 당신께 전해드릴 쉼이에요. 계속 살아가세요. 괜찮아요. 살아도 되요.

인생의 끝은 죽음이라는 안식을 바라보기보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주님의 쉼을 바라보고 걸어가세요.


십자가도 짊어지셨던 하나님께, 세상 무엇보다 귀하고 아름답게 당신을 지으신 하나님께, 당신의 눈물을 바라보시는 일이 쉬울까요? 여러분을 조금만 알고 많이 사랑하지 못하는 저도 힘든데, 하나님께는 차라기 십자가 쉬웠던거야. 차라리 침 뱉음 당하고, 채찍에 맞는게 쉬웠던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랑 앞에서 겸손해지세요. 당신에게 생명을 주신 놀라운 사랑 앞에서 겸손해지세요.


[가공되지 않은 복음]

가공되지 않은 복음은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혼나는데 엄청 혼나는데 그게 위로가 돼.


막 아프게 맞는데, 양쪽에 날선 칼로 나를 찌르는 것 같은데, 마치 수술받듯이 이전에 아팠던 곳들이 치료가 돼.


감동을 쥐어짜내는게 아닌데, 혼자 막 울어, 맞아서 우는게 아니라 사랑이 느껴져서 울어.

억울해서 우는게 아니라. 죄송하고 감사해서 울어. 그래 그래서 이랬던거구나.

그렇다면 알지 못하는 미래 앞에서 우리는 불안이 아니라 평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실거니까.


그게 살아있는 복음. 먹기 불편한 복음이에요. 짊어지기 전에는 죽을만큼 싫고, 무거운 짐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막상 짊어지면 그보다 평안할 때가 없어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이미 주님이 짊어지셨기 때문에 생명은 당신의 인생과 만났을 때에 어떠한 울림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수고하고 짐진 여러분. 복음을 짊어지세요. 소명의 날이 끝날때까지 계속 살아가세요.

그게 당신께 전해드릴 마음을 쉬게하는 복음입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짊어지실겁니다. 힘들 때는 주님의 등에 엎여서라도 계속 살아가주세요. 그게 당신의 쉼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한번씩 저를 찾아오셔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힘든 얘기도 괜찮습니다. 아픈 얘기도 괜찮아요. 저는 좋거든요. 당신과 하나님의 이야기니까요. 제가 사랑하는게 다 있잖아요.


그래요. 그 이야기는 베스트 셀러는 아니겠죠. 1%의 간증도 아니겠죠.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좋습니다.

저는 궁금하거든요. 저는 기쁘거든요. 바로 당신의 이야기. 99%의 평범한 이들이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 지칠때 위로받고, 힘들때 기대어봤는 그 간증들이요. 차마 메달릴 곳이 없어서 나지막히 한숨 섞어 “주님”하고 불러봤던 그 별볼일 없는 경험이요. 비록 그 이야기가 아픔으로 멍들어있어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로 그때에 당신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는 생명이 있어요. 그게 바로 바로 무너져가는 한국 교회를 살릴 간증입니다.


언젠가 한번쯤 교회로 찾아오셔서. 내가 그동안 참아왔던 이 길위에 있게 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내가 이 시간가운데 있음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말씀해 주실날을 기다릴게요.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주님. 저 계속 살아도 됩니까?”. 계속 내 멍에를 짊어져 주시겠냐고, 변한적 없으셨던 예수께 찾아가세요.


그 믿음의 싸움을 다 마치기 위해서 여러분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좀 가지십쇼. 서로 사랑 좀 하십쇼. 그렇게 주님의 복음을 배우세요.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힘. 생명. 곧 복음을 짊어지시고 걸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예수께로 오라. 그가 너희를 쉬게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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