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을 통해서 바라본 사랑의 힘

청년 헤겔의 사랑 개념

by seoho

헤겔의 사랑 개념은 청년과 중년, 노년 시기 각각 다르다. 청년 시기에 헤겔은 낭만주의 학파와 가까이 어울리며 사랑에 막강한 힘이 있다고 여겼지만 예나시기 이후, 그리고 절친한 친구였던 횔덜린이 사랑의 아이러니(역설)로 인해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것을 옆에서 지켜봐온 그는 중년기 이후 사랑의 지위를 협소화시킨다. 그럼에도 헤겔에게 있어서 그가 사랑을 통해 내보이고자 했던 '통일성을 형성하는 힘'은 청년, 중년, 노년에까지 지속적으로 연명한다고 바라본다.

그 중에서 청년 시기 헤겔은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우선 헤겔을 비롯한 근대 독일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에게 있어 종교와 신학은 그들이 학문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는 데에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섭리로 작용한다. 권위 있는 독일 근대 철학 연구자인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Beiser에 따르면 당시 프로이센 왕국은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가장 굳건하고 널리 퍼져있는 하나의 믿음이었다. 바이저에 따르면 섭리에 대한 믿음은 사회적, 정치적 위계질서 전체가 신의 계획을 반영하고 있으며, 완벽한 정의는 지상 너머의 천국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이라고 기술한다.

이러한 뿌리 깊은 믿음에 근거하여 청년 헤겔은 사랑을 도덕, 곧 인륜이라고 바라보며 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인다. 튀빙겐 신학교를 다니던 헤겔은 신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베른과 프랑크푸르트 시기에 기독교에 대한 철학적 탐독을 진행한다. 청년 시기 대표적인 텍스트를 보면 「예수의 생애」 「기독교의 실정성」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으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대립시키며 예수의 도덕적 교훈을 '사랑' '도덕'으로 지목하며 통일적인 힘을 형성하는 동시에 현재의 억압적인 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형성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기술한다.


청년 헤겔의 문제 의식은 무엇이었을까. 청년 시기 낭만주의 학파의 유명 인사들과 두루 교류했던 그는 초기 낭만주의학파와 동일한 문제 의식을 지닌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공동체주의 전통을 부활시켜 공동체와 개인의 통일을 추구하며, 데카르트와 칸트의 기계론적인 자연을 거부하고 유기체적 자연에 대한 토대를 마련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세부적 문제 의식은 다시금 '신, 자연, 인간의 조화'라는 더 넓은 문제 의식으로 귀결되며 종교와 사랑이라는 보편적 윤리학은 긴밀한 연결 고리를 쥐게 된다.

청년 헤겔이 진단한 시대상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그의 문제 의식은 「기독교의 실정성」을 통해 첨예하게 나와있는데, 해당 논문은 '실정성Positivität'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청년 헤겔이 개념화한 실정성이란 단단히 굳어져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성으로 대표적으로 종교의 율법이나 계율, 그리고 근대 국가의 삼권 분립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실정적 기독교는 율법과 계율로 인해 주체를 억압하며 감정도 역시 명령받게 되는 이상한 모순에 처하게 되는데, 헤겔의 기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정도 명령을 받게 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가 초래되었다. 첫째, 자기기만, 즉 누구나 미리 규정되어 있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또는 누군가의 감정이 책 속에 기술되어 있는 것과 일치하다는 믿음. 물론 이때 인공적으로 산출된 감정이 힘이나 가치에 있어서 진실하고 자연적인 감정과 동등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둘째, 이러한 자기기만의 결과는 허구적 평온함이다. 이 허구적인 평온함은 정신적인 온실에서 조작된 이러한 감정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이 감정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허구적 평온함은 힘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허약하며, 누군가가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경우 그는 곤궁함, 불안 그리고 자기 불신 등에로 침몰한다.

「기독교의 실정성」346p.

신경으로부터 비롯한 단 하나의 계율, 율법, 명령에만 의존한 실정적 기독교는 감정의 자기기만으로 나타나며 그로부터 허구적 평온함 혹은 공허한 평화로 이어진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율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의 내재적 도덕성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어 내적일치Einhiet를 이루는 내재적 힘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헤겔은 몽테스키외에 의해 제출된 근대국가의 이념을 비판한다.

자기의 고유한 활동의 산물로 간주되던 국가상이 시민의 영혼에서 멀어져 갔다. 전체를 배려하고 감독하는 것을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의 영혼이 도맡게 되었다. 각 개인들은 각기 배당된 위치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위치는 다소간 제약된 것이며 자기 이웃의 그것과 다른 것이다. 국가기구의 행정은 소수의 시민들이 전담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단지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봉사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는 오직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온다. 전체는 잘게 쪼개져 각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할당되었고, 그 부분들은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볼 때 너무 사소한 것이어서 결국 각 부분들은 이 관계를 알거나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국가가 백성들에게 주입시ㅣ는 커다란 목적은 국가 안에서의 효율성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은 돈벌이나 호구지책이었으며, 따라서 공허한 것이었다. 이제 모든 행위와 모든 목적이 개인적인 것과 연관되고, 전체를 위한, 즉 이념을 위한 행위는 더 이상 있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거나 아니면 다른 특정한 개인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되었다.

「기독교의 실정성」379p.

근현대 공화제 민주주의를 정립한 삼권분립을 제출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위와 같은 공동체와 개인 간의 간극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적 공동체주의의 부활을 염두에 둔다. 청년 헤겔과 초기 낭만주의학파는 고대 그리스를 '아름다운 인륜'으로 묘사했는데, 공동체와 개별자가 조화를 이뤘지만 개별자의 주체성이 소거되어 있는 상태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고대 국가는 공동체와 개별자의 합목적성이 유기적으로 조화되어 있는, 개별자가 공동체에 직접적으로 관계맺고 있기에 공동체나 국가로부터 소외를 느끼지 않는 상태였는데, 몽테스키외에 의해 제출된 근대국가의 이념은 개별자들의 정치적 자유가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한다.

이처럼 헤겔이 진단한 근대적 분열상은 1)실정적 종교의 계율적 억압과 2)근대적 국가상의 도래로 인한 공동체와 개별자의 분열이다. 헤겔은 이를 통일하고 조화하는 원리로 사랑을 지목하며, 그 원형을 예수에게서 찾는다. 청년 헤겔은 예수를 "유대교에 인간을 대립시킨 도덕종교의 교사"로 이해하며, 그가 설파한 것이 오직 '종교적 믿음' 뿐만이 아닌 '도덕적 사랑'도 포함된다고 기술한다.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에서 사랑을 "보편적 인류애로서 통일의 욕구"라고 이해한다. 이와 같은 보편적 욕구인 사랑은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주고받음'이다.

참된 통일, 즉 본래적인 사랑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서만 발생한다. 이들은 힘에 있어서 서로 동등하며, 따라서 철저하게 서로에 대해 살아 있는 자들이며, 어느 쪽에 의해서도 죽은 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대립을 배제한다. [...] 사랑은 감정이지만, 그렇다고 개별적인 감정은 아니다. 개별적인 감정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개별 감정으로부터 전체적인 삶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종교와 사랑에 대한 단편들」445p.


사랑은 상호적인 주고받음이다. 사랑은 자기의 줌이 거절될까봐 떨며, 자기의 받음이 대립자를 이기지 못할까봐 떤다. 사랑은 희망이 자기를 기만하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철저히 발견할 수 있을지 알고자 한다. 받은 자는 그것을 통해 타자보다 부유하게 되지 않는다. 그는 물론 풍요롭게 되지만 타자 역시 동일하게 풍요롭게 된다. 마찬가지로 주는 자는 더 가난하게 되지 않는다. 그는 타자에게 줌으로써 그 만큼 더 자신의 보물을 늘린다. [...] 그리고 동시에 자연의 모든 삶으로부터 사랑을 마시기 위해 자연 전체의 다양성을 회집하는 무한한 통일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

「종교와 사랑에 대한 단편들」447-448p.

상호적인 주고받음인 사랑은 '살아 있는 개별자들'에게서 발생한다. 즉, 인격으로 치부되는 개별자들에게서 발생한다. 이러한 사랑은 무한한 원환을 그리며 진정한 통일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데, 그 통일은 바로 실정성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고, 근대 국가의 분열상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낭만주의와 청년 헤겔이 갈리게 된다. '사랑이 무한한 원환을 그리며 상호적 주고받음을 행하는 것'을 흔히 '이로니Ironie' 혹은 '아이러니Irony'라고 한다. 헤겔은 낭만주의 학자의 대명사인 슐레겔의 작품 『루친데』를 이로니의 대명사로 지목하며 비판하는데, 『루친데』에서 사랑은 결혼이라는 인륜성을 거부하고 유한자로서 개인이 초월적 무한자의 특성을 누리며 계속하여 불완전한 이로니를 행한다. 이러한 낭만적 사랑은 사랑을 실체 그 자체로 파악한 것으로 주체에게 끔찍한 비극을 초래한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안티고네」이다.

반면 헤겔은 사랑의 이로니가 '참된 통일'에 도달하면 그 원환 그리기를 멈춘다라고 지목하며 사랑의 목적지가 '참된 통일' '통일성'임을 명확히 지목한다. 이러한 청년 헤겔의 문제 의식은 예나시기를 거치며 기각된다. 그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정립하면서 사랑이 더 이상 통일의 원리로 제출될 수 없다고 생각의 전회를 행하지만 청년 헤겔 시기 그가 품었던 사랑의 원류인 '통일을 이루는 힘'은 지속하여 남아있다.

가령 노년시기 텍스트인 『법철학』에서 그는 인륜적 공동체의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원리로 바로 '사랑'을 지목한다.

가족은 정신의 직접적 실체성으로서 사랑이라는 감정상의 통일을 기초로 성립된다. 여기에 요구되는 마음가짐은 가족이라는 완전무결한 본질의 일체성 속에 스스로의 개성이 스며들어 있음을 자각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가 아닌 그 일원으로서 존재하는데 있다.

『법철학』§158

공동체와 개별자를 통일하는 원류는 언제나 사랑이다. 다만 그것이 감정에만 즉자적으로(즉, 무매개적으로) 머물러 있으면 앞서 살펴본『루친데』의 경우와 「안티고네」의 경우처럼 주체는 비극을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에 중년기와 노년기의 헤겔은 이 사랑이 제도 속에서 안정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 결실로 결혼이라는 의례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탄생한다고 기술한다.


청년 헤겔은 사랑을 실정적 상징 체계를 넘어서는 힘이자 그로부터 형성할 수 있는 통일의 원류로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과 노년기 헤겔의 사랑 개념에 방점을 찍지만 청년 헤겔 시기 그가 기술해간 사랑 개념을 재고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헤겔의 양가성을 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청년 헤겔이 지녔던 사랑의 개념화는 한 마디로 실정성에 대립할 수 있는 부정성Negativität이다. 이러한 사랑의 개념화, 즉 보편적 인류애로서의 욕구 혹은 참된 통일의 원리로서의 그 사랑의 개념화가 현대 억압받고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 사랑을 구원하며, 현재의 실정적 상징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하나의 진단적 척도로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참고


F. Beiser, 심철민 옮김, 『계몽, 혁명, 낭만주의』, 도서출판b, 2020년

G.W.F. Hegel, 정대성 옮김,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 그린비, 2018년

G.W.F. Hegel, 임석진 옮김, 『법철학』, 한길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