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이가 맺어준 인연, 궁촌동 마을회관의 할머니들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by 장병조

보령 출발 전날 새벽, 방꾸녀의 몸 이곳저곳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곳곳에 땀띠가 난 것이다. 자는 동안 날씨가 너무 덥고 습했기 때문이다. 잘 때는 간지럽기만 했지만, 아침에 일어난 뒤로 조금씩 따가워지더니 보령에 도착했을 때는 약을 발라야만 할 정도로 피부 상태가 악화됐다. 마냥 즐거울 줄만 알았던 방꾸녀의 바닷가 여행이 험난해지기 시작했다.


방꾸녀가 땀띠의 심각성을 처음 느낀 것은 대천역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던 때다. 보령의 대천역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지하철과 기차를 탔기에 에어컨이 항시 틀어져 있었고, 방꾸녀의 피부는 보송보송했다. 반면, 대천역에서 식당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는데, 에어컨이 없는 야외에서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다 보니 방꾸녀는 땀을 뻘뻘 흘렸다. 그 바람에 피부는 점점 끈적해졌다. 동시에 피부가 점점 심하게 따가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땀띠 연고를 하나 구매해야겠다고 판단한 방꾸쟁이들은 가장 가까운 약국을 검색했다. 찾아보니 식당으로부터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약국이 위치했다. 멀지 않았다. 방꾸쟁이들은 최대한 빠르면서도 땀을 흘리지 않는 속도로 약국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방꾸쟁이들이 도착했을 때, 약국은 닫혀 있었다. 약사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약국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약국으로 향하는 길에는 마을이 여럿 자리 잡고 있었다. 방꾸쟁이들은 그중 ‘궁촌 2통’을 지나쳐 갔다. 궁촌 2통은 골목골목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예쁜 마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거리에는 사과나무가, 집집마다는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는 점이 방꾸쟁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렇게 알록달록한 마을을 그냥 지나갈 수 있을 리가 있나, 방꾸쟁이들은 약국에 가기 전 마을을 조금 구경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땀띠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오늘 보령이 아니기에 마을을 구경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구석구석 살폈다.

사진_Chapter5_충청도_2_궁촌2통경순왕.jpg 누가 말이고 누가 사람이신지...?

그러던 중, 어느 골목 입구에서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그 강아지는 방꾸쟁이들을 보고선 인상을 팍 쓰며 으르렁댔다. 마치 “너희 둘! 이 골목으로는 한 발짝도 못 들어간다. 움직이면 내가 짖을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팔뚝만 한 크기의 강아지의 으르렁거림은 방꾸쟁이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강아지 스스로는 늠름하다고 생각할지언정 방꾸쟁이들의 눈에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그러므로 방꾸남과 방꾸녀는 강아지를 무시한 채 골목으로 들어가려 했다.


방꾸녀가 “기특한 귀요미! 집 지키는 거야?”라고 말하며 골목에 한 발짝 딛자, 강아지는 마구 짖어댔다. 생긴 것과는 달리 우렁찬 목소리에 방꾸쟁이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 순간 골목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의 창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창문으로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내밀더니 “야! 방울이! 아이고 너 왜 또 짖어. 가만히 좀 있어. 너 그렇게 짖을 거면 그냥 집에 가! 방울이 너 빨리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할머니의 말을 잠자코 듣던 방울이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방꾸쟁이들을 몇 초간 더 응시하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방꾸쟁이들은 이 상황이 왠지 모르게 재밌었다. 늠름한 척하는 귀여운 강아지와 창문을 열고 소리치는 할머니, 그 사이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웃겼던 것 같다.


상황이 종료되고 마을을 떠나 다시 약국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문득 방꾸남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꿈 인터뷰를 해야겠다.’라는 것이었다. 방꾸쟁이들이 보령으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마을의 풍경을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방꾸남은 방꾸녀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저 할머니께 꿈 인터뷰 요청드리는 거 어때?”

사진_Chapter5_충청도_3_늠름한강아지방울이의치명적뒷태.jpg 곧 날아갈 것 같은 방울이의 치명적인 뒤태

행동력이 좋은 방꾸녀는 방꾸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회관으로 돌진했다. 문을 쾅쾅 두드리더니 “안녕하세요, 너무 더워서 그런데 물 한 잔만 얻어먹고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회관에서 휴식을 취하던 할머니께서는 흔쾌히 들어오라고 이야기했다. 방꾸남은 ‘마침 물도 다 마셔서 편의점에서 사려고 했는데 잘됐네.’라고 생각하며 방꾸녀를 따라 마을회관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약국에 가는 일은 미뤄둔 채 마을회관에서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마을회관에는 할머니 두 분과 이장님이 있었다. 그중 방울이의 반려인 할머니께서 방꾸쟁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한 병씩 꺼내주며 “아이고, 우리 방울이가 너무 짖어서 미안해요. 집에 가라고 했으니까 집에 갔을 거야. 이제 안 짖을 거예요. 아까 어떤 할머니가 와서 집에 돌을 막 던지고 문을 두드리고 그랬어. 그래서 방울이가 지금 입구에서 지키고 있는 거예요.”라는 말을 전했다. 듣고 보니 방울이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지고 늠름한 강아지가 맞는 듯했다.


방꾸쟁이들은 물을 마시면서 프로젝트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청소년과 노인의 꿈을 인터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장님은 시선을 TV로 돌려 암묵적으로 거절을 표했고, 방울이 할머니와 빨간 옷의 할머니 두 사람만이 방꾸쟁이들의 인터뷰에 참여하게 됐다.


먼저, 방꾸쟁이들이 두 할머니께 “할머니들께서는 혹시 꿈이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빨간 옷의 할머니께서 “꿈? 당연히 있지. 꿈이 없으면 그건 죽은 거나 다름없어. 늙어가지고 꿈이라도 꾸고 뭐 재밌는 상상이라도 해야지. 근데 거창한 건 아니고, 다들 똑같을 거야. 그냥 아프지 않고 잘 사는 게 제일 큰 꿈이지, 별것이 있나?”라고 대답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잘 산다’라는 짧은 말 안에 많은 의미를 내포한 듯 보였다.


방울이 할머니는 “꿈이 있긴 한데. 이제는 작은 꿈이죠. 소원이라고 해야 하나? 옛날처럼 ‘뭐가 되겠다.’라는 건 아니고. 자식들이랑 손주들이랑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손주가 축구를 참 잘하고 지금 선수인데, 앞으로도 다치지 말고 자기 하고 싶은 축구를 계속하면 좋겠죠 뭐. 그런 게 할머니 꿈이지. 이제는 힘들어서 여행도 못 가고 그러는데 제가 무슨 큰 꿈을 꾸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춘천과 정읍에서 만난 어르신들과 비슷한 꿈이었다. 다음으로 방꾸쟁이들은 과거의 꿈에 대해 물었다.


■ 방꾸녀: 역시 어르신들께서는 꿈에 대해 다들 비슷하게 말씀하시네요! 그럼, 과거에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셨나요? 학생 때 꾸던 꿈 혹시 기억하세요?

■ 방울이 할머니: 당연히 학생 때도 꿈이 있었지. 나는 미용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대에는 여자들이 꿈을 꾸는 게 사회적으로 자유롭지가 않았어. 그땐 뭐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많았고 꿈을 이루기 좋은 시대는 아니었죠. 저도 아버지께서 항상 “여자가 무슨 미용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에 순종하다 보니까 미용사가 못 됐죠.


방울이 할머니는 “아마 요즘 시대였으면 그냥 했을 거예요. 그땐 집 나가면 어디 살 데도 없었어. 배운 게 없으니까 뭐. 근데 지금은 나가서 혼자 벌어도 다 살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니까 요즘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해. 자기가 꿈꾸는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시대 배경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 방꾸녀: (빨간 옷의) 할머니는 어떤 꿈이 있었어요?

■ 빨간 옷의 할머니: 꿈이 없으면 그건 그리 재밌는 인생이 아니야. 맞지?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예전에 동네에서 노래자랑도 있고 그랬는데, 오빠들이 맨~날 나보고 나가라 그래서 나가기만 하면 아주 1등만 했어요. 이따시만 한 가마솥도 타고 그랬어요 내가.


■ 방꾸남: 아 왠지 할머니 목청이 너무 좋으시다 했더니 가수가 꿈이셨군요? 진짜 멋있어요!

■ 빨간 옷의 할머니: 그렇지 멋있었지. 근데 지금은 아들이 나이가 60이 다 돼가고 내가 80이 돼가니까 노래도 잘 안돼. 꿈이라는 게 다들 젊었을 때 열심히 도전해야 돼. 물론 나이가 들어도 할 수는 있는데, 에너지가 없고 몸도 안 따라주고 그래요. 뭐 하려고 하면 맨날 다치고. 그래도 나는 아직도 어디서 노래 한 곡 불러보는 게 꿈이야. 좀 작은 꿈이긴 해.


방꾸쟁이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절의 향수에 빠져들었다. 늘 그래왔듯 흑백의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기도 했다.


두 할머니와의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마친 뒤, 방꾸쟁이들은 감사함을 느꼈다. 첫째는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준 할머니들에게 느끼는 감사함이었고, 둘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사함이었다. 요즘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시대이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도전의 기회는 열려있다. 성별이나 사는 지역, 학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수라는 꿈에 도전할 수 있고, 미용사라는 꿈에 도전할 수 있다. 배움이 필요하다면 학원에 다닐 수 있고, 독학을 원한다면 소셜 미디어의 영상을 보거나 책을 구매해 읽으면 된다. 생계가 어렵다면 주업에 성실히 임하면서 남는 시간에 다른 꿈을 준비하면 되고,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다면 성인이 되고 독립한 뒤 나만의 꿈을 펼쳐나가면 된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과거에는 ‘기회’가 부족해서 꿈에 도전하는 게 어려웠다면, ‘기회’가 넘쳐서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꿈에 도전할지 말지에 대한 여부는 과거와 달리 ‘기회’보다는 ‘의지’가 결정하는 시대가 온 듯하다. 방꾸쟁이들은 자신들이 이처럼 좋은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 다음 이야기(2025.09.07.일 업로드 예정)

□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너랑 대화는 안 할 거야, 근데 물과 해물파전은 주고 싶어."

→ 시골 마을에서 인터뷰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구나! 그래서 찾아간 곳은?! 어김없이 마을회관~ 마을회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따뜻 바삭한 해물파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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