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안 할 거야, 근데 물과 해물파전은 주고싶어.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by 장병조

보령 여행 첫날 이후 방꾸녀의 온몸 구석구석 땀띠가 번졌다. 특히 목 부위는 너무 심해져서 햇빛이 닿기만 해도 따가움을 호소했다. 연고를 발라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래서 방꾸쟁이들은 분업을 시작했다. 방꾸남은 밖으로 나가 인터뷰를 하고, 방꾸녀는 숙소에 남아 인터뷰 정리와 비용 정산을 맡기로 한 것이다. 이번 인터뷰 스토리는 방꾸남이 홀로 30도가 넘는 시골길을 돌아다니며 경험했던 이야기다.


여행 이튿날, 방꾸쟁이들은 아침 겸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방꾸남은 식사를 마치고 방꾸녀를 숙소에 데려다준 뒤, 홀로 인터뷰를 나섰다. 숙소가 바닷가 주변인지라 해변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모래사장을 따라 2,500m 이상을 걸으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바삐 노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인터뷰에 응해줄 정신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쉬고 있는 사람들을 노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인터뷰를 거절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기 전까지 방꾸남은 ‘대부분이 놀러 오셨으니 기분이 좋은 상태일 거고, 인터뷰도 흔쾌히 응해주시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놀러 왔음에도 쨍쨍한 햇빛과 더위에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거니까 더 불쾌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해요.”, “싫어요.”, “이상한 거 아녜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누군가 방꾸남에게 욕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거절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음이 분명한데 거절의 말 한마디가 괜히 마음에 상처로 남기도 했다. 그래도 재밌게 노는 가족에게 다가가 “여행 작가인데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었을 때 “네 그러세요.”라고 웃으며 말해주는 사람들을 두세 차례 만났다. 그럴 때면 마음에 난 작은 상처가 다시 아무는 것을 느꼈다.


방꾸남은 연이은 거절에 의기소침해하며 해변에서의 인터뷰는 접어두고 도로로 나갔다. 그러나 그곳 상황은 더 절망적이었다.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는 지글지글 끓고,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곤 방꾸남뿐이었다. 학교도 두 군데나 가보았지만, 방학이었고 아이들이 있을 리 없었다.


방꾸남은 ‘이대로는 오늘 인터뷰를 하나도 못 하겠다.’라는 생각에 인터뷰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길거리가 아니라 실내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휴대전화의 지도 앱에 노인회관을 검색하고, 발걸음을 가까운 회관으로 옮겼다. 70대~80대 어르신들께서 회관에 주로 모여계신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진_Chapter5_충청도_4_아무도없는길거리.jpg 해수욕장 주변 마을의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도로. 인터뷰를 한들 인터뷰이와 함께 햇빛을 피할 곳조차 없었다.

방꾸남은 혼자 세 곳의 회관에 들렀는데, 마지막에 들렀던 마을회관 한 곳이 기억에 남았다. 회관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쯤이었다. 그곳에서 인터뷰에 실패하면 그만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더운 상태에서 물을 못 마신 채 오래 돌아다녔고, 다음 날 어딘가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아야 인터뷰를 마저 수행할 수 있었으므로 일찍 숙소로 복귀해 휴식을 취해야 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겨우 마을회관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건물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다. 방꾸남은 “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러고서는 급하게 자신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고, 회관에서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물었다. 운이 좋게도 붙잡은 사람이 마을회관의 회장님이었던 덕에 쉽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을회관 회장님은 “젊은 사람이 좋은 일 하네요. 들어가 봐요. 사람들 많이 있어요. 저는 저기 어디 좀 다녀올게요.”라는 따뜻한 말을 한마디 붙여주었다.


회관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음료라도 하나 들고 가면 어른들께서 좋아할까 싶어 편의점에 들렀다. 여섯 사람이 있다는 회장님의 말에 넉넉히 음료 여덟 병을 구매했다. 그런데 음료를 들고 마을회관에 가니 상상과 달리 어른들의 반응이 미지근했다. 아니, 차가웠다는 말이 더 맞겠다. 방꾸남이 마을회관 문을 열고 “저...! 방금 회장님이랑 밖에서 이야기했는데요. 혹시 간단하게 대화 좀 나누고 쉬었다 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들께선 일심동체로 “아니요. 안 돼요. 그런 거 안 해요.”라고 이야기했다.


방꾸남을 하는 수 없이 무거운 음료를 손에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문 앞에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고민한 것이다. 이대로 물러설 것인지, 다시 들어가서 부탁할 것인지. 그러던 찰나에 회장님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러고서는 “왜 안 들어가고 있어요? 들어가지 얼른. 괜찮아요 얼른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방꾸남을 회관 안으로 힘주어 밀어 넣었다. 회관 안에서 화투를 치고 있던 어르신들은 ‘저 청년 다시 왔구만.’이라고 말하는 듯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방꾸남을 한 번 쳐다보곤 다시 하던 일에 열중했다.


회장님은 방꾸남을 쇼파에 앉혀두었다. 그다음 “이 청년이 경기도에서 왔대. 애들 가르친다고 인터뷰하러 다닌다잖아. 얼마나 대견해요. 멋지고요. 그러니까 뭐 좀 물어보면 대답도 좀 해주고 계셔요들.”이라고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그러더니 “나는 볼 일이 있어서 좀 나갔다 올게요.”라며 또다시 사라졌다.


손주뻘 되는 젊은 사람이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다니는 게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지, 할머니들께서는 방꾸남 앞에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바지락이 듬뿍 들어간 바삭한 해물파전도 가져다주었다. 돌아다니느라 배고팠을 텐데 먹고 가라면서.

사진_Chapter5_충청도_5_해물파전_수정.jpg 방꾸녀 없이 혼자 먹으니까 더 맛있었던 파전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의 방문 자체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하는 눈치였고, 대화하기를 꺼렸다. 방꾸남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인터뷰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화투에 열중하는 어르신들의 침묵을 깨고 인터뷰를 해봤자 어차피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바꾸어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는 파전에 바지락이 들어가네요? 진짜 맛있어요!”, “어르신들께서는 땀띠 생기면 어떻게 관리하세요? 같이 온 동료가 땀띠가 심해서 숙소에 두고 혼자 나왔어요.”, “오후에는 주로 회관에 나와서 시간 보내시는 거예요?”


침묵이 흐르던 회관 안에 짧은 대답이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대화를 열어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물어본 것에 대한 답변 이상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방꾸남의 지원군인 마을회장님이 돌아왔다. 화장님은 상황을 살피더니 “저랑 인터뷰해요. 제가 답변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릴게.”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회장님과 꿈에 대한 이야기,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었다.


그러던 중, 노인분들께서 왜 젊은 사람을 멀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금전 사기가 많이 발생하면서 낯선 젊은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농어촌 어르신들은 신종 사기에 대한 정보가 늦기 때문에 아무리 호감이 가는 젊은이여도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대답도 하지 말라.”라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농촌 지역에서 어른들께 말을 걸면 다들 무시하고 지나갔던 이유를 듣게 되어 뜻깊었다. 뉴스 기사를 보고 ‘그래서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은 해왔지만, 당사자들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이런 대한민국의 상황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길에서 만난 사람과는 대화도 함부로 못 하는 세상이라니.


어쨌거나, 회장님께 꿈을 물었더니 “꿈? 당연히 있지, 여기 다 꿈이 있어요. 나도 아주 꿈이 많아.”라는 답을 들어볼 수 있었다.


□ 방꾸남: 회장님은 꿈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 회장님: 꿈 아주 많지. 근데 어렸을 때는 오히려 꿈이 없었어. 그땐 밥도 없어서 못 먹었는데 꿈이 생길 리가 없죠. 그냥 밥 잘 먹고 사는 게 꿈이었어요.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우니까. 일단 먹어야 살 수 있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하다 보니까 꿈을 생각할 틈도 없었죠 뭐.


□ 방꾸남: 그럼, 버킷리스트라고 하잖아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그런 것도 몇 가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회장님: 가보고 싶은 덴 딱히 없어요. 아니지, 가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가요. 되게 현실적이죠? 그리고 이미 비슷한 얘기 많이 들었을 텐데, 아프고 힘없어서 못 가죠. 아마 여행 가고 싶은 곳 없냐고 어른들한테 물으면 다들 집이 더 편하다고 그럴 거야. 그리고 뭐 무릎이 아프고 어디가 아프고 그래서 힘들다고 할 거야. 그쵸? 그리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는 건 별로 없어. 왜냐면 옛날부터 많이 못 사 먹었다 보니까 뭐 아는 게 많지가 않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그냥 제가 지금 좋아하는 거 있죠?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이요. 버킷리스트라고 하면 그런 걸 오래 먹고 싶은 것 같아. 죽을 때까지. 예를 들면은 꼭 비싼 고기를 안 먹어도 내가 김치를 좋아한다면 평생 김치를 담가서 먹고 싶다는 얘기죠. 남들이 먹는 뭐 비싼 상어 지느러미, 스테이크 그런 거 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먹고 싶단 뜻입니다.


버킷리스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회장님이 가진 인생철학 중 하나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공유해주고 싶다.


■ 회장님: 저는요, 한번 하고 마는 거 말고 죽을 때까지 지속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지 삶이 좀 더 기복이 없이 길게 행복한 것 같아요, 아 근데, 제가 음식 먹는 거 얘기했었죠? 남들 따라서 먹는 거 말고, 진짜 좋아하는 걸 먹으면서 살다가 죽고 싶다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처음에는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해봐야죠. 남들 따라서 먹고, 남들이 하는 것들 많이 따라 해봐야 해요. 그래야 경험이 쌓여서 자기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이나 일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을 거예요. 그런 경험이 쌓여야 나중에 자기한테 잘 맞는 음식을 먹고, 여행지를 찾아가고, 일을 하고 그런 게 가능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경험을 좀 다양하게 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돼서 스스로 먹고 싶은 걸 찾고, 하고 싶은 걸 찾아보는 게 진짜 자기 삶이죠. 그렇게 해봐야지만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래야지 결국에는 행복해요.


이 이야기를 끝으로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방꾸남이랑 이야기는 하기 싫지만, 해물파전은 주시겠다는 어른들의 반응, 들어오라는 회장님과 들어오지 말라는 다른 어른들의 대비되는 반응. 그런 것들이 방꾸남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따뜻한 추억이자 인간미 넘치는 마을의 모습으로 남았다.



■ 다음 이야기(2025.09.14.일 업로드 예정)

□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같은 꿈을 꾸는 태권도부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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