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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크 할아버지 Jul 13. 2023

"30분쯤 늦어도 괜찮아"라는 합리화

대충 살자 직장인

회사를 다닌 지 어느덧 15개월. 26년짜리 길이의 삶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일할 날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짧고도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긁을 읽는 분들과 주변 사람들의 경력과 비교했을 때도 15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작고 어리다.


그럼에도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름대로 원칙 몇 가지를 습득했고, 몸에 새겼다. 그 원칙은 물론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이 아닌 나와의 약속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지켜주어야 할 나와의 약속 말이다. 여러 가지 중 오늘은 딱 한 가지만 적어보려고 한다.




"퇴근 시간은 30분만 늦추기. 더도 덜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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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사한 이후로 정시에 퇴근한 날보다 정시에 퇴근하지 않은 날이 더 많다. 일이 적은 편은 아니고, 솔직히 많다. 그럼에도 이것은 늦게 퇴근할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언제 어디서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했는지, 내 일처리가 얼마나 느린지 어렴풋이나마 아니까. 그래서 다른 누군가라면 분명히 똑같은 수준의 일을 퇴근 시간 전까지 끝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즉, 내가 늦게 퇴근하는 이유는 열정이 넘쳐서가 아니라 그저 실력이 없어서라는 걸 늘 체감한다. 매일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 퇴근해야 할 의무는 없다. 어떻게 보면 6시 퇴근이 회사 규정에는 더 부합하고, 나에게는 퇴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쨌거나, 상사에게 일정을 미뤄달라고 보고하고, 다음 날 쓴소리를 좀 듣는다면 정시 퇴근은 언제나 가능하다. 또, 일을 더 한다고 누가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며,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큼 경력이 더 쌓이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해봤자 상부에 보고되는 과정에서 뒤집어지기 마련이고, 하나의 일을 마치면 다른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나에게서 나가는 일보다 내 수중에 새롭게 들어오는 일이 항상 더 많다. 


그러므로 늦게 퇴근하면서까지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크지 않다. 특히 내가 일하는 곳은 영리 기업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이곳은 NGO로, 이미 배정된 예산으로 일을 한다. 그렇기에 오늘 일하지 않는다고 내일의 수익이 쉽게 줄어들지 않고, 말단 직원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늦게 퇴근한다. 솔직히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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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추락하고 미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음 날 혼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이 나도 모르는 숨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이 느끼는 이런 사소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만날 더 큰 두려움들에는 마음이 긴장하는 수준을 넘어 손을 벌벌 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나만의 삶을 그려내는 데 방해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적정선'을 찾아 나섰다. 뒤로 처지지 않고 회사와 발맞춰 나아갈 수 있는 동시에 두려움을 약간 누그러뜨림으로써 이겨낼 수 있게 되는 지점을 말이다. 그렇게 도달한 곳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0분'이었다. 남들보다 30분 정도 더 하면 나의 느린 발걸음으로도 그들에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30분 정도 더 일하면, 업무를 마무리할 수는 없어도 백지를 들고 팀장님에게 보고해야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철에 사람이 좀 적으니까. 라고 합리화를 완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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