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높은 굴뚝

by GivemeL

햇빛이 일찍부터 강했다. 미국에서 맞는 첫 아침. 세혁은 잠깐 하늘을 봤다. 넓었다. 서울에서는 건물 사이로만 보이던 하늘이 여기선 다 열려 있었다.


캠퍼스 입구에서 세혁은 걸음을 멈췄다. 목석이 옆에서 말했다.


"올해부터 이름이 바뀌었어요. Missouri S&T. 원래는 UMR이었는데."


세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앞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두 개의 굴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높고 검었다. 1870년 광산학교로 시작한 곳이었다. 석탄과 납과 아연이 이 학교를 먹여 살렸던 시절의 흔적이 굴뚝에 남아 있었다. 저 굴뚝이 보이면 롤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잔디는 정갈하고 나무가 많지 않았다. 예쁜 캠퍼스라기보다는 일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학생들이 백팩을 메고 교차하며 지나갔다. 청바지, 운동화, 손에 텀블러. 서로 뭔가를 이야기하며 걸었다. 그 말소리가 세혁한테는 들리지 않았다. 억양도, 단어도, 아무것도.


목석은 앞서 걸었다. 세혁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편했다.


"저 건물이에요."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건물이었다. 오래된 벽돌 건물들 사이에서 혼자 새것처럼 서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형광등이 흰 빛을 쏟아냈다. 복도가 길었다. 벽마다 연구 포스터들이 빼곡했다. 그래프, 회로도, 수식들. 세혁은 걸으면서 그것들을 봤다. 바둑 바깥세상도 역시 치열했다.


Housing Information – Graduate Education | Missouri S&T


3층. 목석이 멈췄다.


"여기예요."


세혁은 문을 봤다.

302 — Dr. Marcus, Computer Science.


복도는 조용했다. 양옆으로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딘가에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낮고 규칙적인 소리였다. 세혁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문을 봤다. 마르쿠스. 이 문 하나가 지금 자신의 전부였다.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문을 두드렸다.


"Come in."


목석이 먼저 들어갔다. 세혁이 뒤따랐다. 오래된 책 냄새가 났다. 눈이 익숙해지자 흰 보드판이 보였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끝이 없었다. 세혁이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몇 개뿐이었다. AI. Baduk. 나머지는 읽히지 않았다.


창가에 백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트위드 재킷. 두꺼운 안경. 창밖으로 캠퍼스가 내려다보였다. 굴뚝 두 개가 보였다. 그는 세혁을 보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반쯤 먹다 만 햄버거가 놓여 있었다. 랩핑이 벗겨진 채로. 그 옆에 바둑판이 있었다. 세혁은 잠깐 멈췄다. 반가웠다. 이 방에서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목석이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마르쿠스가 돌아봤다. 세혁을 봤다. 따뜻함도 적대감도 없었다.


"임세혁 씨예요. 수연 선배가 말씀드린 분이에요."


마르쿠스가 잠시 세혁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목석이 통역했다.


"이력서 봤소. 바둑 경력은 인상적이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 연구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소. AI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으니까."


세혁은 보드판을 봤다. 수식들이 가득했다. 세혁의 세계가 아니었다. 마르쿠스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체스는 수학이오. 바둑은 철학이고." 잠깐 멈췄다. "그 안에 인간만이 가진 무언가가 있는 거요. 우리가 아직 수치화하지 못한 것들. 수연은 당신이 그 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소."


그리고 세혁을 봤다.


"나는 아직 모르겠소."


세혁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어가 없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거기서 막혔다.


"오늘 저녁 바둑클럽 모임에 오시오. 두 시간 강의. 그게 면접 대신이오."


마르쿠스가 세혁을 봤다.


"할 수 있겠소?"


세혁은 바둑판을 봤다. 돌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마르쿠스가 혼자 두다 만 것 같았다. 포석이 어설펐다. 그래도 바둑을 두는 사람이었다.


목석이 통역을 기다렸다. 세혁은 목석을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I can do it."


목소리가 작았다. 확신이 없었다.


"Can or can't?"


세혁은 마르쿠스를 봤다.


"I will."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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