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내용을 쓰는 게 좀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을 하다 보니 보편적인 내용 위주로 글을 쓰게 되네요. 이번 글은 우울증에 관련해서 쓴 글과 함께 보면 이상심리(심리적인 문제)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는데 조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번지점프
높은 곳을 무서워 하는데 번지점프대 위에 서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찔한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에 땀이 납니다. 심장이 벌벌 떨려서 고개를 돌리고 주저앉아서 난간을 꽉 붙잡습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는 후회가 들고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속이 매스껍고 현기증도 나는 것 같습니다.
번지점프대 위의 상황은 심리적인 문제와 비슷합니다. 쳐다보기도 두려울 정도의 높이는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고, 공포심을 느끼고 난간을 붙잡는 것은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인 대응입니다.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가지도 못하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 힘이 빠지는데 이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될 때 생기는 증상들과 비슷합니다.
근본 문제
아찔한 높이는 심리적인 문제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생물학적 항상성(allostasis)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항상성에서 벗어나거나, 앞으로 벗어날 것 같은 예측이 들면 뇌는 바로 경보를 울리고 우리를 방어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면 뇌는 떨어져서 죽거나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심각한 위기 예측을 하고 방어모드로 들어갑니다.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포의 감정을 만들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만들죠.
항상성의 위기는 욕구 결핍으로 경험됩니다. 번지점프는 안전 욕구의 결핍이겠죠. 우리는 어떤 결핍이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지만 항상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를 알 수 없거나 다른 결핍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짜증이 많아지는데 그 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기도 합니다. 왜 짜증이 나는지 진짜 이유는 모르는 거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그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신경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런 신경증이 걸렸는지 알 수는 없죠. 그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원인데 관해서 생각할 때 대상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무의식은 생각보다 멍청합니다. 욕구와 관련해선 매슬로나 다른 심리학자들의 욕구 위계를 참고해보세요. 전에 6가지 욕구에 관해서 쓴 글이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대응전략
공포를 느끼고 난간을 꽉 붙잡고 고개를 돌리는 것은 결핍에 대한 대응전략입니다. 대응전략은 회피적입니다.(왜 회피적일 수밖에 없는가에 관해서는 나중에 써보겠습니다.) 공격적인 대응과 즉각적인 회피 모두 목적은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것입니다. 난간을 붙잡고 앉아있으면 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뇌의 배선에 따라서 이상심리로 분류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성격장애는 결핍에 대한 방어적인 대응방식입니다. 강박증도 이런 종류의 대응방식이죠. 불안, 우울함 등의 감정들도 뇌가 사용하는 대응전략입니다. 고개를 돌려서 위험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주의를 돌리는 전략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잊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거나 술을 마시고 일에 빠지죠.
방어적인 상태의 대응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입니다. 빠르게 스트레스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주죠. 하지만 이런 대응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게임, 술, 일 등이 나쁜 것이 아니라 방어적 대응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번지점프라면 뛰지 않고 내려오면 그만이지만, 현실 문제들은 번지점프대에서 내려오듯 해결되지 않습니다. 계속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죠.
방어적인 상태와 대응이 지속되면 뇌의 평균적인 상태가 점점 방어적인 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합니다. 방어적인 행동이 점점 인생 전반에 퍼져나가죠. 예를 들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점점 방어적이 되는 사람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점점 방어적인 대응을 보여줍니다.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회사로 이어지기도 하죠.
방어적인 상태가 지속되고 방어적인 대응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인생에 대한 영향력도 잃어갑니다. 스스로 주도권을 갖기보다는 외부 상황에 반응하는 것에 급급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상황이 나의 즐거움과 슬픔을 결정합니다. 성취할 수 있는 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tv 채널 정도만 남기도 합니다. 지속될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조차 힘들어집니다.
방어적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특히 대응전략이 효과가 없을수록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도 잃어갑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전기 고문을 피할 수 없는 실험실의 쥐처럼 말이죠. 면역력이 떨어져서 질병에 취약해지고,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우울증, 불안장애 등). 몸을 움직이기 힘든 경우도 있죠(무기력). 심하면 몸에 대한 통제력도 잃고 이유 없이 아프거나(신경성) 공황발작이 오기도 하고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정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기도 합니다(정신증). (괴롭힘을 수반하는 왕따는 정말로 사람의 정신에 최악입니다. 사실 살인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통제력과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모두 잃어버리기 전에 자신만의 대처 방법을 찾아냅니다. 일종의 균형을 찾아낸다고 할까요.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고 여전히 힘들지만 더 나빠지지는 않는(그럴 거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찾아서 거기에 안주합니다.
여기까지가 전반적인 심리적인 문제들에 관한 밑그림입니다. 생각처럼 깔끔하게는 설명이 안되네요.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이겁니다.
1. 심리적인 문제는 대부분 욕구의 결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2. 일부 이상심리(성격장애, 강박증 등)는 결핍에 대한, 혹은 예측되는 결핍에 대한 방어적인 대응 방식입니다.
3. 고통스러운 결핍을 오랫동안 마주한다면 인생에 대한 통제력,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우울증, 불안장애 등)
2번과 3번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접근이 달라야만 합니다. 2번 문제는 결핍 인지와 대응방식에 관한 것이고, 3번 문제는 적절하지 못한 결핍 인지와 대응 방식으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타격을 받은 것이죠.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만 더
근본 문제에 관해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나아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던 문제를 다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근본 문제는 대부분 바꿀 수 없는 것들 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 다른 사람, 가지지 못한 것, 이미 잃어버린 것 등이죠. 사실 이런 문제들이 심리적인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들에 집중하고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심리적인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스스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나를 괴롭히는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치료에 관해서는?
심리 상담의 방법이나 심리치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왜 어떤 상담은 효과가 없고 오래 걸리는지, 정신분석에 관한 생각 등은 상담가의 전문성이 관련돼서 앞으로 쓸지 안 쓸지 모르겠습니다. 치료 방법에 대한 내용은 심리적 문제에서 벗어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가능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써보겠습니다. 머리를 쥐어짜 봐야겠네요.
* 읽어주시는 분들 그리고 공감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다면 메일로 연락 주세요.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도움 관련된 내용은 여기에만 남겨두겠습니다.
피드백, 토론, 질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은 근본 문제에 관해서 꼭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조만간 근본 문제와 관련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감정을 다스리고 생각을 바꾸는 방법에 관해서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