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금~9.일 먹고 자고 운동하고 수영하고. 홍통과 싱하.
11월 7일 금요일
6개를 샀지만, 뭔가 덜 익은 듯해서 실온에 두었던 망고가 드디어 먹을만해졌다. 마침 사과는 똑 떨어져 망고를 냈다. 생 땅콩을 볶았지만, 뭔가 맛이 없고 눅눅해져서 어젯밤에 소금을 넣고 삶아 보았다. 담백하고 먹을만하다.
여행을 가는 일이 은근히 내 몸에는 스트레스인가 보다. 어쩌면 더운 나라에서 지내다 보니, 먹는 것을 다 소화시켜 에너지로 쓰고 있는 건가. 그도 아니면 평소처럼 통곡물 등의 거친 음식이 아닌 부드러운 식당 밥을 먹다 보니 뭔가 식이섬유가 부족한가. 3일에 한 번 정도 큰 일을 보는 것 같다.
아침 후에 총은 열심히 글쓰기 교실 글을 봐주고, 용관은 책을 읽는데, 나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한다. 타고난 놈팽이 같다. 낮잠을 자고도 여전히 시차 적응을 못한 듯 이곳 시간 저녁 8,9시(한국 10,11시)면 졸려 꼬꾸라진다.
원래 마크로에 일요일쯤 가자고 했지만, 용관이 오늘 가자고 제안했다. 근육이 쉬면서 회복할 시간도 필요하니, 오늘은 수영 정도만 하자고 했다. 가는 경로도 경치도 괜찮으니 걸어가서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생각보다 더웠다. 특히 총이는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각자 199밧짜리 초밥을 골라 먼저 계산 후 먹고, 8밧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평소 한 끼의 3배 값이다.
김치, 계란, 키친타월, 양상추와 양배추, 양파, 표고버섯, 바나나, 파인애플, 사과, 용과, 구아바, 패션푸르트, 캐슈너트, 토마토, 삼겹살, 올리브유, 빵을 샀다. 토스뱅크에서 알리페이 QR결제를 지원해서 결제를 해 봤는데, 거의 ATM기에서 현금 뽑는 비율의 수수료가 붙었다.
그랩으로 74밧에 2,3킬로미터 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있는 WIFI 기기가, 우리나라 '도시락'처럼 들고 다니면서 핫스팟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켓와이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다.
쇼핑은 역시 남자들을 지치게 한다. 돌아오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일으켜 수영을 했다.
저녁으로 버섯, 양파, 마늘과 함께, 냉동 삼겹살을 구웠다. '코코넛 판단빵'을 밥 대신 먹었다. 용관과 총은 맥주를, 난 홍통이라는 태국 양주를 언더락으로 약간 곁들였다. 내 입에는 쓴데, 둘은 단 술이라고 한다. 난 역시 술맛을 모르는 듯.
11월 8일 토요일
한밤중에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쳤다. 아침에 보니 수영장 물이 왠지 조금 불어난 느낌이다. 원래 11월부터 건기가 시작이라더니, 오는 날부터 하루도 쨍쨍하게 화창한 날이 없었다. 그랩 기사님이 이상하다고 했으니, 아마 일반적인 태국 날씨는 아닐 수도 있겠다.
잠자리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세 남자의 여행'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여행 스타일이나 성격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정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달 살기다 보니, 여행이라기보다는 거의 자취생활에 가깝다. 용관과는 35년 된 친구지만 냄새에 예민한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위 포켓 스프링이 아닌 킹사이즈 침대에 둘이 있으니, 자다 몸만 살짝 뒤척여도 많이 흔들린다. 취침 시간, 위생에 대한 관념, 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 쓰레기 분리배출, 빨래까지 55년 이상 살아온 세 남자의 모든 것이 충돌할 수 있다.
다행히 용관은 많은 사람들이 알듯 무던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졌고, 총도 호기심 많고 배려와 생각이 깊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크게 불편함은 없는 듯하다.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총은 느낌상 내 세 배 정도 부지런하다. 매일 3시간에서 5, 6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글쓰기 교실 수강생들의 글을 꼼꼼히 보고 지도한다. 러닝머신과 운동기구도 열심히 하고, 수영도 내가 지쳐 샤워장으로 올라간 후에도 한참 나오지 않는다. 저녁에는 듀오링고로 스페인어와 일본어를 공부한다. 용관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총은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아 길을 가면서도 꽃을 줍고 사진을 찍고 가게에 들어가 주저 없이 현지인들에게 말을 건다. 용관은 겸손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한다. 비교해 보면, 익숙한 것만 좋아하고 가장 효율적으로만 움직이고, 늘 누울 곳을 찾는 나 같은 한량이 없다.
아침은 또 잘 차려 먹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브런치를 작성하고, 용관과 총은 거실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점심은 그동안 문을 닫았던 식당에서 드디어 60밧 닭고기 쌀국수와 80밧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었다. 먹을만했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고, 방청소를 한 후, 또 열심히 운동과 수영, 사우나를 했다.
저녁은 단골식당인 Jaena Pad Thai에서 난 레드 커리, 용관은 해산물 볶음라면, 총은 튀긴 생선밥을 220밧에 먹었다. 어제 사온 홍통이란 양주에 제로 스프라이트로 하이볼을 만들어 에그타르트와 견과류를 안주 삼아 마셨다.
11월 9일 일요일
아침을 먹고 예배를 드렸다. 오늘은 총이 주로 아침을 준비했는데, 망고를 자르는 칼 놀림이 불안하다.
예배 중 말씀 묵상을 나눴다.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라고 하셨는데, 이제껏 내가 맺은 열매 중에는 썩고 사라질 것 밖에 없는데, 도대체 "썩지 않는 열매"란 무엇일까. 총이는 오늘 본문의 맥락에서 '사랑의 열매 혹은 사랑'이 아닐까 했는데 사랑의 열매는 썩지 않는 건가, 모르겠다.
기도제목으로는, 반수 중인 막내가 다음 주 목요일 수능시험을 잘 치를 수 있길, 용관은 요양원에 모신 아버지께 주의 긍휼을 구했고 잦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내가 건강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총은 파타야 한 달 살기 후 미얀마로 넘어가는데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길 기도했다.
이곳에서 산 삼양 사리면에서 쩐 맛이 너무 강하게 나, 라면은 못 끓여 먹고 어쩔 수 없이 비빔면을 해 먹기로 했다.
잠깐 쉰 후 헬스장으로 향했다. 난 가볍게 달린 후, 메트를 깔아놓고 스트레칭과 허리를 강화하는 운동과 플랭크를 한다. 그 후 하체와 코어 중심으로 운동한다. 어깨 치료를 받았던지라, 상체운동은 당분간 안 하고 있다. 총과 용관은 오자마자 기구로 근력운동부터 시작한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어제오늘은 수영장에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총과 용관은, 이제 어느 정도 수영에 익숙해져서 알아서 열심히 헤엄친다. 수영 끝물에 어떤 태국 여자아이가 물속을 가리킨다. 뱀이다. 수영장에 빠진 뱀이 뭍으로 못 올라가고 결국 지쳐 익사한 듯싶다. 용관이 작대기로 끄집어내어, 수플 사이에 살아있는 척 두었다. 우리 모두 곧 60인데, 여전히 장난기가 넘친다. 챗GPT에게 물으니, "Malayan Krait(말레이 크라이트, Bungarus candidus)라는 맹독성 뱀으로, 코브라류와 같은 신경독을 지녔다"라고 한다. 아 씨, 죽을 뻔.
단골집이 일요일엔 문을 닫아, 숙소 옆 식당에서 총은 돼지고기볶음 덮밥(74밧), 용관은 해산물볶음 덮밥(80밧), 난 파인애플 볶음밥(80밧)을 먹었다. 세븐일레븐에 들러 병당 2500원 꼴로, 싱하 12병을 사서 쟁여두었다.
돌아가는 용관의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