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토~24.월 로띠, 사롱, 스웨덴 사람 니에로씨
11월 22일 토요일
오랜만에 푸르게 맑은 날이다. 주간 예보를 보니, 비소식이 없다. 이제 본격적인 건기의 시작인가 보다.
용관이 만드는 바나나 계란 볶음이 로띠처럼 맛있다. 간식처럼 먹는 생캐슈너트는 소금을 넣어 볶아 두었다. 옥수수도 버터구이를 했다.
총은 셋째의 입시 상담으로 지인에게 통화한다. 용관과 나도 입시에 걸린 막내들이 있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냉장실의 돼지 목살을 빨리 해치워야 해서 일부는 구운 후 채소와 볶고, 나머지는 굴소스와 숙주 등을 넣어 볶았다. 통밀빵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로 먹었다.
오늘은 용관이 저녁에 줌으로 책모임이 있었다. 용관은 운동을 건너뛰었다. 운동 후 재나 팟타이에 갔다. 손님이 없다고 일찍 닫았다. 총이 문을 두드렸더니, 실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았다. 돌아오며, 로띠 장인의 바나나계란로띠를 50밧에 먹었다.
11월 23일 일요일
달디 단 파인애플과 마지막 남은 구아바를 포함해 아침을 차렸다. 용관은 이번 여행에서 구아바의 맛을 알게 됐다 말한다.
오늘 예배는 용관이 인도했다. 용관은 천혜향 농사를 마치는 내년 3월 이후 생계를 위한 적합한 일자리를 위해 기도했다. 난 이번 여행과 경험을 통해, 고민하던 은퇴생활의 방향과 태도를 어렴풋이 잡을 수 있어 감사했다. 총은 한주 남은 세 남자의 여행이 아쉽다며, 그만큼 이곳의 생활이 좋았음에 감사했다. 남은 일정도 아름답기를, 또 이후 방문할 미얀마 민중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전해주는 걸음이 되길 기도했다.
저번에 구워 놓은 돼지 목살에 양파와 버섯, 굴소스와 찬밥으로 볶음밥을 만들었다. 해동이 덜 되어 냄새가 심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총은 운동은 건너뛰고 수영에 집중했다. 나도 수영만 좀 하고 사우나에서 땀 뺀 후 올라왔다.
저녁은 좀티엔 야시장에서 케밥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노을이 예뻐 바닷가에 들렀다.
야시장 구경을 하다가 가장 안쪽의 스테이크집으로 정했다. 총은 109밧 생선가스, 용관은 89밧 매운 치킨 스테이크, 난 79밧 포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생각보다는 양도 나쁘지 않고 푸짐한 편이어서 대식가 총이 매우 흡족해했다. 아주머니가 유쾌하고, 태국음식에 질린 서양인들 붐비는 가성비 식당이었다. 재미있는 건, 같은 메뉴인데 매운맛은 10밧씩 더 비쌌다.
좀티엔 야시장 입구에서, 수완나품 공항까지 그랩보다 싸게 갈 수 있다는 요금표가 붙어있는 여행사를 봤다. 낮시간에 가봐야겠다.
11월 24일 월요일
샐러드를 많이 준비해도 열심히 먹지들 않아, 양을 줄였다.
총은 수업을 시작하고, 좀티엔 야시장에 공항 가는 저렴한 차편을 찾으러 갔다. 문은 닫았고, 적힌 전화번호는 연결되지 않았다.
허탈하게 돌아가는 길에, 뭔가 '사롱'을 팔 것 같은 가게가 보였다. 120 ×180cm 사이즈에 상품이 많았다. 1장당 150밧이라기에 여러 장 사면 깎아 줄지 물었다. 도매고, 정가제라 했다. 8장을 고른 후, 1200밧을 1100밧까지 해달라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 숙여 절하니, 깎아줬다.
뿌듯하게 돌아오며 분쇄커피 200g을 세븐일레븐에서 한 봉지 샀다. 200밧 이상이어야 카드결제가 돼서 용관이 원하는 스프라이트와 커피우유까지 샀다. 늘 불친절한 뚱땡이 매니저 언니가 쿠폰 2장을 안 준다. 안주냐 해도, 설명도 안 한다.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쩐맛 나는 사리면을 드디어 해치웠다. 돌아가는 날 공항까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다가, 좀티엔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저렴한 공항버스를 예약했다. 1인 143밧에 온라인 수수료 25밧이 인당으로 붙고 100밧 정도 내고 그랩으로 터미널까지 가야 한다. 그래도, 예상 그랩 비용 1500밧에 톨비 추가보다 1/3 정도로 저렴하다.
점심 후 잠깐 자고 헬스장에 갔는데, 사람들에 바글바글하다. 운동 말미에 식은땀이 나고 몸에 기운이 없었다. 일종의 저혈당 쇼크 같았다. 점심으로 비빔면을 많이 먹고 바로 잤던 용관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허둥지둥 숙소로 올라가 오이, 토마토, 캐슈너트, 바나나를 밀어 넣었다.
샤워실로 다시 내려갔는데 자리가 없어 사우나에 들어갔다. 여기서 만난 대부분은 러시아인이고 영어를 거의 못했다. 그런데, 한 백인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스웨덴 사람 '니에로' 씨인데, 북유럽 사람답게 '사우나 부심'이 있었다. 한국도 겨울에는 영하 10도에서 15도 정도로 내려간다 하니, 깜짝 놀란다. 내 나이를 40대 초반으로 예상하더니, 자기는 몇 살로 보이냐고 한다. '이거 예의상 나보다 어려 보인다고 해야 하나?'를 고민하며, "나보다는 위가 아니냐?" 했다. 70살이란다. 한 60대 초반 정도로 보았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있었다. 놀란 리액션을 하니, 신이 나서 젊게 사는 비결을 설파한다.
스웨덴에 회사를 5개를 가지고 있는데, 형제들에게 다 맡기고 자신은 이렇게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시간은 살 수 없다'라고 하셨다며, 자신은 42살에 은퇴했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벌면 뭐 하나, 문득 돌아보면 몸은 늙고 곳곳이 아프고, 손주들에게 돈이나 댈 수밖에 없다고. 연금, 집, 어차피 벌어놓은 것 다 쓰지도 못하는데, 자식들에게 500만(유로겠지?)을 남기든, 200만이나 100만을 남긴다고 무슨 차이가 있나. 내가 남겨주는 돈이 얼마가 됐든, 자식에게는 어차피 뚝 떨어진 공돈이니.
나도 바로 정확히 그런 이유로, 8월에 은퇴를 했다고 말했다. 니에로 씨는 하루에 5시간씩 탁구, 배구, 농구. 테니스 등 스포츠와 레저를 즐긴단다. 이 대화를 사우나에서 이어가니, 땀이 비 오듯 한다. 용관이 샤워실이 비었다고 알려주고도 몇 분간 더 잡혀 있었다.
빤한 대화이긴 했지만, 은퇴 이후를 고민하던 내게 "잘했다"라고 격려하는 우연치 않은 만남처럼 느껴졌다.
재나 팟타이에서 빠르게 그린 커리를 먹고 총은 수업을 시작했고, 용관과 나는 리조트 로비에서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