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와 매트, 모래요정 바람돌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영어공부 삼아 보여주던 애니메이션인데 '패트와 매트'라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두 명의 주인공은 계속 사고를 친다. 2층 방에 피아노를 집어넣기 위해서 벽을 부수고, 줄에 매달아 올리다가 결국은 떨어뜨려서 박살을 내는 식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방송했던 '모래요정, 바람돌이'라는 일본만화를 재미있어하면서도 싫어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바람돌이에게 부탁해서 머리에 약을 발랐더니, 끝도 없이 머리카락이 길어져 버린다. 마법을 쓰는 능력이 있는 모래요정인데, 한 번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반드시 망쳐버린다. 둘 다, 스트레스받아서 보기가 싫었다.
평생 일탈 없이 범생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완벽주의자라서 그런지, 그냥 꼰대라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술에 취해 지하철에 쓰러진 사람을 봐도, 탄천 옆 자전거 도로에 쓰러져 있던 장애인 아저씨를 보고도, 신림동 뒷골목에 쓰러져있던 사람을 보고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대형 할인마트 푸드코트에서 3,4살짜리 여자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던 부모들을 참고 볼 수 없었다. 복음과 성경에 역주행하는 기존 한국교회를 견딜 수 없어, 굳이 먼 작은 개혁교회 공동체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게 아닐까. 굳이 폐가에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는 동네 중고생들을 보고도, 소위 경희랜드에 벚꽃놀이를 와서 예쁜 사진을 찍어 보겠다고 나무를 발로 차는 몰상식한 사람을 보고도, 역주행으로 하고 잔디밭을 넘어 들어가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냥 넘기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요즘 주말에 학교로 산책을 잘 가지 않는다.
왜 은퇴를 하고 싶은가 생각하다 보니, 아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성향이 나를 괴롭혀 왔던 것 같다. 몇 년에 한 번씩은 부서와 업무를 옮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먼저는, 이미 일이 익숙해져서 힘들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지금 부서에서 있는 게 낫겠다는 마음. 그런데 반면 옮기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새로운 일이 하고 싶다거나 선호하는 부서가 있어서가 아니다. 수년 동안 기존의 부서에서 일하는 동안 부딪힌, 바뀌지 않는 한계나 문제점들이 점점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1. 문제가 있는 것을 아는데,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2. 그렇게 문제를 알면서, 그냥 보고 있기도 어렵다. 3. 떠나는 방법밖에는 스트레스를 벗어날 길이 없다.
어쩌면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성향 탓이었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업무나 부서를 넘어서, 계급화된 전체 대학사회의 부조리, 불공정, 갑질,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노동차별,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40대 초반에 4년간 경희대학교노동조합 임원 활동을 하고, 2017년 가을부터 2023년 말까지 만 6년 동안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경희학원지부장으로 일했다. 거의 10년의 세월 동안, 난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뤄냈을까? 5%? 10%? 리더십을 넘겨줄 사람을 찾을 수 없어, 이러다가는 어쩌면 정년퇴직까지 지부장을 계속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후임자가 등장하면서 임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거의 노동조합 일에서는 손을 떼고 일반 업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몸담고 있는 대학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비민주적인 역행, 약자들에 대한 여전한 차별과 폭력적 태도, 권위주의는 이제는 눈감고 귀 막고 지내보려는 내게 보이고 들린다. 보인다고 나서서 바꿔낼 힘과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못 본 체 덮을 수도 없다.
예전에 한참 성경공부를 할 때는,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맞서 싸우고 극복해야 한다고, 그게 믿음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나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그래서, 떠나고 싶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