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06] 70년 개띠 아재 은퇴기

1.뭘 하고 싶나? 노래?

by 딸삼빠

'도대체 왜 갑자기 그만두고 싶은지, 나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그 이유'를 열심히 찾아봤으니, 이젠 직장을 그만두고 뭘 하고 싶은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자.


아, 그런데, 또 은퇴 후에 하고 싶지 않은 게 뭔지가 먼저 떠오른다. 어딘가에 매여있고 싶지 않다. 소위 은퇴전문가들은, 은퇴를 하고서도 삶의 의미로서 '일'이 중요하니 소일거리라도 하라거나, 기왕이면 직장건강보험 가입자가 될 수 있다면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가족들이 그렇게 키우고 싶어 하는 강아지도 키울 수 없다. 최소한 규칙적이거나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 곧 '한국어 교원'으로서 선교지나 해외, 지역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하기 어렵다. 지금 한 달에 한번 정도하고 있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도 임기인 올해 말까지는 가능하면 해 보겠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자유롭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또 모순이네.

에덴피아노 교실 발표회(1979.12)

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혹은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다 까먹었지만, 국민학교 3, 4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체르니 100번을 쳤었다. 만약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면, 음악 쪽으로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르겠다. 6학년 때, 태권도를 배울 때는 사범님이 가끔 노래를 시켰다. 내 레퍼토리는 주로 '보름달' 같은, 서정적인 동요였다.

경희대 정경&가정대 노래패, 동트는 새벽 시절

대학교 1학년 때, 정경대와 가정대 연합동아리인 '동트는 새벽'이라는 민중가요 노래패 활동을 했었다. 많은 초보들이 그렇듯 손가락에 굳은살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혼자 기타 코드 보면서 연습했다. 코드가 많이 어렵지 않으면, 악보의 코드를 보면서 대충 칠 수 있다. 공강시간이면, 극단 '태'와 옆방을 쓰던 정경대 1층 어두침침한 동아리방 구린 소파에 앉아, 민중가요 노래집을 앞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몇 시간씩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기본 화성도 모르면서 아주 가끔 작곡을 한다고 깝쳤지만 결과물은 뭔가 이상한 노래였고, 사람들의 평은 '곡'은 별로고 차라리 '가사'는 괜찮다는 정도.


목소리가 좋다는 얘기를 좀 들었고 음색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고음을 잘 내지 못했다. 2학년 초, 가정대 90학번 신입생들 앞에서 공연할 때, '그날이 오면'의 메인파트를 솔로로 부르다가, 마지막에 목소리가 뒤집어져서 개망신을 당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캠퍼스 선교단체 시절, 각종 특송과 중창

2학년 2학기부터는 선교단체로 동아리를 옮기면서 가스펠과 복음성가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거의 10년간 성가대 활동을 시작했고 베이스 파트를 맡았고, 가끔 찬양인도를 하기도 했었다. 5천 명에서 1만 명 규모의 선교단체의 성탄절 축하예배에 중창팀으로 매년 차출되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음도 잘 잡고 나쁘지 않았지만, 솔로는 영 어려웠다. 4학년 때인가, 소속했던 선교단체에서 주일 예배 때 솔로로 특송자로 나를 키워보려고 지휘하시던 선배님들이 한동안 지도해 주셨던 적이 있다. 하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잦은 실수로 더 위축됐다. 대학 졸업할 때쯤에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면서 좋은 일에 모금하는 공연을 해 보고 싶어 한동안 모임 인터넷 카페를 눈팅했다. 기타 실력이 일천하고, 쫄보 내향인이라 아예 시도조차 못해 봤지만.


2017년 해밀턴 시절, 교회창립 40주년 기념예배에서

작은 지역교회로 옮긴 2000년부터는 7,8년 정도 찬양인도를 하거나, 성가대 활동 및 지휘를 맡기도 했다. 한 동안 쉬다가, 어학연수차 나가 있었던 2016년 말부터 캐나다 해밀턴에 해밀턴한인연합교회에서 반년 동안 성가대 활동을 재개했다. 오랜만에 노래를 하니, 좋았다.

당근마켓에서 산 2만 원짜리 우쿨렐레

생각해 보니, 평소에도 장르 구분 없이 노래를 좋아한다. 1999년 캄보디아에 1년 동안 살 때에도,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라이브 곡들을 다운로드하여 CD 다섯 장으로 구워서 가져가서 매일 들었다. 미동부여행, 미서부여행, 록키여행, 유럽여행을 했을 때, 또 가끔 국내 출장을 갈 때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열심히 부르면서 그 긴 시간을 버티곤 하니 말이다.


해외 한 달 살기를 많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니 기타를 들고 다니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우쿨렐레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당근마켓에서 2만 원에 우쿠렐레를 하나 구했다. 좋아하는 노래 악보를 구하고, 우쿨렐레 코드를 연습해서 심심할 때 혼자 그냥 지 멋에 뚱까뚱까 불러보려고 한다.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아마 어려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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