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뭘 하고 싶나? 계륵 같은 글쓰기?
ISTJ. 창의적인 글쓰기나 '시'를 잘 쓰지 못한다. 시를 써도 도식적이거나 계산적이거나 뻔하고 산문 같다. 노량진과 장승배기 사이에 있으나 이름은 '영등포'인 고등학생 시절에, 학교 최고의 동아리 도서부 독서토론회 후, 이런저런 토론내용과 감상을 적은 독후감을 제출했다가 얼떨결에 최우수상을 받았던 적은 있다. 물론, 성적이 추락했던 고등학교 때도 국어는 모의고사 만점을 받기도 했었고, 국어국문학과를 고민하긴 했었다.
앞선 글에서, 몇 곡을 작곡한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노래패 선배(용호 형)가 내 곡은 버리고 가사만 살려서 다시 곡을 붙였다. 그리고 동아리 차원에서 학내 민중가요 창작가요제에 출전했다. 물론 입상은 못했다. 음악적인 재능보다는 그나마 글이 좀 더 나았다는 정도일 거다.
손글씨도 느리고 잘 못썼다. 대학에서 시험을 볼 때도, 친구들은 답안지 앞뒤면을 다 채우고 "교수님, 답안지 한 장 더 주십시오!"를 외칠 때, 난 첫 페이지를 다 채우지도 못했다. 20대 10여 년간, 한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일주일에 3~5번 정도 QT(Quiet Time, 매일 성경 묵상)을 했고, 1번은 성경과 강해설교문을 기초로 3~4페이지의 성경묵상과 적용의 글을 썼다. 역시 느린 손글씨로 힘들었다.
그런데, 다행히 1990년대 PC의 시대가 도래했다. 플로피 디스크 2장을 넣어서 쓰던 XT에서, AT, 286, 386, 486, 586 펜티엄까지. 아마 2학년이던 1990년 정도부터 보석글, 아래한글 등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내에 시위 전단지가 돌면, 유인물 내용보다 "와, 이거 레이저프린터로 뽑았나 봐!"가 더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등사기에서 도트 프린터, 잉크젯 프린터에서, 레이저 프린터까지. 동기 중에는 타자학원 다니면서 타이핑 자격증을 따던 친구도 있었는데, 수년만에 순식간에 PC로 타이핑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모님이 100만 원 넘게 들여 사 주셨던 AT컴퓨터부터 시작해서, 거의 생각의 속도와 비슷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0년간 성경묵상과 기록의 양이 대략 3,000에서 5,000페이지 정도가 될 것 같다. 의도치 않게, 10년간 글쓰기 훈련이 된 셈이다.
20대 후반부터는 PC통신 천리안에서 '무릎'이라는 닉네임으로 동호회 활동을 하며 신변잡기와 성경묵상 등 이런저런 글을 썼는데, 나중에 보니 그 글도 수백 페이지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대에는 천리안 동호회에서 만난 멤버들을 주축으로 싸이월드에서 '벌레들의 책모임'이라는 책모임을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년간 운영했다. 그때도 이런저런 글들을 썼다. 40대에 가까와서는 개혁교회로 교회를 옮겨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썼다. 교회가 분열을 겪은 후에는 새로운 교회 카페에 글을 썼다. 40대부터 얼마 전까지는 거의 10년간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논평과 입장문, 성명서, 선언문 등 아마 최소 100여 편 이상의 글을 썼다. 그러면서, 한겨레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에도 짬짬이 약간의 글을 썼다.
뒤돌아 보니, 35년간 이런저런 글을 써 왔다. 타이핑으로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구어체 말투의 만연체가 된다. 오해 없이 내 생각을 설명하려다 보니, 주절주절 설명이 길어진다. 난 사람들의 평가와 반응에 매이고, '관종'끼가 있다. 조회수와 좋아요 수, 댓글에 민감하다. 악플에 쉽게 상처받는다. 반응이 없으면, 기운이 빠진다.
10여 년 전쯤인가, 그 사이에 썼던 글 중에 그럴듯한 글들을 모아서, 출판사 편집자인 후배에게 책으로 낼 수 있는지 물었다. "오빠 글은 약간 계륵 같아. 이미 시중에는 이런 책들이 많아. 자기 돈을 들여서 출간을 하면 모르겠지만, 출판사에서 인세를 줘가며 책을 내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정확한 평가일 거다. 아쉬움에 내 글들을 아래한글로 편집해서 출력 후 스테이플러로 찍고 청테이프로 감아서 한 권짜리 책으로 만들었다. 세 딸들이 읽어주길 바랐는데, 안 읽는다. 내 딸들도 안 읽는데, 출간은 무슨 놈의 출간.
맞다. 계륵 같은 글쓰기. 뭔가 있을까 싶은데, 사실은 별로 뜯어먹을 게 없는 글. 그게 나의 글쓰기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진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늘 결심한다. 대신, 은퇴 후에 영양가 없는 글이라도 써야겠다. 브런치도 그래서 시작했다. 난 관종이니까, 오늘도 씨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