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알바, 고리대금업과 야매 장난감 팔이
2025년 8월 31일 명예퇴직. 명퇴신청서를 썼으니, 이젠 못 먹어도 GO다. 은퇴기를 쓰면서, 내 인생에 아마도 가장 오랜 기간 해왔던 직장인의 삶에 대해서도 잡설을 풀어 보려 한다. 시간순으로 풀어봐야 할 테니, 먼저는 용돈벌이, 알바부터 풀어야 할까?
사당동 남성국민학교 시절, 집으로 돌아오는 길(사실은 약간 돌아서 가야 하는 길)에 '은방울집'이라는 떡볶이집이 있었다. 한 접시, 떡을 12조각 정도 주고, 어묵은 한 4,5 조각 정도를 주던. 그 근처에 '가나안제과'라는 빵집도 있었지만, 거기는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식빵이나 맘모스빵을 샀을 뿐, 내가 사 먹을 수 있는 레벨의 간식은 아니었다. 가끔 "엄마, 100원만"해서 받은 동전 한 개를 들고, 하굣길에 들려서 어묵국물과 함께 먹던 떡볶이가 국민학생 어린이 경규의 유일한 사치였다.
그러던 내가, 5학년이 되자 감히 매달 용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1,000원. 그런데, 내가 사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작고 귀여운 플래시. 이미 우리 집에는 큰 배터리가 들어가는 엄청 환한 큰 플래시가 있었는데, 난 왜 굳이 작은 플래시를 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플래시는 무려 1,500원이었다. 돈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내 생애 최초의 알바가 시작된다. 명절에 우리 집에 모인 외삼촌들이 고스톱을 칠 때, 잔돈을 빌려주고 개평을 뜯는 알바. 엄청난 고리대인 줄 그때는 몰랐고, 되게 똑똑하고 쉬운 돈벌이라고 생각했다. 천 원이, 곧 이천 원이 됐다. 플래시를 샀다. 금방 망가졌다.
그런데 잠깐의 돈맛을 본 후, 순진한 어린이 경규는 돈독이 오르기 시작한다. 당시 우리 집에는 많은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요즘처럼 하얀 A4용지가 아닌 누르스름한 갱지, 아버지가 회사에서 가져온 갱지가 많이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시엔 엄마가 가내수공업 알바를 하셨었는지 우리 집에는 또 와이셔츠를 포장할 때 빳빳한 마분지에 셔츠를 고정하는 '플라스틱 클립'이 잔뜩 있었다. 그즈음에, 종이 접기가 학교에서 유행했는데, 난 갱지를 접어 작은 책을 만들어서 10원에 팔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샀던 얘들도 이상하다.) '플라스틱 클립'은 양쪽을 잡고 옆으로 당기면, 부서지면서 파편이 앞으로 날아갔는데, 나는 그걸 엄청 재미있는 총알이라면서 한 10개씩 아이들에게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 정도면 봉이 김선달이나, 돈 받으면서 친구들에게 페인트칠을 시켰던 허클베리핀 수준 아닌가.
그렇다. 어린 나의 첫 알바는 고리대금업자에, 순진한 아이들한테 조악한 접은 종이와 플라스틱 클립을 팔아먹는 야매 장사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