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탁구장 야간청소, 식기세척, 연구조원.
중고등학교 때에도 알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주로 우유배달이나 신문배달을 했다. 중 1이었던 1983년, 당시 가장 핫한 운동화인 프로스펙스가 2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신문배달을 하면 한 달에 2,3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난 아침잠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많은 집에서 그랬듯이 "공부나 해"라는 핀잔을 들었다. 게다가 나는 범생에, 샌님이었기 때문에 뭔가 적극적인 알바는 생각하지도 실행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흘러, 국민학교 사기꾼 시절 이후 드디어 대학 신입생이 된 1989년에 수학 과외교습 알바를 시작하게 됐다. 청량리에 살던 동아리 선배의 고3짜리 여동생과 그 친구였다. 동아리 선배는, 잘 가르칠 자신이 없다는 내게, "대충 가르쳐도 돼. 나중에 동생이, 난 왜 과외도 한번 안 시켜줬냐는 소리 할까 봐 그냥 시켜주는 거야."라고 했다. 일주일에 2번 가고, 한 달에 10만 원을 받았었던가. (얘들아, 대학은 갔니?)
어쨌든 난 열심히 알바자리를 찾고 도전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냥 돈이 없으면, 졸라매고 안 쓰고 버티는 식이었다. 그다음 알바는 4학년 때 한번 독립해서 자취해 보겠다고 학교 앞 동안교회 근처에서 살던 때, 경희대 정문 앞 탁구장에서 야간 청소 및 정리 알바였다. 선배랑 둘이서 매일 했는데, 둘이 합해서 10만 원이었던 것 같다. 밤에 청소를 끝내면, 탁구장에 있던 만화 드래곤볼을 읽거나 탁구를 치다가 주인아저씨한테 걸려서 욕먹었다.
제일 긴 알바는, 군대 시절 경희대 학생회관에서 했던 식기세척 알바였다. 아마 1년을 넘게 했을 것 같다. 어떻게 군복무를 하면서 알바를 하냐고? 난 수방사 방공단의 경계취사병으로 18개월 근무했는데, 사당역에서 보이는 방배동 돌산 꼭대기로 격일 야간근무, 곧 이틀에 한 번씩 5시까지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8시에 나왔다. 알바는 물론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가능했던, "야, 넌 무슨 백으로 여기 왔냐?"는 질문을 받던 단기사병들의 꿀보직이었다. 학생회관 학생식당의 식기세척 알바는 엄청 덥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학생식당 메뉴가 1,200원에서 1,700원 정도였던 당시, 점심시간이 지나면 밥도 주고 가끔은 아주머니들이 특식이나 팥빙수를 주기도 하셔서 좋았다. 아르바이트비도 꽤 높은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알바는, 1995년 가을 대학원에 복학 후 1996년 가을 한 학기 정도 했던 풀무원 ISP(Information Strategic Planning) 프로젝트에 연구조원(이라고 쓰고 시다바리라고 읽는다)으로 참여했던 경험이다. 논문지도 교수님의 은혜로, 크게 도움은 안 되는 인력임에도 배우면서 월 40~50만 원의 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얇은 알바 경험은 끝이 났고, 본격적인 직딩기는 다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