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에서, 학부 수업에서 재미있게 들었던 노사관계론을 할지,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경영정보시스템(MIS)을 전공할지 고민을 했다. 당시에는 선교사로서 진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암만해도 해외에서도 직장을 구하기 나을 것 같은 MIS를 선택했다.(이제 와 생각해 보면, 결국 약 10년간은 IT업무를 했고, 또 한 10년 정도 노동조합활동을 했으니, 둘 다 한 셈이 되었다.)
1993년에 대학원에 입학한 후 바로 군복무를 마치고, 1995년 가을학기 복학해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4학기가 시작되던 1997년에 논문지도교수님의 연구년이 있어서, 겸사겸사 휴학하고 논문을 1년간 미뤘다. 그런데 아뿔싸. 하필, 1997년에 아시아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쳤고, IMF구제금융을 받는 극심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대학으로 대기업에서 '추천서'가 오던 시절이었고, 경영학과 정도면 골라갈 수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일찍 졸업해서 은행 등 금융회사에 취업했던 친구들도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에 공부 잘하던 친구 석원이도 거의 100군데에 원서를 넣어서 겨우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연구년을 마치신 교수님은 논문지도를 서두르셨고, 1997년 말 겨울부터 열심히 논문을 쓰고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에서 갈 수 있던 최고의 IT회사는 IBM이었는데, 교수님의 추천으로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IBM의 영어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전혀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영어실력이 엉망인 바, 바로 무참히 걸러져 버렸다. 그렇게 교수님이 다시 추천해 주신, 작지만 실력 있는 IT컨설팅회사에 취업이 되었고, 1998년 4월부터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가서, 7시 반부터 영어회화학원을 다니고, 9시부터 일을 했다. 빌딩 지하 식당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와 오후에 일을 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식당가나 근처 식당가로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올라와 야근을 했다. 집에 도착하면 11시쯤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대전 수자원공사로 프로젝트 진행상황 브리핑을 하러 가야 했는데, 그 전날은 새벽 3,4시쯤까지 작업을 하고, '킨코스'에 들러 보고서 복사와 제본 후 다음날 기차를 타고 대전을 다녀왔다.
그전까지, 늘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던 내가, 군복무를 하던 때와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적이 없다. 그제야 깨달았다, 난 늘 '의지'의 부족이라고 나 자신을 한심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책임'이 문제였다는 것을. 이후에 발생할 문제들이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내 책임'이라는 인식이 생긴 후, 그전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던 시간 맞춰 일어나기가, 실패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우리 팀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모 차장이었다. 그는 골초였다. 늘 좁은 사무실에서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는데, 그 연기가 너무나 괴로웠다. 오죽하면 연기가 사라질까 해서, 집에서 커다란 양초를 가져와서 내 앞에 불을 켜 놓았다. 하지만,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잠시 업무에서 쉬는 시간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나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자리였다. 담배도 술도 하지 않는 나는, 잠시의 짬을 내어 쉬거나 인간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없었다. 난 차를 많이 마셨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만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당시 투입된 일은, 수자원공사만의 IT개발방법론을 수립하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업무분석과 데이터분석, 시스템 개발의 과정을 최소 10여 년 이상 경험한 베테랑이, '수자원공사의 IT개발 시에는 이러한 절차와 로직을 따라 하십시오'라고, 수자원공사의 업무와 데이터, 시스템을 분석하여 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로젝트 매니저인 모 차장에게 딸린 팀원은 나와 다른 한 명의 신입직원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마도 우리 두 명의 신입사원이 할 수 있고 해야 했던 것은, 앞선 해외 자료와 서적을 찾아서 읽고 정리해서 IT개발방법론 각 챕터의 초안을 만들어 내는 일이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회사에서 명확하게 나의 업무를 정의를 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난 영문자료를 읽고 그것으로 뭔가를 만들어 낼 만한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영어실력도 부족했지만, 실제 프로그밍의 경험조차 없었기 때문에, 업무 및 데이터, 시스템 분석 및 설계와 관련한 용어들조차 익숙하지 않았다.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정확한 목표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능력도 경험도 부족한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정시에 퇴근하려고 해도 눈치가 보였다. 모 차장은 내게 짜증을 냈다. 나는 위축되고 버벅댔다.
그렇게 정신없이 3개월이 되어가던 때에, 대표가 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