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썰-04] 70년 개띠 아재 직딩기

You're fired.

by 딸삼빠

"경규 씨는 IT컨설팅 쪽에는 안 맞는 것 같아. 오히려, 프로그래밍이 잘 맞을 것 같아. 그래도, 수자원공사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12월까지는 근무해 줬으면 좋겠어."


일종의 3개월 수습기간 후 해고 예고, 그나마 6개월의 시간을 줬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까.


당시 우리나라에는 정보기술방법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데이터 모델링과 프로세스 모델링, BPR, ISP, DMB, ERP 등이 막 도입되던 초기였다. 컴퓨터공학이나 프로그래밍의 경험을 먼저 쌓은 후에, 대학원에서 MIS를 전공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고, 베이스 없이 그 위에 쌓은 지식은 경험과 실제에 기반하지 않고 겉돌았다.


늘 불안했었고, 힘들었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대학을 마치고 군복무를 마치면서 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어떤 것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평소에 즐겨 읽던 진보적인 월간지를 내던 기독교 언론사에서 마침 기자공채를 하기에 원서를 냈다. 글을 잘 쓸 자신은 있었다. 좋아하던 월간지였고, 그 기독잡지의 지향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급여는 낮고, 월 마감을 앞두고 며칠간은 야근이 있다고 했지만, 원체 IT컨설팅 회사에서 늘 야근이 일상이어서 아무런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그 기독언론사는 나를 뽑지 않았다. 미채용 사유에 대해서는, 재정적인 문제라고 했다. 대놓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아마 내가 보수적인 기독학생선교단체 출신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아니었겠나 짐작했다.


한층 더 난감해졌다. 그 무렵은 내가 10년간 속했던 그 캠퍼스 선교단체의 여러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미움받고 배척당하던 시기였다. 선교단체에서는 '너는 여기에 속할 수 없는 배신자다.'라는 공격을 받았고, 외부에서는 '넌 그 선교단체에 속한 자라 거절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점심을 굶으며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대안이, 연변과학기술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쪽과 연결이 되어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그는 초기와는 달리 '석사학위'만으로는 강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 대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현지인을 가르치는 일종의 직업학교인 '프놈펜기술학교'의 컴퓨터 교사 자리에 적절한 후임이 없어서 어려운 상황인데, 거기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캄보디아. 수백만 명을 학살한 '킬링 필드'라는 영화로 유명한 후진국, 얼마 전까지도 내전이 있었다는 곳,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식 학교도 아니고, 이후 경력에도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기도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거절당하고 배척당하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떠올랐다. 곳곳에서 거절당하고 배척당하고 있는 내 현실과 겹쳐졌다. 직장과, 사랑하던 선교단체 선후배들의 모진 말과 표정과 태도, 의욕적으로 도전했던 기자 채용 거절. 눈물이 흘러서, 뒤통수로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러다 문득, '나도 역시 배척하고 거절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필요하다는데, 나도 후진국이라고 정식 학교도 아니라고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거절하고 있었다. 거길 가야겠구나.


그렇게, 1999년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게 되었다.(https://brunch.co.kr/magazine/1999le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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