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썰-05] 70년 개띠 아재 직딩기

1999년 캄보디아 후 2000년

by 딸삼빠

캄보디아에 있던 1년간(https://brunch.co.kr/magazine/1999letters)은 이제 와 다시 돌아보면, 군대 시절과 비슷한 성격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고민과 눈물을 흘린 후 결정한, 캄보디아에서의 삶이었지만, 절반 정도 지났을 때부터 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싹텄다. 군생활에 적응이 된 후에는 다들 제대 후를 걱정하는 것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 진로에 대한 질문은 잠시 수면 아래 있었을 뿐, 근본적인 질문과 가슴 답답한 걱정은 다시 슬금슬금 제자리를 찾아왔다.


수서소망교회의 담임목사이자 목회지원회 대표인 손은경 목사님께서 C3TV라는 기독교 방송사를 소개해 주셨다. 당시 C3TV 사장은 영등포산업선교회 등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셨던 인명진 목사님이었다. 인목사님은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하셨다는 이유로 독재정권에서 옥고와 고문을 당하셨던 분이었는데, 후에는 안타깝게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등 당외인사로 활동하셨다.


나는 PD일에 관심이 좀 있었는데, 정작 한국에서 돌아와서 인명진 목사님을 만나 뵈었을 때는 C3TV에서 전산교육실 담당을 제안하셨다. 대학원 때 전산실 조교를 했고, 프놈펜기술학교에서도 컴퓨터 교사였고, PD경력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그분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였지만, 자기 분수를 모르던 난 서운했다.


결국 대학원 논문 지도교수님께서 설립한 투이정보기술이라는 벤처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 1998년에 권고사직 당했던 회사와 후에는 합병하게 된다. 당시 나는 석사과정 동안 배웠던 시스템분석 설계, 데이터와 프로세스 모델링 등의 업무에 자질이 없다고 첫 번째 회사에서 해고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투이정보기술에는 잉여인력과 같은 존재였다. 은사님의 은혜로 일자리를 배려받은 것이었다.


방배동에 있던 회사에 출근은 했지만, 사실 회사 내에서 정확한 내 역할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냥 주어진 업무를 이것저것 했다. 'IT벤치마킹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의 실무와 문서작성과 인쇄 등 잡무를 담당했다. 전 세계 선진적인 기업의 IT 역량을 평가 및 분석하여 분야별 세계 일류기업의 IT 역량을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였다. 도교수님의 MS오피스 활용실무서 작성을 돕고, '전철에서 위치기반 광고 특허 출원' 작업을 준비했다. 솔직히 어느 것도 사실 회사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아침저녁으로는 중앙컴퓨터학원이라는 곳에 다니면서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지도교수님께서 급여를 받고 일하면서 프로그래머로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덕분이었다.


몇 개월간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배운 후에,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이라는 대학로에 있던 기관의 프로젝트에 파견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프리챌이나 싸이월드 등 사용자가 템플릿을 선택하면 원하는 웹페이지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원리의 프로젝트였다. 학원에서 달랑 몇 개월 최소한의 기본과정을 겨우 마친 완전 생초보 프로그래머가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무능한 제자를 거둬주시고 기다리며 기회를 주신 은사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그렇게 2000년 한 해가 지나고, 2001년 봄이 되었다. 본사에 있던 어느 날, 대학교 전산실 조교시절 몇 번 뵈었던 교직원 선생님 한 분이, 추진하는 사업을 논의하러 한 후배를 만나러 회사에 들리셨다.


후배가 말했다.

"그 자리는 선배한테 잘 맞겠는데?"

"어디?"

"경희대 정보처리처. 지금 채용중인데, 적절한 사람이 없대."

"내가 되겠어?"

정보처리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와 주면 우리는 좋지. 오라클 DBMS나, SQL, 파워빌더는 교육을 보내주니까 배우면서 해도 된다."


갑자기 그렇게 모교의 교직원으로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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