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뭘 하고 싶나? 벌레들의 책모임 시즌2?
어렸을 때부터 난 책 읽기를 좋아했다. 중앙일보 배차실에 근무하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집에 소년중앙 등 월간지가 있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하던 때부터도 만화를 보며 이야기를 상상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서재식이라는 친구네 놀러 가면 친구랑은 안 놀고 한국전래이야기라는 전집만 읽어서 친구가 싫어했다.
예전에는 계몽사, 금성사 같은 출판사의 방문판매 영업사원들이 많았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전집으로 책들을 사주었다. 한국과 세계위인전접, 세계명작전집, 신동우 화백의 만화 한국사, 컬러학습대백과 등. 모두 수십 번씩 읽고 또 읽었다. 하도 읽어서, 한국사 같은 경우는 따로 국사책을 공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수업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아무런 자료 없이 역사를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5학년 여름방학 때였던가, 방학 내내 방바닥에 누운 채로 엄마가 새로 사 준 60권 세계명작을 읽었고, 방학이 지난 후 시력이 0.3과 0.5로 떨어지면서 안경을 써야 했다.
대한민국 대부분 부모님들이 그렇듯, 중학교에 가면서부터는 '공부 안 하고 책을 읽는다.'며 싫어하셨다. 중학교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특히 2학년 때 서정심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좋은 책들을 '낭독'해 주시거나 독후감, 학급신문 등을 만들도록 하셨다. 이제 생각해 보면, 요즘의 '혁신학교'와 같은 교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1980년대 시대를 앞서간 좋은 선생님들이셨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고, '삼중당'에서 나온 손바닥만 한 소설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지금은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들께 비밀리에 고입 연합고사 자료를 입수해서 180점 이상자 중에서만 선발했던 '도서부'가 되었다. 보통 경쟁률이 10대 1이 넘었고, 선배들의 까다로운 면접과정을 거쳐 13명을 뽑았다. '똥퍼'라고 불리던 우리 학교에서, 매년 2,3명씩 서울대를 가던 이상한 동아리였다. (이 중엔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했던 선배도 있고, 개콘과 코빅 왕 PD였던 대단한 후배도 있다.) 그런데, 사실 대단한 학습활동을 하거나 우열반 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주된 일은, 매일 점심때 서고에 모여서 점심 먹고 농구를 하는 정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독서토론회를 하고, 1년에 몇 번 신문을 만들고, 한 번 회지를 만들고, 여름수련회를 한 번 가는 게 다였다. 대입이 전부인 고등학교 시절이었기 때문에, 폭넓은 독서를 하지는 못했지만, 도서부에서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다. 솔직히 '그냥 혼자 책을 읽는 것'과 '책 나눔'이 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깨달음과 배움에 대해서 좀 놀랐던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잦아들던 나의 책 읽기는, 20대를 맞이하면서 정체기에 접어든다. 소위 운동권이었던 1학년 때는 운동권 책들 몇 권 정도를 읽었을 뿐이고, 2학년 때부터 거의 10년간은 신앙서적을 중심으로만 읽게 된다.
그러다가, PC통신 천리안 내 IVF동호회에서 알던 사람들 몇과 함께, 2001년 4월부터 싸이월드에 '벌레들의 책모임'이라는 책모임을 만들고, 그냥 나이가 많아 운영자를 맡게 되었다.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정도의 독서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2008년 문을 닫을 때까지, 한 달에 한 권씩만 느슨한 책모임이 이뤄졌다. 2001년 10월에 결혼을 하고서, 세 딸이 태어나고 NGO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이 책모임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아현동의 한 교회 카페에서 모이다가, 민들레영토에서 모였다. 아마도 나의 사회의식은 이 책모임과, 1999년 캄보디아에 있을 때 읽을 게 없어서 열심히 읽었던 한겨레21 과월호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모이면, 신변잡기를 한 시간 정도 자유롭게 떠들고, 책 얘기를 하면서 자신들이 느낀 점, 생각한 점을 나누었다. 책모임이었지만, 동시에 친목모임이기도 했고, 작은 공동체와 같은 느낌이었다.
'벌레들의 책모임'의 문을 닫은 후, 몇 년 후에 다른 책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직장과 교회에서 시도했었다. 하지만, 잘 되지 않고 금세 문을 닫았다. 이제 은퇴 후에, 다시 책모임을 시작해 보고 싶다. 오프라인에서 어렵다면, 온라인으로 한 달에 한 번쯤은 참여하려고 한다. 나이 든 꼰대를 누가 끼워줄까 염려는 되지만, 뭐 30대 초반에도 이미 '옹'으로 불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