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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해 Jul 02. 2024

ADHD와 살아내기(6)

태초의 가족은 행복했을까?

마냥 길을 걷다보면 하천에서 오리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깨끗하지도 않은 하천인데, 오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쉬고 있거나 물 위를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다. 때로는 흙탕물인데도 같이 종종종 다니기도 하고, 비가 쏟아져도 그냥 비를 다같이 맞으면서 부리를 몸 속에 파묻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 오리 가족들은 행복할까? 아니, 태초에는 아무 소유도 없었는데 태초의 가족은 행복했을까?




태초의 아담과 이브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벌거벗었지만 거리낌이 없었고, 함께 걷다 힘들면 좀 쉬어가며 바로 자신의 머리 위의 과실을 따먹으며 함께 얼굴만 봐도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때는 시간이라는 개념도 없었겠지. 그렇게 거침이 없었지만,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여자는 평생 자식을 잉태하고 기르는 고통을 죄의 산물로 받았고 남자는 평생 자신의 가족을 위협하는 짐승을 내쫒거나 하루종일 밭을 갈아 식구들을 먹여야 하는 고통을 죄의 산물로 받았다. 죄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니, 너무 행복해서 행복의 개념조차 몰랐을 것이다.




왠지 나의 죄의 산물은 결혼인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 몰랐던 것들을 알게되면서 결혼생활은 너무 힘들었고, 아이 또한  adhd라는 사실이 나를 옥죄었다. 더구나 우리 딸은 adhd 뿐 아니라 경계선 지능까지 갖고 태어났다. 결혼 10년이 다 되어서야 시댁 쪽에 지능이 낮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역시 시댁 쪽으로 우리 딸 포함 세 명이 adhd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딸 아이가 말이 느린 것이 내가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지 않고 끼고 있어서 그렇다는 시어머니의 말씀, 내가 집에서만 아이를 끼고 있어 애가 겁이 많다는 시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속에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분노와 살기까지 내 수면 위로 떠오르고는 했다.




남편은 신기하게도 이런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본인에게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adhd 특성상 누군가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내가 '이러이러한 사실이 있다.'라고 말해도 소 귀에 경 읽기라 거의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애시당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남편이나 딸 아이나 자신의 어떤 특정한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갖는 상처를 관찰하는 경우는 없다. 딸 아이는 아무래도 여자라 조금 더 감수성이 예민한 편은 있어서 내가 울컥하거나 하면 같이 따라 울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차, 태초의 가족이 아니면 그럼 태초의 솔로였던가? 아니면 누군가의 말대로 태초의 '각자'가 가장 행복한 걸까? 오리 가족이 무엇을 하던간에 웃음을 짓게 마는 것은 바로 가족의 형태 그 본연의 모습때문일 것이다. 인스타든 유튜브든 가족의 겉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행복해보일 수 있다. 물론 그 안에 서로의 상처가 썩고 곪은 상태로 숨겨져있을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웃음 짓기에 충분하다. 상처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상처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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