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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Jul 21. 2016

그들의 일상을 창의적인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

지금 내가 미술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일터는 간단하게 정의하기에는 다소 복잡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일단은 여자들을 위한 residential treatment center (환자들이 치료가 끝날 때까지 일정기간 그곳에 머물면서 생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지원을 받으며 치료를 병행하는 곳)이고 21살 이상의 알코올/마약 중독을 겪고 있는 어른들과 21살 미만의 청소년들의 생활/치료 공간이 두 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조건중 또 하나는 임신을 했거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여자이어야 한다. 이곳은 예비엄마와 엄마들에게 자신의 문제가 아이와의 애착/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부모가 되는데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집중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아이와 함께 이곳에 들어오는 엄마들에게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보육원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복잡한 만큼 꽤 훌륭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그 점이 맘에 들어 한 시간이 걸리는 출근시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일하기로 결심했었다. 


나는 이곳에서 어른들 집단 미술치료와 청소년 집단 미술치료, 그리고 필요에 따라 개인 미술치료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주로 아이들과의 치료 경험이 많기 때문에 조금씩 회사에서는 모아 치료나 아동 치료 세션을 맡아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만큼의 시간을 내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작년 여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높은 양질의 치료 서비스에 놀랐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치료는 치료실 안에서만 이루어졌었다. 내담자는 치료실에 와서 1시간가량의 치료를 받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이곳은 잠정적이지만 이곳이 자신의 집이고 삶의 전부인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동시에 먹고 자고 하는 곳이기에 대부분의 내담자들과의 관계가 치료사-내담자 경계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깊다. 지난 6개월 동안 어리게는 14살부터 많게는 40살이 넘는 여자들의 출산을 지켜봤고 마약 over dose로 한 여성이 죽었고 대여섯 번의 여자들 간의 격렬한 몸싸움을 봤고 그로 인해 퇴출당한 여자들이 있었으며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치고 이곳을 졸업한 몇 명의 여성들도 봤다. 이 모든 과정을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지켜봤고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을 때마다 그에 대응하는 내 감정적 반응은 단순하지 않았다. 안타까움이라던지, 자랑스러움이라던지, 분노라던지 혹은 슬픔마저도 단순히 치료실에서만 이루어지는 내담자에게서 느끼는 그것보다 깊고 풍부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치료를 하다 말고 아이에게 젖을 물러야 하는 상황도 있고 갑자기 화가 나면 그룹에서 사라져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를 지른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잠옷 차림에 머리는 산발 인체 며칠간 샤워를 안 하고 참여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아이를 견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RA(residential aid)들이 여러 명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들이 먹고 자고 씻고 애를 키우는 전반적인 생활을 옆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이다. 워낙 정서적/행동적 문제가 많다 보니 RA들과 시도 때도 없이 부딪히고 싸우면서 6개월간 그만둔 RA들도 수두룩 하다. 특히나 공격적 성향이 강한 아이는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아이를 제어하기 위해 RA가 치료에 함께 들어오기도 한다. 별 탈 없이 치료가 끝나는 때는 나와 RA사이의 무언의 교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서로 안전하게 치료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안도와 축하의 의미랄까…. 


지난주 청소년 집단 미술 치료 시간에 두 아이 사이에서 말싸움이 붙었다. 서로 빨간색 물감을 먼저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욕설로 이어지고 서로의 자식을 헐뜯는 비난으로 이어지고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져 스태프가 그중 한 아이를 개인 치료실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잠그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물론 다른 아이가 그 문 앞에 서서 욕설을 퍼부으며 문을 열라고 몇 분 동안 소란을 피웠지만 결국 소란을 멈추고 잠시 자기 방에 들어가 진정한 다음 다시 나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기에 나 또한 그들을 진정시킨 후에 그룹을 진행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의 얼굴 표정과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사건은 매일매일 겪는 그들의 일상이다.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고 관심도 없다. 모두들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한다. 그 어느 누구 하나 싸움을 지켜본다 던 지, 말리려고 시도하지 않고 자기가 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환경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그리고 때로는 자기 자신이 직접 겪기도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싸움이 났을 때 불구경하듯 모여들어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뭔가 도울 일이 있지 않을지 지켜보는 구경꾼들의 마음 조차 이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일상이기에…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넘어갈 것인지, 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짚고 넘어갈 것인지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방금 전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잖아… 너희들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니? 무슨 감정이 들고 무슨 생각을 했니?” 대부분 예상했던 답들을 내어놓았다. 퉁명스럽게 “원래 그래,” “늘 있는 일인데 뭐,” “신경 끄는 게 최고야,”라는 답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너희는 그랬구나. 나는 말이야, 나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면 솔직히 조금 긴장되고 무섭기도 해. 내가 무서운 건 내가 어떻게 될까 봐가 아니라 이렇게 싸우다가 혹, 누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그리고 너네가 혹시 두렵거나 힘든 마음이 들진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일을 매일매일 겪고 살았던 너희들은 이런 마음을 매일 가지고 살면 많이 힘들 테니까 그래서 무관심이라는 대응책을 쓰는 것 같아. 매일 두려운 일이 일어나서 매일 두려운 마음을 느끼면 너무 힘들 테니까. 그렇지? 내가 맞니?"


“응 맞아. 바로 그거야."


누군가가 작은 소리라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계속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동안 말없이 작업을 하고 작업에 비친 마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왔다. 언제나 그랬듯 청소년 그룹은 말이 없다. 작업을 활발히 하지만 말을 해야 하는 시간이 오면 침묵이 시작된다. 나는 그들의 침묵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침묵 속에서도 메시지는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 주는 편이다.  내 느낌이 맞으면 맞다고 틀리면 틀리다고 대답하는 이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우리는 소통하고 있다. 


그룹치료가 끝나고 싸움을 했던 두 아이들 따로 만났다. 둘 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아직도 화가 나 있었지만 불과 한 시간 전처럼 서로 죽이겠다고 덤비지는 않았다. 그것은 일상이기에 특별히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건 아닌 듯 보였다. 개인 치료실로 숨었던 아이에게는 맞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한” 것에 대해 칭찬해 주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는 폭력을 행사했다가 지금까지 노력한 것들이 헛수고가 되고 벌점을 받아 졸업이 늦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기가 세운 목표에 집중하는 그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끝까지 소란을 피웠던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룹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그림 작업을 마친 것에 대해 칭찬해 주었다. 비록 나와 면담하는 그 순간까지도 입에서 욕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그림을 완성하고자 하는 동기와 열정을 칭찬해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잦은 몸싸움도, 욕설도,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한 비판이나 처벌도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잘 한 것, 혹은 긍정적인 요소로 판단되는 것을 찾아 말해주는 것은 생소한 일이다. 일상은 일상대로 놔두고, 일상이 아닌 것, 생소한 것을 자주 이야기해주고 싶다. 창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 행동에서도 장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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