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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Jul 23. 2016

Creativity as co-therapist

Diving in -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에 뛰어드는 것



Creative Process, 곧 창조적 과정은 예술 심리 치료, 특히 내가 공부한 미술 치료 이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콘셉트이다. 인간의 심리가 창조적 사고와 표현을 통해 효과적으로  다뤄지고 창조적 과정 자체가 치유적 과정이 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으로 숱하게 배우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적용해 온 Creative Process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아니, 어쩌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리고 제대로 그림 공부를 했던 대학교 시절에도 나는 창조적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치료를 잘 하는 가? 에 대한 질문에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지만 내가 과연 창조적인가? 에 대한 질문에는 망설이게 된다. 명확한 기준도 없을뿐더러, 창조라는 것은 혹은 무엇을 생각하여 작품으로 표현하는 활동은 그것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정확한 채점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창조’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 때문일 수 도 있다. 뭔가 대가들이 남긴 작품처럼 사람의 감정을 깊이 움직이고 그 겉모습의 화려함이나 기교나 기발함, 혹은 사이즈에 있어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창조적’이다라는 평가에서 쉽게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이번에 새로 구입해서 읽게 된 Lisa Ruth Mitchell의 “Creativity as Co-Therapist”라는 책에서 저자는 창조적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Incubating

    Initial Idea

    Diving in

    Flexible Commitment

    Flow

오늘은 그 다섯 개 단계 중 첫 세 단계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마지막 두 단계는 아마도 따로 시간을 내어 더 자세히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중, 첫 번째 단계가 Incubation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창조적 과정은 치료에 있어서 적용되는 창조적 과정을 말하고 있지만 나는 이 단계들이 예술가들에게도 그리고 창조적 일을 하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Incubating이란 치료사가 내담자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내담자에 대한 분석을 내려놓고 내담자에 대한 생각을 조금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쓰여 있다. 얼핏 읽어서는 이렇게 모호한 말이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깊게 읽고 생각해 보면서 나는 나의 창조적 활동에 얼마나 자주 이 incubating 단계가 생략되는지를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창의성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인데, 창조적 과정을 통한 치료와 치유를 하고 있는 내가 어쩌면 그 ‘다른 시선’으로 내담자와 그들의 이슈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여유)조차 갖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Incubating은 그러니까 어떤 창조적 활동을 하기 이전 내가 표현할 것, 그것이 어떤 생각이든 아니면 내담자, 내담자의 이슈, 그들과 할 활동이든 간에 그것에 대한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생각들과 마주하는 시간인 것 같다. 저자가 divergent thinking이라고도 표현했는데 아마도 분석적이지 않은 전혀 다른 framework안에서 내담자를 이해하고 느끼는 시도이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면, 내담자에 대한 이야기와 문제들을 심리분석적인 차원이 아닌, 나의 개인적 경험, 내가 따로 흥미를 느끼는 어떤 분야,  사회적 현상이나 역사적 관점, 예술. 학문적 관점 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내담자와의 창조적인 치료활동을 시작하는 효과적이고 건강한 준비 단계가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Initial Idea다. Incubating 단계에서 나온 다양한 아이디어 중에서 가장 적절하고 마음에 합한 idea를 골라 시작하는 단계이다. 그림 작업으로 친다면 Incubating은 무엇을 그릴지 brain storming 하는 단계이고 Initial Idea는 다양한 소재 중에서 하나를 골라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단계인 Diving In은  밑그림을 바탕으로 페인팅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Incubating과 Initial  Idea가 생각하는 단계라면 Diving In은 행동하는 단계이다. 치료과정에서 Incubating이 내담자와 그가 가진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면 Initial Idea는 그중 하나의 생각을 골라 내담자와 어떻게 그 생각을 나누고 치료활동으로 전환시킬 것인지를 다루는 과정이고 Diving In은 바로 그 활동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Incubating에서 Diving In까지 가는 과정이 때로는 한 세션 안에서 다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긴 시간에 걸쳐 혹은 몇 세션에 걸쳐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다. 


반복되는 치료 패턴과 내담자에 대한 이해의 틀이 제한적이고 딱딱할 때, 자신의 치료적 한계를 벗어나고 싶은 치료사들이 창조적인 과정을 깊이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고 중요한 일이다. 아마도 미술치료사나 표현예술치료사뿐 아니라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심리치료사들도 이런 창조 과정에 대한 훈련을 통해 자신의 치료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나는 모든 인간이 창조 과정을 경험하고 훈련함으로 어떤 분야에서든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Diving In 단계는 자주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Brain storming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떤 치료적 효과나 결과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면 불안은 극대화된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마저도 어떤 작품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 작품이 완벽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구현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시작하기는 어렵다. 처음 물감을 종이에 바를 때 느끼는 떨림은 자주 작가가 갖는 결과물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한 떨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의 힘을 믿고 자신의 행동을 끌고 갈 때 생각은 우리 안에서 밖으로 나와 형상화되며 소통이 되는 것이리라. 


치료사가 갖는 불안은 작가의 그것보다 더 복잡하고 민감할 수 있다. 혼자 이끌고 가는 작품과 달리 내담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 결과가 혹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안고 도전하는 이유는 내담자가 치료를 찾는 목적에 있다. 그들은 현재 자신의 상태에 어떤 이유에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상담치료를 찾는 사람들이다. 변화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엄청난 리스크 테이킹이다. 그런 내담자의 용기에 치료사도 용기를 가지고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담자를 변화의 자리까지 인도하기 위해 치료사 스스로 가지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모든 창조적인 것은 도전 정신으로부터 시작되고 도전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마주해야만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내가 일하는 곳에서 진행되는 청소년 미술치료 그룹의 역동이 정말 최악인 때가 있었다. 치료 센터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무기력함으로 이 반복되는 사이클을 방치하고 있었다. 그룹치료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개인 치료를 시도해 봤지만 여전히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모든 치료사들과 팀원들은 아이들의 폭력을 제제할 방법으로 감금이나, 센터에서 누리는 특권을 제한시키는 등의 아이디어를 내고 있었다. 


아이들의 폭력적 행동이 특별히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센터가 확장되면서 새로 그곳에 입소한 아이들이 많았다. 하루에도 한두 명씩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생겼고 그에 따라 새로 고용되는 RA (residential aid)들도 많았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유난히 힘든 아이들에게 이 환경적 변화는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안전성 (sense of safety)은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치료적 요소인데 센터의 확장으로 인해 가장 안전해야 할 그곳이 안전함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장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안전함에 대한 기준은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민하다. 아주 작은 변화나 자극에도 쉽게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안전함이 보장되지 못할 때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폭력적이 되거나 혹은 완전히 반응을 꺼버릴(Dissociation)  때가 있는데 아마도 이 모든 환경적, 시스템적 변화가 아이들을 아주아주 예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가하는 것은 안전함을 더 빼앗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환경적 변화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만 했다. 내가 두렵다고 느끼는 곳에서 나는 어떤 도움을 원했나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내가 가졌던 느낌과 생각들을 떠올려보았다. 특히 미국에 이민 왔었을 그때를 떠올리며 하루하루 긴장과 걱정을 견뎌내야 했던 어린 나를 돌아보았다. 내게 익숙한 것을 집착적으로 붙잡았던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첫 번째 시도로 나는 그룹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힙합 음악을 틀었다. 하드코어 힙합은 힙합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주제나 가사를 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익숙한 음악을 허용함으로써 평소에 절대 오지 않을 몇몇 아이들이 ‘그저 음악을 듣기 위해’ 그룹에 참여했다. 물론 주변 치료사들의 경고와 눈살 찌푸림을 무시해야 하는 도전이 있었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방법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그룹치료에 참여하기만 한다면 고립되어 혼자 그림 그리는 것을 혀 용했다. 그룹치료가 그다지 효과를 내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그룹 활동을 하는 것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았기에 개인적인 활동을 부분적으로 허락했고 최대한 서로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룹 안에 머물러 있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세 번째로, 치료실 벽을 종이로 메꾸고 Before I di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Candy Chang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시작한 community project인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community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렌즈를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로벌 커뮤니티 아트다. 나는 아이들에게 언제든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쓰도록 했다. ‘미국의 첫 번째 흑인 여자 대통령이 되는 것’부터  ‘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돕는 것’까지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어떤 아이는 끝까지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그 넓은 공간의 구석에 조그맣게 ‘단지 살아있는 것’이라고 쓰고 치료실을 떠나기도 했다. 비난과 욕설이 쓰이기도 했지만 지우지 않았다.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이유로 써 내려간 이 프로젝트가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물면서 함께 견뎌내고 있는 그들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주었다.  


놀라운 일은 그 이후로 미술치료 시간만큼은 그 어떤 폭력도 말썽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런 치료에도 참여하지 않는 아이가 미술치료시간만큼은 어김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나랑 별다른 대화 없이 지냈던 매우 폭력적인 아이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대화를 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전에는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그룹 운영방법과 프로젝트로 나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전에 대한 불안과 맞서 싸워야 했지만 내담자들과 함께 새로운 그룹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모든 새로운 도전이 긍정적 결과를 내지는 않겠지만 미술치료에서 치료사 스스로가 창조적 과정을 걷치지 않고 치료를 이끌어가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효과 없이 끝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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