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회사에서 만난 간호사 겸 시인인 co-worker와 열심히 준비해온 그림책 프로젝트가 있었다. 나는 이미 그림을 다 그려서 그래픽 작업까지 다 끝내고 파일 몇 개를 넘긴 상태였고 웹사이트까지 오픈된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co-worker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연도에 출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언을 하며 발을 뺐다. 물론 그녀는 개인적으로 일이 많았고 경제적 사정도 안 좋아서 내 그림에 대한 돈도 계약서대로 지불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일이 닥칠 것 같은 예감은 몇 달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일이 진전이 안되고 그녀가 내려야 할 결정을 안 내리고 계속 미루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스토리는 아니지만 열심히 그리고 준비한 일들에 대한 결과물이 엎어졌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다. 함께 준비하던 여러 가지 그림 프로젝트들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미술치료를 하면서 결과물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았다거나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이들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주 강조했었다. 생각해보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마음을 쏟아부어 준비한 일들의 결과가 어그러지거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자주 그들이 결과물에 실망할 때 "괜찮아, 넌 정말 열심히 했어, " 라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맘에 안 들어? 같이 고쳐보자, "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냥..."생각했던 만큼 좋은 결과가 안 나와서 속상하겠다."라고 함께 그 속상함 속에 머물러 줄 수는 없었던 걸까?
결과에 순응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결과가 안 좋아서 느끼는 상실감이라들지 자책감이나 슬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느끼고 나야 다시 시작을 하던 부분적으로 손을 보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함께 잘 느껴줄 수 있을까... 이번에 계획했던 일이, 그리고 많이 기대했던 일이 엎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면서 진심으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기대와 다르다 해도, 그 과정에서의 나는 충분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