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을 찾아 가자
충북 옥천에서 1966년 세상을 보러 나올 때였다. 오른
손의 손가락이 여섯 개다. 엄지 옆에 한마디뿐이다.
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엄지가 움직일 떼 약간의
흔들림이 있다. 뼈도 있고 손톱도 있었다.
귀엽고 앙증맞은 손가락이다. 엄마가 애개를 업고 있는
형상이다. 여섯 번째 손가락이 아기다. 엄마 역할은
엄지가 하였다. 포대기에 업혀서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
사진은 없다. 사진관에 가야 찍을 수 있는 시절이다.
흑백 필름 카메라를 가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의 가난함 집이다.
6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오른손 업지 옆에 작은
손가락 한마디가 없다. 그날 밤은 아파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마취가 풀리고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기억으로는 5분 정도 아픔으로
기절해서 잠이 들고, 다시 깨서 기절하는 것이 반복된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는 심한 통증을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마을에 있는 공장 식당에서 밥해주며 받은
돈으로 수술을 해주었다.
어머니는 충청도 산골에서 자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19살에 시집와서 20살에 큰애를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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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즈음에 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아서 분가했다.
충북 안내면에서 부산으로 갔다. 보리쌀 한말을 가지고
본가를 나왔다. 부산직할시 동래구 재송동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해운대구 재송동이다. 3년 전에 밤
열차로 무박 여행으로 찾아봤다. 살던 동네가
바뀌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초에 경기도 평택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매월 육성회비를 낸다. 450원으로 기억된다.
버스비가 학생 기준으로 15원 20원 정도였다.
3개월 정도 밀렸다. 반에 3명 정도가 못 내고 있었다.
며칠 뒤에 혼자 남았다.
선생님이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다. 다음 날도
육성회비 다는 봉투가 비어 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이름과 학년 반이 쓰여 있다. 12개인지 4개인지
모르지만 칸이 있다. 돈을 내면 도장이 찍힌다.
돈을 가져왔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학교 가는 길 옆에는 삼립빵 공장이 있다.
빵 굽는 냄새는 침을 삼키게 한다.
아버지는 목수일을 하였다. 생활비를 가져오는
날이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빵공장에서 발길을 돌린다.
빵공장을 지나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지나면 작은
개울을 다리로 건넌다. 수영 천 옆으로 밭이 길게
펼쳐 있다. 수영천 끝은 수영 앞바다가 있다.
바다를 가기 전에 부산 비행장이 있었다.
둑 아래에는 홍당무 밭이 있다. 밭 둑에는 탱자나무가
담장처럼 둘러진 곳도 하나 있다. 과수원이다.
손이 들어가는 곳에 탱자 열매가 잡힐 때도 있다.
탱자나무 가시가 크고 억세서 고동의 살을 빼먹을 때
훌륭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어느 날을 홍당무를 하나
뽑다가 밭주인의 소리에 놀라 도망을 친다.
홍당무를 버리고 뛰는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가방을 내려
놓고 몰래 나온다. 다른 애들보다 한두 시간 정도
빠르게 온 것이다. 이렇게 한 달 정도 되었다.
그때 함께 놀던 3학년 학생과 중간에 준 육성회비를
날렸다. 가져가야 할 돈이 부족하고 땡땡이를 쳤기에
학교에 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3학년 아이가 내
돈을 가지고 그날 구멍가게에서 빵 하나를 사주었다.
다음 날부터는 혼자서 놀게 되었다.
어머니가 아파서 행상을 가지 않은 날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종아리 매질에 당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2일 안 갔다고 실토를 했다. 아버지에게 알렸다.
다음 날은 일이 없어서 쉬는 날이었다. 동료들과 고기
파티에 참석하러 나선 길이다. 회비를 준비하고 학교를
거쳤다. 담임선생과 면담했다. 4회분 정도 밀린 육성
회비를 내고 가셨다. 나중에 들었다.
모임 회비가 부족해서 집으로 왔던 것이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 아이들은 흥미를 가졌다.
움직여 보라. 아프냐! 엄지를 움직이면 같이 흔들린다.
그렇게 묻고 흩어진다. 옆 반 아이 들 중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집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이야기 속에는 설이
있다. 시골에 시집가서 살 때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부지 갱이 나무가 안보였다. 지게를 받치는 작대기로
불을 지폈기 때문일 것이다.
배속의 아이의 손에 영향을 준 것이란다.
임신하고 태교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추정된다.
흥미 있어하는 아이에게도 말을 전했다.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아이들만
물어본다. 한 반에 40명 정도이다.
모두에게 한 번씩 이야기하면 신고식이 끝난다.
평소에 말이 없다. 과묵하다고 표현된다. 숙기가 없다.
육손 때문이라 생각된다. 성격이 차분하다.
활동적이지 못하다. 학교에 복귀한 후 시험을 보면
꼴등이었다. 한 동안 땡땡이를 쳤기 때문이다.
3학년에 올라와서 전과를 사달라고 했다.
1학기 중간고사에 모처럼 공부를 해서 3등을 했다.
1등은 만점 15점 차이였다. 다른 반의 1등과 같은
점수라고 했다. 그다음은 공부를 안 했다.
성적이 중간 정도로 떨어졌다.
숙제도 안 하는 편이다. 집에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은 없다. 숙제하기 싫었다.
평소에 공부를 해야 한다. 시험 즈음에 여유가
있었을 텐데 하면서도 안 했다. 모든 핑계를 육손으로
미루었다. 손에 흥미를 가지는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자신감도 속으로
넣고 있었다. 기정 형편이 어렵지만 공부에
대해서는 해주려고 하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 듣는다. 일일 학습지를 하고 있다.
당시에는 아이템플 인가 보다. 학습지를 받으면
문제를 풀어야 하는 데 쌓아 놓기만 했다.
누군가 옆에서 붙잡고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학습지 선생이 가르쳐 주면 비용을 더 내야 한다.
자유롭게 놀 수가 없다. 나름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활용을 못했다. 스스로 학습에 준비가 안 되어서다.
반 친구는 형과 누나가 있어서 도와준다고 했다.
맏이여서 누나와 형이 없다. 동생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숨어 버린 자신감이다.
형으로서 동생들을 이끌어주지 못했다.
학창 시절을 버겁게 지내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숨어 버린 자신감을 찾고 있다.
아직도 육손 아이가 가슴속에 있는 것인가?
50대 중반에 들어서 본인을 찾는 작업을 시도한다.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알게 된 것을 실천하려고 한다.
육손 아이가 실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 아이를 편안하게 보낼 때가 되었다.
숙기 없는 모습을 떨쳐 내보자.
앞으로의 30년에서 40년 짧지 않은 기간이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움직임이 없는 50대에서 다시 한번 일어서는
힘을 내본다. 어 영차!
고함을 지른다. 악! 악!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