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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Aug 01. 2017

덩케르크, 세 개의 시선

아주 경미한 스포일러 주의

2차 대전 초기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서부전선을 붕괴시킨 독일은 연합군을 덩케르크 해변에 포위해 놓고 탱크를 몰아 진격을 한다. 이에 연합군은 사상 최대 규모의 철수작전을 시도한다.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에서 도버해협만 건너면 바로 영국 땅이었지만 이들을 실어 나를 군함은 턱없이 부족했고 독일 기갑부대는 바로 코 앞까지 진격해 있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도운 탓인지 앞서 진격하는 기갑부대와 뒤따르는 보병부대 사이의 간격이 너무 먼 것을 이유로 독일군은 기갑부대의 진격을 일시중지한다. 이 공격 중지 명령으로 덩케르크 탈출 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고 영국은 연합군 34만 명을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대략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봤는데,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다짜고짜 시작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 같다.



세 개의 시선

이 영화에는 세 개의 시선이 세 개의 각기 다른 시간으로 담겨 있다. 해변에서 퇴각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시선으로 일주일을, 구출작전에 힘을 보태러 온 민간인의 시선으로 하루를, 그리고 공중전을 펼치는 파일럿의 시선으로 한 시간을 그려냈다. 그 각각의 시선들은 여기저기서 교차하며 날줄 씨줄처럼 엮여있다. 교묘하고 탁월하다. 놀란 감독의 연출력에 놀랄 따름이다.



병사들

영화는 영국군 병사 토미의 숨 가쁜 시선으로 시작한다. 텅 빈 마을에서 벌어지는 총격을 피해 병사가 당도한 곳은 수십만의 병사들이 퇴각 준비를 하고 있는 해변이다. 해변의 병사들은 모두 겁에 질린 패잔병의 모습이다. 독일군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저 바다에 서서 하릴없이 배에 승선할 순서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질서 정연하다. 부상자들을 계속 실어서 앞으로 나른다. 부상자를 운반하는 병사는 대기줄의 맨 앞으로 갈 수 있다. 토미는 이를 이용해 남보다 먼저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은 한다.

내가 토미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냥 잠자코 내 승선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먼저 탈출 시도를 했을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대부분의 저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질서 있게 퇴각을 기다렸다고 한다.


워낙 실감나게 만든 영화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가장 심장을 쫄깃거리게 만드는 장면은 버려진 배 안에서 독일군의 총탄을 피하는 장면이다. 한발 한발 총성이 너무나 실감 나고 위태로워서 나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배는 독일군이 쏜 총구멍으로 들어온 물 때문에 결국 침몰한다.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몇몇은 탈출하고 몇몇은 실패한다. 선실에 물이 차오르는 공포 속에서 발버둥 치는 병사. 숨이 막힌다. 수중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사는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침몰하는 배와 함께 사라진다.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모든 종류의 선박사고는 나에게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 특히나 탈출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병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안타까움에 눈물이 났다.



문스톤호

턱없이 부족한 군함으로 수십만의 병사들을 제시간에 철수시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섬나라인 영국으로서는 모든 해안선을 지켜야 하므로 군함을 덩케르크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군은 도버해협 근처의 가용한 민간 선박을 징발한다. 작은 배 문스톤호를 소유하고 있던 도슨은 직접 배를 몰고 병사들을 구출하러 나선다. 죽음을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구출해 낸다. 그가 그냥 애국자여서는 아닌 듯하다. 이유가 있다. 그의 큰아들이 전쟁 초기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어쩌면 병사들을 구해 내는 게 아들을 구하는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문스톤호뿐만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배를 해군에 내어주고 또 어떤 이들은 직접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왔다.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출전했던 군인들을 위해서. 영국해군이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약 900여척의 선박이 철수작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엔젤편대

탱크는 진격을 멈추었지만 독일군 폭격기는 해변의 병사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이다. 시시때때로 나타나 폭격을 퍼붓는다. 영국 육군은 공군에 불만이 상당하다. 독일군이 폭격하는 동안 도대체 Royal Air Force (영국 공군)는 어디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영국 공군이 독일의 본토 공격에 대비해서 전투기를 아꼈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지만 이 작전에서 격추된 영국 전투기가 145기에 달했다고 하니 아예 지원을 안한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전투기들이 공중전을 벌이던 곳이 육군 병사들이 볼 수 없는 곳이어서 전혀 도움이 안 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격추당한 비행기에서 비상 탈출한 조종사가 철수 대기 중인 병력에 합류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덩케르크에 출동한 엔젤편대는 독일 공군과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 멋진 공중전을 벌이다 불시착한 비행기의 파일럿은 문스톤호에 의해 구조된다. 나중에 철수하는 보병들과 섞여 영국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파일럿임을 알아본 한 보병한테 욕을 먹었다. Where the hell were you? 라고.

고글을 쓰고 있을 땐 몰랐는데 맨얼굴의 Jack Lowden은 정말 존잘이다. 영화에서 잘생긴 맨얼굴 갑툭튀로 갑자기 존재감이 급부상한다.




이 영화는 대규모 전투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액션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그 참혹함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국뽕 영화도 아니다. 약간 애국심 코드가 들어가긴 했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도와주기 위해서 자기가 할 일들을 해 나갈 뿐이다.

 

역사 속의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담담하지만 실감 나게 탈출하려는 자, 구조하려는 자, 그리고 보호하려는 자의 시선으로 맛깔나게 엮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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