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은 건 2년 전의 일이다. 소설을 잘 읽지 않을 때였으므로 작가 김영하의 이름도 그때 처음 들어 보았다. 재미있게 읽은 감상으로 노랫말을 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했었는 데, 올해 초에 그 소설이 영화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경구가 살인자 김병수 역할로 주연을 맡았고 김남길도 나온다고 했다. 게다가 설현이 살인자의 딸 은희 역을 맡았다고 했다. 영화는 이 소설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궁금했다. 드디어 개봉.
주인공 김병수는 소싯적에 연쇄살인을 저지르던 살인마다. 그에게는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쓰레기들을 청소한다는 사회정화의 목적이다. 연쇄 살인을 그만두고 수의사로 살아가는 그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딸이 있다. 그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기억이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던 중 마을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태주(김남길 분)에게서 자기와 같은 종족, 즉 살인자의 눈빛을 보게 된다. 영화는 새로운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태주로부터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사라져 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연쇄살인범 김병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미세한 긴장을 유지하게 했다. 작정하고 만든 공포영화처럼 깜짝 놀라게 하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이 나오지는 않지만 은근히 숨을 조이게 만든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을 잃어버리는 김병수를 통해서 마치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처럼 갑갑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왜 자꾸 김병수는 오락가락하는지, 누가 진짜 살인범인지. 그리고 그의 딸 은희는 살아남게 될 수 있을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실 영화의 결말은 소설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먼저 읽었다고 해서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다. 혹시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소설도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영화와는 또 다른 반전의 재미가 있다. 게다가 책의 두께가 매우 얇다. 한 시간 만에 후루룩 읽어 낼 수 있다.
끔찍한 살인범의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의 삶이 어떨지를 대충 짐작할 수가 있다. 기존에 그 병을 다룬 영화들이 신파조로 눈물샘을 자극하여 그 참담함을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스릴과 서스펜스로 그 아픔을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일인칭 시점으로 제작되어 정말로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느낌이 들게 한다.
아빠와 아이가 나오는 영화 특히 아빠와 딸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나는 심하게 감정이입을 한다. 나에게 딸이 생긴 다음부터이다. 이 영화에도 아빠와 딸이 나온다. 딸을 지키려는 김병수에게 감정이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운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범을 연기한 설경구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그의 연기야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프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엄청나게 체중감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남길 역시 역에 맡게 살을 좀 찌운 것 같다. 뺀질뺀질 연기를 정말 잘한다. 오달수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솔직히 설현에 대한 기대는 별로 안 했다. 걸그룹 출신이므로 연기가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기대 이상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고 보니 설현은 이미 전작 <강남 1970>에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하면 연기자로서 더욱 성공할 것 같다.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고 영화는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영화를,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소설을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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