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 맑은 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석양
작년 산호세로 출장을 가는 중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미션 디스트릭트에 숙소를 정하고 혼자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호주 동료들한테 문자가 왔다. 차를 렌트해서 오늘 하루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려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그러잖아도 혼자서 외롭고 심심하던 차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 년 만에 재회한 동료들 (사실 컨퍼런스 콜로 매주 만나지만) 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첫 방문지는 Palace of Fine Arts. 1915년에 파나마-퍼시픽 국제 박람회용으로 제작된 건축물인데, 철거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호수를 둘러싼 건축물들이 마치 신들의 궁전 같이 웅장하다. 호주 동료들이 "와 이거 100년이나 된 아주 오래된 건물이래" 하길래 "아주 오래된 이라고 하려면 최소 500년은 되어야 하지 않아?" 했다. 다들 뭣이...?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서 한국에 오면 500년 넘은 왕궁이랑 신라 유적 같이 천년도 넘은 건축물들이 널려 있다고 말해줬더니 그제야 다들 "아 맞다 기영은 아시아에서 왔지" 하며 유서깊은(?) 우리의 역사를 인정해 줬다.
Palace of Fine Artes를 나와 바로 근처 해변인 Beach at Presidio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왼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Golden Gate Bridge가 보이고 오른쪽 저 멀리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교도소라고 하는 Alcatraz 섬이 작게 보인다. 알카트라즈는 언뜻 봐도 탈출이 불가한 교도소처럼 보인다. 섬에서 육지까지 멀기도 멀고 중간에 상어들이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밤이면 저 교도소에서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불빛들이 다 보였기 때문에 죄수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역시 사람은 죄를 짓지 말고 착카게 살아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다가 드디어 금문교로 이동했다. Golden Gate Bridge는 그야말로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식으로 금문교라고 하면 뭔가 중국집 분위기가..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금문교를 차로 지난다. 운전하는 동료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탄성도 지르고 했다.
금문교를 건너가면 언덕 위의 예쁜 집들로 유명한 소살리토(Sausalito)가 나온다. 바닷가 쪽으로는 근사한 카페와 맛집들이 즐비하다. 당연히 사람들로 북적거리므로 카페거리 쪽은 차로 대충 휙 둘러보고 언덕을 오르다가 발견한 식당에서 피자로 점심을 때웠다. 남자 네 명 그것도 세명은 예쁜 단독주택들이 널린 호주에서 왔으니 뭐 소살리토에는 애초에 별 관심이 없을 것도 같았다. 나 역시도 미션 디스트릭트의 고풍스러운 집들을 보고 나니 별 감흥이 없어서 사진을 찍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롬바드 꽃길 (Lombard Street). 세계에서 가장 구불구불한 길 (the most crooked street in the world)로 불리는 이곳은 27도나 되는 급경사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8번 구부러지게 길을 설계했다고 한다. 탐스러운 꽃들로 가득한 이 길의 총길이는 180m 정도이고 제한속도는 8km/h이다. 차로만 다닐 수 있는 이 길을 구경하기 위해 자동차들이 끝도 없이 내려온다.
이 길 옆에 늘어선 집들에는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경을 오고 시끄럽게 해서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대책위원회가 구성이 되었고 주민들을 위해 이 길을 폐쇄하거나 아니면 길을 통과할 때 돈을 받는 방법을 논의 중의라고 한다. 밤에 빵빵 거리면서 지나가는 차들이 많아서 돈을 받게 되면 밤에는 특히 더 비싸게 받을 예정이라고.
복작복작한 롬바드 길을 빠져나와 Pioneer Park로 향했다. 이곳은 미합중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가운데에 콜럼버스의 동상이 있고 그 옆으로 Lillian Coit Memorial Tower가 보인다. 바다 쪽으로 보이는 경치와 미국 국기의 조화가 근사하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저녁식사도 할 겸 Fisherman's Wharf에 들렀다. 피셔맨즈 워프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Marla 아줌마가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한 곳이다. 식당에 사람이 너무 많고 비싸고 맛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호주 친구들은 딱히 갈 데도 없다며 그냥 가서 먹자고 했다. 역시 사람은 많았고 음식은 비쌌다.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음식 맛보다는 넓은 창으로 보이는 일몰이 장관이었다.
Fisherman's Wharf에서의 일몰. 북적거리는 육지와는 달리 바다는 매우 평화롭다. 저 멀리 보이는 산너머로 해가 지고 있고 부둣가에는 불빛이 하나 둘 살아나고 있다. 과연 나는 Bay Area에 와 있구나...
그다음 날 3박 4일간의 미팅을 위해 산호세로 출발하기 전에 잠깐 다시 시내로 나왔다. 유니언스퀘어에 있는 디즈니 스토어 (Disney Store)에 들르기 위해서다. 디즈니 스토어는 2층으로 되어 있는 데 1층에는 주로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즈니 공주 시리즈 인형들과 기념품들이 있고 2층에는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히어로 시리즈를 팔고 있다. '정품' 디즈니 인형을 이렇게 많이 팔고 있다니! 아이한테 사주고 싶은 인형이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도 담았다. 거의 사재기 수준이다. 디즈니스토어는 39 stockton street에 있다.
San Jose로 가는 리무진 시간이 임박해 왔으므로 빠르게 인형을 사고 디즈니 스토어 길 건너에 기라델리 (Ghiradelli) 초콜릿 가게로 갔다.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면 직원이 다가와 초콜릿 맛 좀 보라고 하나 준다. 달달하니 정말 맛있다. 이거 맛보면 안 사기가 힘들다.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이 초콜릿은 샌프란시스코의 특산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 팀원들도 나눠 줄 겸 해서 넉넉히 샀다. 귀한 거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거 면세점에도 널려 있고 한국에서도 코스트코 등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였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라델리 파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는데, 디즈니 스토어의 바로 맞은편 건물에도 하나 있다.
아참, 샌프란시스코에 여행을 간다면 빅 아이즈라는 영화를 보고 가길 추천한다.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영화 자체도 재미가 있지만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이어서 영화에 나온 곳들을 실제로 가 보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독주택에서 살기 https://brunch.co.kr/magazine/myhouse
일 이야기 https://brunch.co.kr/magazine/essaysbygi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