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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Jan 06. 2017

신입사원 연수에서 배운 두 가지

내가 다닌 첫 번째 직장은 국내 회사였다. 그 회사에 입사를 하면 4주간 입사동기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신입사원 교육을 받게 된다. 이때 약 15명 정도로 조가 편성이 되고 각 조에는 입사한 지 3~5년 정도 되는 중견(?) 사원들이 배정이 된다. 신입 교육 전반에 걸쳐서 도움을 주는 이들을 지도선배라고 불렀다.


우리 조에는 보험계열사를 다니고 있는 지도선배가 배정이 되었다. 군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매우 엄격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 회사의 신입 교육은 군대스럽기로 유명했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장에 모여 구보를 했고 교육 시에는 정자세를 유지해야 했으며 복도를 걸어 다닐 때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입수 보행이 금지였다. 그러니 군 장교 출신이 지도선배로 지정되어 신입 교육을 도와주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는 애사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말할 때마다 "우리 OO맨은 말이야" 하면서 얘기를 했고, 회사를 떠난 자신의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시의 나도 회사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거부감은 없었다. 나름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첫 회사생활에 발을 디뎠으니까.


언제든 사표를 쓸 수 있도록 준비를 해라

회사에 뼈를 묻을 것처럼 보였던 그가 어느 날 놀라운 얘기를 했다. 아마도 교욱 중간에 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여러분, 내가 출근할 때 늘 가슴에 지니고 다니는 게 뭔지 알아요?”

“글쎄요? 열정? 비전? 보고서?”

“사직서예요. 난 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녀요”

“네?????”

깜짝 놀라는 우리들에게 이어진 설명은 이랬다.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좋지만 그것에 길들여지면 그냥 안주하게 되고 게을러질 수 있다. 그래서 언제든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준비해 놓아야 한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보다는 평소에 능력을 갈고닦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언제든 회사에서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도록.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한 회사에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은 사라졌다. 자의던 타의던 사람들은 회사를 옮겨 다닌다. 평생직업의 개념이다. 평생직업을 가지려면 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경력을 쌓아야 하고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습득해야 한다. 그야말로 언제든지 사표를 쓰고 다른 회사로 옮겨가거나 내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도선배로부터 저 얘기를 들었을 당시에는 딱히 와 닿지 않았지만 지금은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다.


신입 교육은 조별과제를 수행하기도 하고 강당에 모여 강의를 듣기도 하는 등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열사 중에는 패션 관련 회사도 있어서 비즈니스 복장에 대한 강의도 받았다. 슈트를 입을 때 안에 입는 셔츠는 속옷과 같은 개념이어서 그 셔츠 안에는 따로 속옷을 입을 필요가 없고 슈트 상의를 벗는 것도 실례라고 하는 것을 여기서 처음 배웠다. 그 교육의 영향 탓인지 난 지금도 와이셔츠 안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


회사는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어느 날에는 인재개발팀에서 온 간부의 강의가 이어졌다. 회사생활을 어찌하면 잘할 수 있을지 그 노하우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다. 다른 내용은 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딱 한마디가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바로 회사는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라는 말이다.

“내가 봤을 때 회사는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이에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엄청 배울 수 있어요. 학교는 돈을 내고 배우러 다니지만 회사에서는 월급을 받아가며 배우는 거예요. 그러니 연수가 끝나고 각자의 회사로 출근하게 되면 배운다는 생각으로 회사일을 열심히 하도록 해요.”


사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회사는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이라는 메시지만 선명하게 내 귀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십여 년 회사생활을 해 보니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전략기획, 영업, 오퍼레이션 등을 거치면서 많은 것들을 익히고 배웠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고 업무에서 배웠으니 회사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들이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니 그것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실용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룹공채 신입사원 연수였기 때문에 우리는 다들 출근하게 될 회사가 달랐다. 가전, 반도체, 전기등의 전자계열 회사부터 패션, 그리고 광고회사까지. 맡게 될 분야가 다 다르니 각각의 실제 업무에 대해 자세하게 배울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일반적인 회사생활에 대한 부분과 그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 주기 위한 약간의 세뇌(?) 교육이 위주였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 속에는 저 두 가지 내용만이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여러 이유 때문에 나는 첫 회사를 일년 만에 그만두었다. 첫 회사 이후에는 계속 외국계 기업을 다니고 있어서 '군대식' 연수를 다시 받지는 않았다.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그때 같이 교육을 받던 동기들은 신입사원 연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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