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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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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May 16. 2017

태국 방콕에서 보석 사기당한 썰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어서 이걸 공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살짝 검색해 보니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일이더군요. 그래서 아픈 기억을 더듬어 보려 합니다.


때는 2002년 여름, 한일 월드컵 직후. 싱글직딩이었던 저는 여름휴가 때면 혼자서 동남아 배낭여행을 가곤 했었습니다. 올해는 푸껫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 좀 하고 오자고 마음먹고 태국여행 일정을 짰습니다. 1997년에 호주에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한 뒤로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설레었어요. 인천 -> 방콕 -> 푸껫 -> 방콕 -> 인천의 일정이었죠.


방콕에서 푸껫까지는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12시간 정도 걸리는 데 밤 버스로 이동을 하면 숙박비도 절약되고 교통비도 절약됩니다. 지금 다시 간다면 당연히 비행기를 이용하겠지만, 그때는 젊었고 혈혈단신이었으니까요. 덜컹거리는 밤 버스는 낭만적이었고 푸껫에서의 2박 3일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다이빙도 하고 호텔 근처 산에도 오르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은 또 어찌나 친절하던지.

푸껫의 해변 *photo by qimono | pixababy.com




다시 방콕으로 올라와서 전 세계의 배낭 여행자들이 모인다는 카오산로드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카오산로드에서 큰길을 하나 건너면 큰 잔디밭이 나오고 그 잔디밭의 끝에 왕궁이 있어요. 그리고 잔디밭 옆에는 타마셋 대학이 있고요.


왕궁을 구경할 요량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큰길을 건너 잔디밭에 다다를 즈음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잔뜩 몰려있더라고요. 스콜이 한바탕 내리려나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청년이 후다닥 달려가면서 비 올 것 같다며 빨리 뛰라고 하더군요. 얼떨결에 같이 뛰어서 타마셋 대학교 안으로 피했습니다.


옷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면서 그 청년은 타마셋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어요. 이 친구에게 급 호감이 생겼습니다. 푸껫에서는 영어 잘하는 태국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좀 갑갑했는데, 그 학생은 영어를 꽤 잘했거든요. 그 학생이 말하길 태국에는 좋은 곳이 참 많다고, 특히 독특하고 다양한 절을 많이 구경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러면서 지도에다가 동그라미를 막 쳐 주었어요. 오오 그러냐며 전 매우 좋아했죠. 태국에서 돌아다니는 건 힘들지 않냐고 묻길래 뚝뚝이 기사한테 사기당할까 그게 좀 걱정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번호판이 하얀색으로 되어 있는 건 정부에서 운영하는 뚝뚝이이니까 그걸 이용하라더군요. 자기가 밖에 나가서 그 '국영'뚝뚝이가 지나가면 잡아 주겠다고 친절을 베풀기도 했어요. 국영뚝뚝이는 개뿔...그런거 없습니다


비가 그친것 같아서 난 이제 왕궁 보러 가야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 왈, 오늘은 왕궁이 문을 닫는 날이라더군요.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너 그거 아냐며 일주일간 방콕에서 보석 엑스포를 하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라고 했어요. 일 년에 딱 일주일만 하는 건데, 그 보석 엑스포와 연계된 매장에 가면 멋진 보석을 5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고도 하더군요.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여서 아 그러냐 근데 뭐 난 보석에 큰 관심이 없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죠.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그걸 놓치냐며 몇 번 더 설명하다가 제가 쉽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포기를 하더군요. 그러고는 저를 따라 길가로 나왔어요. 마침 하얀 번호판을 단 뚝뚝이가 길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가서 뭐라 뭐라 하더니, 자기가 다 얘기 해 놓았으니 이거 타면 바가지 쓰지 않고 관광할 수 있을 거라며 친절을 베풀었어요. 뭐 남는 게 시간이니 왕궁은 다음날에 보기로 하고 그 뚝뚝이를 타고 사원으로 갔죠.


절은 그리 크지 않았고 관광객도 많지 않았어요. 누워있는 신기한 불상이 있긴 했지만 뭐 그렇게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죠. 두 번째로 방문한 절에 가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태국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어요. 유창한 영어로 일본인이냐고 물어보길래 한국사람이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자기도 월드컵 봤다고 Pride of Asia라고 하며 엄지 척을 해 주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죠. 그 아저씨는 한참을 축구 얘기로 수다를 떨다가 뭔가 생각난 듯, 너 그거 아냐고 그러더군요. 그러면서 오늘이 일 년에 딱 한번 일주일간 하는 보석 엑스포의 마지막 날이라고 했어요. 아까 그 대학생이 얘기했을 때는 잘 믿지 않았는데, 똑같은 얘기를 처음 만난 사람이 또 하니까 너무 신기했어요. 막 믿음이 가더군요. 그래서 아 나 아까도 비슷한 얘기 들었다고 그럼 그거 사러 가야겠다고 하며 서둘러 나왔어요.  

와불상 *photo by sumet_k | pixababy.com


엑스포 센터는 약간 어두우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였어요. 건달 같아 보이는 주인장과 여종업원들의 안내로 50% 할인된 가격으로 백만 원 상당의 보석목걸이를 현금으로 구입했어요. 신용카드는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사가지고 기쁜 마음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죠. 아주 큰 이익을 보게 생겼으니 그 뚝뚝이 기사한테 팁도 두둑이 줬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보석을 되팔면 백만 원의 이익이 생기니 내일은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왕궁 구경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여행책자를 펼쳤습니다.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보니 제가 중요하다고 느껴서 귀퉁이를 접어 놓은 페이지가 나오더군요. 이게 뭐길래 중요하다고 접었지? 하고 읽어 보았습니다. 제목이 '방콕에서 반드시 주의할 사항'이었고 소제목으로 '보석 사기를 조심하세요'로 되어 있더군요. 순간 느낌이 쌔 해졌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찬찬히 읽어 보았죠. 낯선 사람이 말건다 -> 오늘이 일 년에 일주일만 있는 보석 엑스포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 뚝뚝이 기사를 소개해 준다 -> 절에서 낯선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한다 -> 보석 상점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습니다... 제가 당한 사기수법과 동일한 내용이 여행책자에 쓰여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중요하니 꼭 명심해야겠다며 페이지를 접어놓기 까지 했던 내용이었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튿날 여러 군데를 수소문한 끝에 한국 영사관에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영사관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브로커의 연락처를 주며 그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브로커를 만나서 국수를 먹으며 상담했습니다. 그분은 방콕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영사관의 요청을 받아 보석 사기 해결 브로커 역할도 함께 하고 계신다고 했어요. 하도 한국사람들이 보석 사기를 많이 당하니 영사관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되었던 거죠. 일단 변호사를 선임하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변호사를 대동하고 카오산로드 옆에 있는 관광 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과 얘기를 하는데 뭐가 잘 안 풀리는지 고성이 오가더군요. 브로커분이 얘기하길, 아주 더러운 놈과 엮였답니다. 그 보석상을 운영하는 조직이 방콕에서 두 번째로 큰 마피아라더군요 ㅠ. 어쨌든 그 후 3일 내내 경찰서를 들락날락했습니다. 2일째 되는 날에는 경찰 소환으로 그 보석상과 관련된 직원이 왔는데, 되려 경찰한테 화를 내고는 가버렸습니다. 암담했죠.


그렇게 경찰서만 왔다 갔다 하느라 방콕은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귀국을 했습니다. 보석은 어찌 되었냐고요? 그 브로커 분한테 맡겨놓고 귀국을 했어요. 환불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귀국한 이후에 몇 주 지나서 환불이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액은 아니고 80%의 금액만. 거기서 변호사 수수료 떼고 나니 한 60만 원 가까이 입금이 되더군요.


소탐대실하지 말라고 어른들이 괜히 말씀하시는 게 아니었어요. 보석 팔아서 여행비 뽑아 보려다가 정작 여행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돈만 날린 셈이 되었죠. 날린 게 어디 돈뿐인가요? 금쪽같은 며칠간의 휴가를 정말 망쳐 버렸죠. 사실 진짜 제대로 된 보석을 반값에 샀다고 하더라도 세관 통과하다가 걸렸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소탐대실은 금물!


이 일이 있은 이후로 태국은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지만, 회사 행사로 한번 그리고 무려 신혼여행으로 또 가게 되었습니다. 신혼여행 때도 푸껫에서 놀고 방콕에 잠시 들렸는데, 왕궁 앞에 갔더니 몇 시냐고 묻고 왕궁 문 닫았다는 놈들이 여전히 있더라고요. 코너만 돌면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뭐 그때에는 아내랑 깔깔 거리며 그 녀석들을 비웃어 주긴 했지만요.


아참, 태국에서 보석 사기당하지 않으시려면...


1. 영어 잘하는 태국인을 조심하세요. 보통의 태국인들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요.

2. 태국인이 먼저 접근하면 일단 의심을 하세요. 첨 보는 사람이 왜 나한테 친절을 베푸는 지를 말이죠

3. 왕궁 근처에 가면 "지금 몇 시냐"라고 묻는 태국인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럼 대꾸하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몇 시냐고 물은 다음에는 "오늘은 왕궁 문을 닫았다"라고 할 겁니다. 코너만 돌아가면 왕궁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공원 쪽에서 보면 문들이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절대 속지 마세요. 왕궁 문 닫았다고 하고 다른데 소개해주겠다며 보석 사기 작전을 펼 거예요. 백퍼예요.

4. 어쩌다 만난 태국인과 친해졌는데 보석/엑스포/일 년에 딱 일주일 이런 얘기하면 당장 대화를 중단하고 가던 길 가세요. 사기꾼입니다.


대충 위의 내용만 잘 지키셔도 사기당할 염려는 없을 겁니다. 먹을 거 많고 볼 거 많고 즐길 거 많은 태국에서 안전여행하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ps. 우울한 얘기를 길게 하긴 했지만 사실 방콕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photo by walkerssk | pixababy.com
*photo by sasint | pixababy.com
*photo by lertnapa | pixababy.com
*photo by sasint | pixababy.com
*photo by sasint | pixabab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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