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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우기자 Jul 06. 2021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자

방송기자 #1 수습일기 (0회)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서 방송, 일간지 등 주요 언론사 소속으로 일하는 누구나 그랬듯 여우기자도 고단한 수습 생활을 거쳤다.

'닦을 수', '익힐 습'을 합친 말. 보살핌이 필요한 새싹들이지만 현실은 차갑고 가혹했다.

'짐승 수'가 정확한 표현이라며 궁지로 내몰렸던 그 시절. 간절히 인간이 되고 싶었던 당시의 이야기.

0회에선 수습기자에 대한 기초를 간단히 짚고 가겠다.




주요 언론사에 입사한 새내기 기자들은 가장 먼저 '사회부'로 배치된다.

이름대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을 다루는 부서.

특히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이 사회부 기자들의 주요 무대다.


여우기자의 첫 행선지는 종로경찰서였다.

여기서 잠깐, 언론사들은 편의상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를 인접한 곳끼리 묶어 '라인'이라고 호칭한다.

서울 시내 경찰서는 모두 31곳. 보통 라인 1개에 4~6개 정도가 포함된다.


통상적인 서울 시내 라인 구성. 언론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수습들은 일선 경찰서로 바로 '내던져진다'.

이런 표현을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만 갖고 가기 때문이다.

(** 물론 휴대폰과 수첩, 펜 정도는 당연히 있다.)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지, 누굴 만나야 하는지 등 안내는 없다.

그저 '몇 시까지 누구에게 보고하라'라는 짧고 차가운 전달 사항만이 남아 있을 뿐.


경찰서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부서가 있다.

그만큼 수습이 만나야 할 사람들도 넓고도 깊게 많다는 뜻이다.


경찰서로 가는 첫 발걸음. 정문을 통과할 때부터 괜히 찔리는 마음이 든다.

지나가는 순찰차 정도만 봐왔지 사실 경찰서 건물까지 들어올 일이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처음 가는 그곳에서 모든 수습이 '손님'이길 바라지만,

이들을 맞이하는 경찰 입장에선 매우 성가신 존재들이다.


내 공간에 모르는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부터가 굉장히 부담되지 않는가.

더군다나 멋 모르는 새내기 시절 '뭔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파고들기 시작하면 더더욱 기피 현상은 커진다.


강력반 철창에도 달려드는 수습기자. 초년병이 가장 무섭다.  



그 시절 만났던 어느 한 경찰은 대놓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기자 교육을 왜 우리 경찰이 해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매뉴얼은커녕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갓 입사한 신입을 경찰서로 던져놓는다.

말 그대로 직접 부딪혀서 배우는 그들에겐 결국 현장에서 만난 경찰이 일종의 길라잡이가 된다.




수습 시절 가장 큰 고통은 역시나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보고 시간이다.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수습이 무엇을, 얼마나 알아낼 수 있겠는가?


보고 내용이 없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 보고를 받는 '선배'들의 닦달에 수습의 중압감은 커진다.


처음 가는 건물에 들어가 전혀 모르는 부서의 문을 열고, 마치 언젠가 봤다는 듯이 환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경찰에게 인사를 건네는 반복된 상황은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에게도 쉽지 않다.

 

여우기자는 꽤나 내성적인 편이라 이 상황 자체가 참 고역이었다.

문을 열기까지 복도를 여러 차례 오가며 숨을 고르기도 했고, 사실 두려움에 피한 적도 꽤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어 손꼽히게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쓸만한 정보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 건지.

경찰을 비롯한 취재원들과는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취재'라는 걸 할 수 있는지.


앞으로 연재될 '수습일기'엔 이런 고민부터 수습기자의 피, 땀, 눈물 그 모든 것이 가감 없이 담긴다.

기자가 아닌 이들에겐 조금은 신선한 흥미로움으로 다가가길.

기자를 꿈꾸는 누군가에겐 방향키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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