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편 가르기에 이용당하는 시민
1950년대, 터키 출신의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세리프 부부는 오크라호마 소재의 여러 학교에서 12세가량의 소년 20명을 오크라호마 자연공원 야외 실험장으로 초청했다. 이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서로가 잘 모르는 사이였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가 금방 친해져서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세리프와 동료들은 이들에게 갈등을 유발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궁리랄 것도 없다. 이들을 두 편으로 나누기만 하면 되었다. 구성원을 두 팀으로 나눈 실험팀은 이들에게 '방울뱀'과 '독수리'라는 별명을 지어주고는 공놀이로 갈등을 부추겼다. 두 팀 사이의 페어플레이는 단 이틀밖에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서로가 부정행위를 했다며 비난하고, 상대방의 깃발을 훔쳐보다가 불태우며 분을 풀었다. 나중에는 식사도 함께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그러다가 급기야 몸싸움으로 이어져 침대가 뒤집히고 우승 트로피도 도둑맞았다.
확실히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을 가르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편을 가르는 걸까요? 살면서 생기는 수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진영 정해 두면 새로운 일이 발생했을 때, 내 진영에 해당하는 논리만 취하면 되니 말입니다.
보통 회사에서 정치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사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정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아예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이 어떤 행동을 해도 옹호하는 논리를 가져오며, 더 이상 논리가 막히면 다른 이슈를 들며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는 식으로 끌고 가려합니다. 상사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동조를 구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차피 서로 들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도대체 왜 평소 합리적이던 사람들은 이렇게 정치에 관해서는 무논리가 되면서 편 가르기에 이용당하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심리학적, 사회적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만큼 정치인이 머리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어이없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멍청한 정치인을 비난해 온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정치인'이라는 말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과 지식수준으로만 봐도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 집단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행동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물의를 일으킨 경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후 절차대로 처리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 체계에서 이상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대립된 세력으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이게 되며, 등을 돌리는 지지자들이 많아집니다. 일으킨 물의에 대해 갖가지 황당한 발언을 해가며 인정하지 않으며 싸우는 편이 정치적 득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할 말이 있도록 대응 논리도 만들어 줘야 안정적인 지지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절차대로 처리하는 정치인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황당한 발언을 하며 책임 회피를 하는 정치인을 많은 사람들이 배척한다면 똑똑한 정치인들은 절대로 후자의 행동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편인 사람들을 지키기에는 비합리적인 대응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국가의 대소사를 움직이는 정치인이 정의롭지 못하게 득실만을 따지면 되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도 큰 틀에서 평범한 직장인이나 사업가와 다를 바 없으며, 생존이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정치에서 한번 밀리면 다른 일을 하기 어렵거나, 지금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누구라도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편 가르기에 계속 휘말리는 이상 정치인들은 계속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사실은 뛰어난 머리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