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강제된다.
정치 관련 뉴스의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두 진영으로 나눠져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진보와 보수 중에 하나를 선택 혹은 강제되고, 상대 진영에 대한 논리적이지 않은 인신공격이 난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타협이 잘 되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정의는 생각보다 복잡하지만 간단히 생각하면 진보는 현재의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보수는 현재의 세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실 더 복잡한 분류가 있고, 특히 한국의 정치 환경은 더 특이하지만 일단 한국의 상황 고려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두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개인적으로 늘 드는 생각은 '도대체 보수는 왜 저러지?'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바로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진보 쪽 사람이군'이라고 선을 그어버리게 되고 트집을 혹은 옹호를 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제 개인적인 성향이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밝히는 순간 보수의 적이 되어 버리고 말을 듣지 않거나 반박을 위해 노력을 하게 됩니다.
말이 먹히든 안 먹히든, 제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보수세력에 갖는 의혹은 저의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너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과 언행을 하나하나 들자면 끝도 없고, 심지어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생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입니다. 당연히 저의 생각이며 맞고 틀림은 없습니다. 한 가지 고려할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복잡한 상황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제외시키고 보편적인 생각을 전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많은 국가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체제의 조합이 보수를 타락하게 만들었다면 너무 과장된 말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두 경험하듯이 돈이 많은 사람이 최고가 되는 세상입니다. 과거의 위인이 용감한 장군이나 학자, 왕이었다면 현재의 위인은 돈을 많이 벌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을 개발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으로 체면을 중시하고 돈을 천시해서 문제라고 어릴 적에는 들었는데, 어느새 자본주의에 가장 잘 적응한 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대단하게 인정받게 되면서 후광효과를 가지게 되어 돈과는 별개인 그 사람의 인격도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대단한 성실함과 뛰어난 두뇌로 성취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사기 혹은 사기에 가까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운이 좋거나 물려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많은 돈을 번 사람이 사실은 사기꾼에 가까운 인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많이 번 이유로 잘못이 용서되고 존경받기에 이릅니다. 소위 사회의 기득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번 사람 중 사기 혐의가 드러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돈을 천대하고 체면을 중시하던 국가에서, 돈만 벌면 된다는 사상이 가장 빨리 퍼진 국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제도에 비해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소수의 귀족, 상류 계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과거와 다르게 모든 대중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러한 제도는 기득권에 압도적으로 불리합니다. 기득권이 아닌 사람 숫자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1인 1표라는 제도는 비 기득권에게 매우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은 당연히 진보를 따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 중 큰 부분을 앞에 얘기한 자본주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득권이 모두 인격적으로 발달된 사람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매우 합리적인 보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득권이 많을뿐더러, 기득권이지만 과거의 제도와 다르게 기득권이 영원히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차피 하류 계층에 뛰어난 사람이 올라와도 공정한 경쟁을 하며 공생을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태는 매우 불안합니다. 기득권이 본인이 가진 것을 지키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격적이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기득권은 본인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누르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보수가 타락하는 포인트가 생깁니다. 그들 역시 점잖게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며 사는 것으로 보이고 싶겠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언제든 바로 뒤집힐 수 있다는 위기감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에 집착하게 됩니다. 소수의 능력 있는 훌륭한 보수들은 이러한 상황을 원하지 않겠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제도대로라면 자유 경쟁을 하여 능력 있는 사람이 잘 살고, 능력 없는 사람은 잘 못살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각종 비리와 사기가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각종 자본주의의 공정 경쟁을 위한 안전장치를 바꾸면서 기득권을 지키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분명 1인 1표의 제도이며, 기득권보다는 하류 계층이 훨씬 많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류 계층인 사람들이 보수를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본인들과 상관없는 종부세를 비판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제도를 반대합니다. 우리나라는 좀 더 특수성이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류 계층은 돈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됩니다. 상류 계층 사람의 경우 버스요금이나 고기 가격이 올라가도 큰 타격이 없지만, 하류 계층의 경우는 치명적입니다. 좋은 교육을 받기 어려우며, 생업이 힘들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많지 않습니다. 상류 계층의 사람은 언론, 정치, 경재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그들은 그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 계속 연구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상황 이해가 쉬워집니다. 진보 정권이 탄생하면 그들이 꿈꾸는 변화를 이루려면 물가가 오를 것이고 사회가 불안해질 것을 퍼트립니다. 하나의 예시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면 나라 재정이 거덜 나고 그 돈을 못 받는 하류 계층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끔 유도를 합니다. 하류 계층에서 이러한 상황을 체크하려 통계자료를 보고 전문적인 글을 읽기는 어렵기 때문에, 논리가 팩트에 근거하든 아니든 늘 그런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는 정보를 듣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정보가 너무 많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계속 삶이 어려웠고 주위에 망하는 사람들도 계속 봐왔음에도 요즘 유독 삶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주위에 망하는 사람도 많아지는 느낌을 가지면서 결국 안정을 뜻하는 보수를 지지하게 됩니다. 지금 예로 든 상황은 가장 단순한 예이며, 하류 계층의 머리에 진보는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심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을 것이며, 매우 정교하여 이를 이기기는 힘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 더 강력해진 계급사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계급 제도가 있었고, 높은 계급과 낮은 계급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불만을 가지는 순간부터 반발과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누구나 평등한 듯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 낮은 계급이 되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문제로 한정시키게 됩니다. 계급은 정해져 있지 않고 열심히 살면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역설적으로 세상의 계급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어찌 보면 아직 민주주의가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주의는 마치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사실 세상에 내 생각이 투영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결국은 소수의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좋고 유지를 해야 한다면, 피곤하고 힘들지만 계속 깨어 있으려 노력하여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어찌 보면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해야 하는 피곤한 제도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유로운 듯한 노예가 될 것입니다. 1인 1표를 주는 것은 단순히 기득권과 하류 계층의 사람이 같은 표를 가지는 의미를 떠나서, 동등한 인격체로 동등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은 이상, 결국 과거와 같은 계급사회가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꼭 해야 하는지는 다른 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어쨌든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피곤하게 살지 않으면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만에 싸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평등과 자유를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등과 자유의 가치 역시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완전하게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늘 꾸준히 깨어 있으려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새 이용당하고 있는 매우 어려운 제도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하고 안 하고는 자유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태도로 돌아오는 것은 자유롭지 않고 평등하지 않은 사회일 것입니다. 제도만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제도와 절차의 정당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하에 사는 사람이 제대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강제로라도 깨어 있으려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보수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