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꼰대 시대
한동안 급식체라는 말이 많이 유행을 한 것 같습니다. 언어 파괴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많았던 기성세대들에게 언제부터인가 유행처럼 급식체를 배우려 하고, 오히려 실제 중고등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쓰려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을 봤을 때 매우 신기하였습니다. 분명 언어 파괴의 대표 격인 귀여니 소설이 히트를 쳤을 때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을 본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귀여니 소설에 열광했던 세대들이 지금 부모 세대인 30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이미 한번 자신들이 겪어본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기에 관대 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에 어떤 프로에 평론가가 마이클 잭슨과 오프라 윈프리의 영향으로 오바마가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어린 백인 세대들이 흑인 우상을 맞이하게 되고, 흑인도 같은 사람이고 충분히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없게 자라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오바마는 흑인임에도 큰 거부감이 없이 대선에 출마하여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적 언어 파괴를 자연스럽게 겪은 세대들은 더 이상 그런 현상에 대해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식체의 확산에 경계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언어를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관념이 있는 세력과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세력의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귀여니 소설과 급식체에 대한 저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세대나 그들만의 은어가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님이 벌떡 일어나 혼낼 거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세종대왕님은 지금 우리 표준어를 들어도 마찬가지로 혼낼 것입니다. 언어는 계속 변하는 것이고, 문법은 단지 언어를 잘 설명하고 교육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새로운 언어의 등장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언어가 계속 힘을 얻는다면 어느 순간 표준어가 되는 것이고, 순간 유행하고 없어지면 사라지는 언어가 될 것입니다.
꼰대라는 단어는 급식체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어린 세대에게 은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오히려 꼰대라는 단어는 더 확산이 되어 표준어의 경지에 이른 듯합니다. 요즘은 꼰머라고 쓰죠? 과거에 꼰대라는 단어는 선생님이나 어른을 비하하는 단어에 그쳤는데, 요즘 쓰이는 꼰대라는 단어는 더 확장되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 전체를 지칭하는 듯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되어 갈수록 후배 직원들에게 가르쳐주고 지시를 하게 됩니다. 점점 직급이 높아질수록 본인이 직접 하는 일의 양보다 지시를 하는 일이 더 많아지죠. 업무에 대해 후배 직원에게 지속적으로 지시를 하고 가르치는 것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모든 일을 지시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지시의 범위가 후배 직원의 개인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됩니다. “일을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업무의 영역이지만 “일을 그런 태도로 하면 안 된다”로 점점 발전이 되고 더 나아가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로 확장이 됩니다. 공적인 상사의 영역을 넘어 내가 후배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전재가 생기게 되고 점점 영역의 확장은 넓어지고 그 사람의 가치관을 건드리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존대어가 발달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짙어집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경우 서로 처음 만나면 우선 나이를 물어보고 서열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싸울 때 많이 나오는 말이 “너 몇 살 이야?” “어린놈이” 등으로 마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더 많이 알고 옳다는 전제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거의 같은 공간에 있고, 회식도 하다 보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여자는 이렇게 만나라”, “여자한테는 이렇게 해야 한다” 등의 완전한 사생활을 침범하게 되고, 후배 직원은 이미 늘 공적인 업무에서 지시를 듣고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러한 침범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뒤에서 꼰대라고 욕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꼰대는 분명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많이 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1년만 선배라도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양 후배들을 가르치려 들고, 혼내기도 합니다. 어릴 때 크게 꼰대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선배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세대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었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업무의 영역에서도 사실 꼰대 문화의 영향력은 크고 회사 실적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경력이 많은 상사는 본인의 경험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고 귀를 닫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미숙한 후배 직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본인의 생각대로 일을 끌고 가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팀의 리더가 본인의 주관을 가지고 본인의 뜻대로 업무를 끌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저기 얘기에 휘둘리는 상사도 큰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대기업의 경우 업무의 복잡도가 높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모든 일을 알 수는 없습니다. 또한 시대의 흐름도 빠르기 때문에 본인이 실무를 할 때와는 많은 것이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각대로만 업무를 추진하여 실패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한 사원들의 수준을 활용하지 못하고 모두의 수준은 상사의 수준으로 맞춰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실패의 책임은 힘없는 팀원들이 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회사 이야기는 너무 끝이 없을 것 같아 멈추고, 기회가 되면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꼰대가 되는 이유는 참견하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외에도 당연히 세대 간의 갈등이 많이 존재하지만, 존댓말 문화와 군대 문화가 같이 존재하고, 오지랖 넓은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더 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꼰대라고 지칭하지 않아서 그렇지 친구 꼰대, 후배 꼰대도 많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꼰대들은 자신이 꼰대인지 모를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꼰대라 불리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결국 모든 타인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꼰대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동년배들은 90년대에 음악을 많이 듣던 세대이며, 요즘 노래를 듣고 깊이가 없고 다 똑같다는 등의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은 본인이 듣던 세대의 노래에 고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창 음악을 듣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각 가수들의 이야기 등이 음악과 연결되어 추억이 되고, 같은 노래를 수십 번 들었기 때문에 애정 역시 각별합니다. 요즘 노래를 애정을 가지고 몇 곡을 여러 번 들어보았는데 나름의 깊이가 있고 그 시대가 반영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 것들은”, “꼰대들은 이해를 못하겠어”라는 말은 대부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결국 각자의 배경과 생각의 차이에 기인함을 느낍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이 글도 안 그런 척 하지만 은연중에 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니까요. 때문에 누구도 완전히 꼰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존재하지 않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일정 정도 침범을 해야 합니다. 단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하는 편입니다. 타인을 상처 입히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누군가가 저에게 상담을 하거나 묻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에 거의 아무 말도 안 하는 편입니다. 힘들어하거나 조언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내 조언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진심으로 나의 조언을 듣고 싶어 한다면 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면 그냥 꼰대의 잔소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꼰대가 싫거나,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저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라고 하고 싶습니다.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타인 역시 자신의 주관이 있으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이 타인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한다면 덜 꼰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