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이후의 대한민국은 당분간 MBTI가 접수한다
내(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다. 정확히 ‘동플갱어 테스트’를 플레이한 사람은 총 1,101,295명(22.4.21 기준)이고,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참여자가 늘었다(2023년 수치로 갱신하려 했으나 누적 참여자를 볼 수 없음).
자신이 동물이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답변을 눌러야 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였으니 110만 명은 단순 콘텐츠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 참여자였다.
바이럴을 잘 일으키는 콘텐츠 제작자에게 100만은 큰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콘텐츠는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려고 기획했다. '착한 일에 동참'해달라는 재미없는 요청에 누가 응하기는 할지, 파급력(이 있기나 할지) 또한 기대를 안 했다.
콘텐츠 자체 성과가 '110만'에만 그친 게 아니다. 바이럴 또한 대단했다. 현 X(구 트위터 코리아)에서도 트렌드 1위에 동플갱어, 오렌지레터를 나란히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기획, 운영하고 몇 가지 흥미로웠던 10가지를 인사이트로 나눠본다.
때는 바야흐로 2022년 2월, 당시 회사 대표였던 펭도가 (초롱초롱한 눈빛 포함) MBTI 테스트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해로 거슬러 간다.
[내 속마음 인터뷰]
MBTI가 유행인 건 맞다. 재밌는 테스트가 나오면 팀 안에서도 돌려가며 해보기도 하니까. 헌데 이미 수많은 테스트가 나와 있어서… 우리까지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 유행 지난 거 아닌가?)
다른 거 다 떠나서 MBTI 테스트를 어떻게 나란 소인이 만들 수 있는지? 가능은 한 건가?
의문, 의심, 의뭉 99.99%. 일단 대표가 하라니까 얼떨결에 PM이 된 나. 우당탕탕 MBTI의 세계로 여정을 떠났다.
늦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지금도 사실 그리 늦지 않았다.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MBTI 테스트가 존재한다. 클리셰 범벅이어도 그중에 쫀쫀하게 결과가 들어맞거나 그냥 심심풀이로 재미나게 해 볼 게 있으면 (또 MBTI라 하더라도) 친구와 동료들에게 자연스레 링크를 공유하게 된다.
완료율은 92.9%. 이 정도면 한번 테스트 페이지를 열어본 사람이 불의의 사고(?)가 나지 않은 이상 백이면 백 모두 플레이해 봤다고 본다.
동플갱어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텍스트는 최대한 짧고 경쾌하게 친한 친구와 대화하듯 작업했고, 참여자가 테스트 결과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주변에 쉽게 공유토록 의도했다.
기획 단계에서 힘을 빼고 가볍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했는데, 그게 통했고 우리의 숨은 의도(위기동물을 돕는 기부단체 홍보)까지 꼼꼼히 알아봐 주신 분이 존재했다.
MBTI 테스트처럼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콘텐츠를 만든다면, 콘텐츠 기획의 궁극적 목적, 주제, 심각성은 잠시 내려놓자. 안다, 분명 이런 테스트를 만드는 목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콘텐츠 참여자는 우리가 아이템을 파는(?) 냄새를 조금이라도 풍기면, 귀신같이 알아보고 테스트를 끝까지 수행하지 않는다. CTA로 설정한 페이지까지 참여자가 다다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콘텐츠 참여자가 얼마나 재밌게 테스트를 할 수 있는지,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게 하는지를 무시하지 말자.
스몰토크하기에 부담 없다.
(예시)
"저는 ‘카피바라 나왔는데, OO 님은 뭐 나왔어요?.. 제 천적은 공작새래요. 앞으로 서로 조심해야겠어요ㅋㅋ"
실제로도 동플갱어 콘텐츠가 네이버, 다음 카페 포함, 내가 여태 들어보고 클릭한 적 없는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잇님(네이버 블로그 이웃), 회원님, 00님을 부르며 댓글에 댓이 달리고 서로의 결과를 공유했다.
역으로 우리는 다음에 유사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들 때, 어떤 곳을 추가로 공략할지 나름의 홍보 리스트를 얻게 된 좋은 기회였다.
공식 런칭한 2월 14일부터 일주일간 평균 9,000명이 참여했고, 2월 22일, 아이돌 nct 도영님이 인스타 스토리로 공개해 주면서부터 참여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루 최대 참여자가 33만 명에 달하기도 했고, 트위터 코리아에서도 트렌드 1위에 동플갱어, 오렌지레터가 올랐다.
콘텐츠를 만들고 출시하면 끝인 게 아니라,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다. 가열차게 홍보해서 동플갱어를 못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안 해본 사람 없게 알렸다.
우리 팀도 기획 단계에서 버벌 콘텐츠, 디자인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지만, 출시 후에는 모두가 확성기 들고 각자의 커뮤니티와 네트워크에서 홍보꾼이 된 덕에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nct 도영 님이 특급 견인해 준 것이 태산이었다면ㅋ, 그전에 우리가 타깃으로 한 홍보처에 맞는 문구를 작성하고 한 땀 한 땀 올리며 소통한 것이 티끌이 되어 잘 쌓인 덕이라고 본다.
최고의 콘텐츠 제작자(누들, 길우, 펭도)들과 함께 만들었지만, 대박을 기대하진 않았다. 2월 14일에 개시하고 평균 1만 명 정도가 참여했으니, 그렇게 10만 명이라는 수를 넘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었다. (우리의 꿈이 얼마나 소박했냐면 1만, 10만 참여자가 넘을 때 인스타그램에 기념 포스팅을 했다.)
인플루언서 한 명이 어떤 요행을 가져다줄 거라고 기대하기보다, 정성 들여 소통한 결과 하나하나가 축적되어 큰 성과를 내는 것 같다.
동플갱어 어느 날 갑자기 동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스토리 형식으로 체험하고 선택하는 식의 콘텐츠다.
이렇게 스토리형으로 만든 이유는 결과 페이지에 안내하는 위기에 처한 동물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콘텐츠 결과만 바이럴 된 게 아니라 테스트하는 과정을 유튜브, 블로그 콘텐츠에 2차 콘텐츠로 제작하여 공유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아이돌 그룹이 라이브 방송에서 ‘동플갱어’ 문답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팬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한창 동플갱어를 출시했을 때, 구글에 ‘오렌지레터’를 검색하면, ‘mbti’, ‘동물테스트’, ‘동물’이 연관 검색어로 따라 나왔다. 오렌지레터의 블로그에도 ‘동플갱어’를 소개한 공식 콘텐츠 조회수가 상당하다.
길우님의 일러스트가 워낙 귀여워서 엽서, 스티커, 이모티콘 등으로 굿즈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과 요청이 나오기도 했다. 잘 만든 콘텐츠 덕을 보고 있고, 또 잘 만든 콘텐츠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내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만 하는’ MZ 세대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MBTI뿐 아니라 심리테스트, 각종 성격유형 테스트, 사주팔자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몰두한다.
MBTI 관련 기사를 인용했다. 마냥 가벼운 세태는 아니지만, MBTI가 왜 계속 화두로 오르내리는지를 알 수 있다.
혈액행 성격설을 MBTI 성격설이 대체했다. (그다음은 또 무엇이 대유행의 가운데에 설지 모르겠다.) MBTI 유행 지난 거 아닌가요?라는 마음이 불쑥 들어올라치면, MBTI가 그런 내 마음이 틀렸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MBTI 활용 마케팅 사례가 매주 소셜미디어 피드를 장식한다.
MBTI 패션 컨설팅과 방송은 물론 제주맥주가 출시한 ‘맥MBTI’, MBTI 사주 자판기는 이제 흔한 일상템이 되지 않았는가.
MBTI 테스트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툴도 잘 마련되어 있다. 꼭 이런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아니더라고, 이미 대한민국을 강타한 MBTI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드는 건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라고 본다.
(아직 안 해본 분들 go go) 동플갱어 MBTI https://slo.ms/dpgr
<동플갱어> 포트폴리오 https://slowalk.co.kr/archives/portfolio/dpg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