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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쩐 Sep 13. 2023

1일 1글을 찍어내던 시절

글을 안 쓴 지난 10년은 멈춘 것 같았다

찐쩐이는 참 고집이 많아. 되게 너의 것이 분명해.



언제부터였지. 초등학교 때부터지 않았나 싶네. 3-4학년쯤, 방송국 엔지니어로 일하셨던 아빠가 동료 작가분이 그만두시고 논술 학원을 차리셨다고. 아마 그 소식을 엄마한테 전했을 테고, (학교 끝나고 뭐 할 게 없으니) 나한테 가보라고 했을 거다. 시작은 이랬다.



언제나 한 손에 프림 커피를 타서 들고 계셨던 원장 선생님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만년필로 내 글을 첨삭해주시고 나더니 ‘찐쩐이는 참 고집이 많아. 되게 너의 것이 분명해.’라고 이야기하셨다. ‘고집 세’라는 뉘앙스로 말했다면, 불쾌한 기억도 따라왔을 텐데, ‘고집’이 약간 ‘신념, 나만의 스타일’ 같은 걸로 치환되어 들렸었다.



그래서 음~ 나는 그런 앤가 보다. 글로 그걸 어떻게 알아차리셨는지 모르겠지만, 칭찬해 주시네-하고 말았다. 가만, 언니랑 동생을 따로 보내진 않았는데, 내가 너무 말대꾸가 심해ㅋㅋㅋ 말대신 글로 풀라는 엄마의 혜안이었을지 모른다. (그 이후로 난 참 고집 세다는 이야기를 엄마, 친구, 여럿에게 종종 듣게 됐는데, 원장쌤이 ‘고집’이란 단어를 잘 안착시켜 주셔서인지 그런 피드백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잘 자라왔던(?) 것 같다.)



1일1문. 논술 학원에 가서 하루에 논설문을 한 개씩 찍어냈었다. 서론:본론:결론=1:3:1의 비율. 본론에 주장을 받침 하는 이유 적당히 구구절절.. 논설문도 계속 쓰다 보니 구조와 개괄이 잡혀서, 점점 쓰는 속도가 붙어 빨리 치고 집에 가게 됐다. (어리나 나이 들어서나 칼퇴가 글쓰기의 원동력이었는지도?) 글 쓰는 게 별달리 싫지도 않아 논술 문제집 따라 글 쓰고, 봉순이 언니 같은 소설 읽고 독후감 쓰다 오고 그랬다.


논술 학원서 글 근육을 잘 키운 덕에 5학년이 돼서 교내외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들이 집에 하나둘 쌓여갔다. 6학년으로 진급(?)하기 전 급우들이 (다른 칭찬할 게 없었는지?ㅋㅋ) 남긴 롤링 페이퍼에는 ‘넌 참 글을 잘 써.’란 칭찬으로 가득했다. 상장 같은 건 교탁 앞에 선 선생님이 급우들 있는 앞에서 주니까, 그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고 그렇게 남기지 않았나 싶다.




그러부터 곱절의 세월을 겪은 나는 글을 되게 조심하며 쓰는 사람이 됐다. 요즘 잘 쓰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내가 뭐 쓸게 있나..하며 자체 소재 고갈을 시키기도 하고, 잊힐 권리가 없는 웹상에서 글을 써놨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어쩐담..이라면서 내 두려움에 방어막을 덧대주었다. 그런데 혼자 간직하는 일기도 더 이상 쓰지 않는 거 보니 그저 글을 안 쓰는데 늘어놓은 변명이지 않나 싶다.




‘앞구르기는 재미있지만 막상 해보면 무섭다. 내 차례가 오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입술을 꼭 깨물고 몸을 앞으로 굴린다. 구르는 동안엔 그저 할 수 있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어지러워서 잠시 멍해진다.’

‘믿어지는 문장들’ 이슬아, 경향신문


꼭 나도 같이 앞구르기를 한 것만 같다. 몸을 한 바퀴 굴리는 짧은 순간이 작가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의 감각에도 닿는다. 까먹고 있던 앞구르기의 두려움과 재미를 상기시킨다.

‘믿어지는 문장들’ 이슬아, 경향신문



그러다 이슬아 님이 경향신문에 남겼던 글이 떠올랐다. 열두 살의 작가가 쓴 문장, 하루하루를 즐겁게 산 작은 어른이 만들어낸 문장들이 문득 내 마음에 밀고 들어와, 나는 어쩌다 언제부터 글과 연이 닿았는지 곱씹게 되었다.



한때 찍어내듯 글을 쓰기도 했는데, 어쩌다 멈추게 되었을까. 중고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절필하듯 글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


흠, 근데 진짜 그랬을까? …………. 생각해 보니… 중고딩 때는 내일도 학교에서 볼 친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본명도 모르는 누군가와 채팅을 했었다. 어른이 되어 호주와 중국서 지냈을 때도 가족들과 이메일로 안부를 물었고, 누군가를 인터뷰하여 네이버 블로그에 남기거나 채용 소식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논설물이냐 인터뷰 정리냐 하는 종류의 다름이 있었지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사진: Unsplash의 Hans Isaacson


다만 뭔지 모를 것 때문에 지난 10–15년이 ‘멈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 아마도 멈춘 느낌이 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깊숙이 나를 돌아보고 썼던 글이 몇 개 존재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바쁘게, 생각 없이 그냥 하루를 흘려보내왔고, ‘지금, 여기’ 나의 감정, 감각, 배운 것, 한 일, 못 한 일….을 곱씹어보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흐른 대로 원래 주워진 대로 질문 없이 살아왔다. 사실 이 글을 초장에 쓸 때는 이렇게 반성하게 될 줄 몰랐는데, 계속해서 이대로 살다 간 안 되겠는네?ㅋㅋㅋㅋㅋ



나와 대화하는 글, 하루를 기준으로 짧든 길든 비문이든 어쨌든, 써야겠다. 쓰지 않으면, 되돌아보지 못한다. 글 잘 쓰는 법, 영어 잘하는 법을 찾아보고 끝내지만 말고, 이제 쓰자.



(영국에 와서는 매일 네이버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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