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핸드폰, 지갑 자주 잃어버리는 사람
주변 지인들에게 기꺼이 기대고, 또 기댈 곳을 내어주며 보내시길 바라요.
새해를 하루 앞에 두고 크게 진땀 흘린 사건이 있었어요.
영국 공항에서 기념품을 사다가 카드 지갑을 통째로 소매치기당한 거예요. 수하물 무게를 최대한 줄이려고 옷을 네다섯 겹 껴입은 터라 지갑이 훌렁 몸 밖으로 빠져나간 것을 못 느꼈어요.
지갑이 없어진 걸 알고 패닉해서 이번엔 무인계산대 위에 여권과 핸드폰을 두고 지갑을 찾겠다고 가게 이곳저곳을 뒤졌어요.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고요. 여차하면 여권, 핸드폰도 잃어버릴 뻔했지만, 일행이 챙겨준 덕에 겨우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다시는 지갑을 안 잃어버리겠다고 다짐하며, 해결책으로 색이 화려하고 큰 지갑을 마련했어요. 그런데 새해에 또 카드를 잃어버린 거예요. 동네 마트에서 계산하고 카드는 당연히 지갑에 넣은 줄 알았는데 바닥에 흘리고 나왔더라고요.
다행히 친한 캐셔분이 제 카드인 걸 알고 챙겨주셔서 되찾을 수 있었어요. 가족들이 평소 저 보고 덤벙거린다고 하면 잔소리로만 들었는데, 이 정도 분실 빈도라면 ‘자타공인 덜렁이’라고 이마에 쓰고 다니는 거지 않나 싶었어요.
지갑이 너무 작았거나 옷이 두꺼워서 물건을 분실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저란 사람이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고 혼자서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자,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며 감사할 줄 알자고 다짐했습니다.
두 분실 사건을 겪고 나니 그동안 누군가를 단점 위주로 보며 판단하기도 했던 제가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이제 그의 부족한 조각을 보완해주는 사람으로 조금 더 성숙해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여러분도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감각하고, 흔쾌히 서로의 퍼즐 조각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각자 있으면 들쭉날쭉해 보일지 몰라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다 보면 근사한 그림 한 편을 완성하는 것처럼요. 이번 한 주 주변 지인들에게 기꺼이 기대고, 또 기댈 곳을 내어주며 보내시길 바라요.
나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단점을 판단하지 말자. 나의 불완전함도 인정하자.
오렌지레터 | 22.02.07. | "어?" | https://stib.ee/DOi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