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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베이터 Mar 13. 2021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머리가 아파온다. 정신이 아득하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부정적이고 불안한 생각은 몰려들고, 몸에서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계속 잠만 자고 싶다. 


과거 내가 오랜 시간 머물던 증상이다. 계획한 일을 해야 하고, 잘못된 습관을 끊어내고 목표와 계획에 따라 뭔가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그 때의 나를 봤다면, '무기력하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나는 무기력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 늪은 빠져 나오려 발버둥 치면 더욱 깊이 빠지는 듯했다. 







무기력은 모든 걸 한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위험한 심리 상태다. 그런데 이러한 무기력함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하고 있다면? 배울 게 없어서 무기력을 배울까 싶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일어난다. 심지어 자주. 이러한 현상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이론이 바로 ‘학습된 무기력증’이다. 


학습된 무기력증에 대한 실험은 긍정심리학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의 주도하여 진행된 실험이다. 셀리그만은 개를 대상으로 이 실험을 진행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함께 진행한 실험은 개들을 실험 상자에 넣고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에는 세 개의 그룹이 존재하는데, 1그룹은 개가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도록 설계했고, 2 그룹은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고, 게다가 몸을 묶어 두어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었다. 3그룹은 비교집단으로 상자 안에 두고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았다.


실험 이후 24시간 뒤에 실험에 참여한 개들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전기 충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 모든 조건은 동일했다. 상자 안에는 하나의 벽이 있었는데 개들은 이 벽만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실험을 관찰한 결과는 어땠을까? 1그룹과 3그룹에 속했던 개들은 중앙의 벽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지만, 2집단의 개들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스란히 전기충격을 받았다. 2집단에 있는 개들은 왜 이러한 행동을 보였을까? 예상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노력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전 실험에서 학습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노력도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학습하고 인지한 것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했던 실험은 이후 사람을 대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학습된 무기력증’이라고 명명된 이 실험은 이제 심리학에서 매우 유명한 실험이 되었다. 



무기력한 감정이 반복되고, 이불 밖은 여전히 위험하게 느껴진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을 학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무기력은 그 세력을 확장하며 곧 나를 점령하고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습된 무기력을 일으키는 주요 기제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방식' 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상황이나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맥락으로 해석했는지, 어떤 부분에 집중하거나 확대 축소하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자주 오류를 일으킨다. 그중 하나가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는 일이다. 일부 사건을 경험하고 그 사건을 보며 쉽게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서도 이러한 설명 오류는 자주 발생한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과거 자신이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힘든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을 생각한다. 사람들과 충돌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그 사건을 인간관계 전체에 대한 해석 자료로 사용한다. '사람들은 늘 날 오해해.', '내 진심을 표현하면, 사람들은 나를 우습게 생각하고 얕잡아 볼 거야.', '내 진짜 모습을 들켜서는 안 돼.'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자리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만 발달한다. 



미래 일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설명오류도 우리를 무기력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목표를 세우고는, 목표로 한 일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한다. 하지만 일의 가능성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를 강조한다면 가능성은 높은 쪽으로 기울고, 내 능력을 축소하고, 상황의 부정적인 측면에 집중한다면 가능성은 희미해질 것이다.  


또한 가능성은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달라진다. 시작할 때 보이지 않던 가능성이 어느 순간 보일 수 있고, 단계별로 성취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가능성은 달라진다. 가능성은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안된다.', '못한다.', '가능성 제로다.'가 너무 쉽게 나온다. 


가능성에 대한 설명 오류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릇된 자기보호에서 비롯된다. 가능성을 최대한 축소시킴으로써 더이 상 그 안에서 헤매지 말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능성을 축소하다보면, 나중에는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것만 같은 상태에 이른다. 문제를 해결해 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내가 통제하거나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상태가 무기력이다. 


'이번엔 안 될 거야.', '올해 시험은 가능성이 없어', '지금 내가 가진 조건으로 어디에도 갈 수 없어.', '이미 너무 늦었어' 이렇게 가능성을 축소함으로 일시적으로는 안전하게 포이는 곳으로 피신할 수 있지만, 나중엔 어디에도 안전하게 머무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상황에 대한 그릇된 설명에서 벗어나려면, 어긋난 자기보호를 멈춰야 한다. 그러한 자기보호에는 내 자신을 의심하는 태도가 숨겨져 있다. 








무기력함은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나를 옭아맨다. 우리는 보통 이유도 없이 갑자기 무기력해졌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맥락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설명하는 방식이라는 게 좀 모호하게 여겨진다면,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만약 스스로를 향한 설명이 부정적인 면에 치우쳐 있거나, 가능성을 축소하는 방향이라면, 그 대화에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이렇게 한마디 해야 한다. '이 정도 증거와 근거로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아직 성급해. 다시 생각해 보자.' 


인식하지도 못한 채 반복했던 생각이 무기력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멈출 때다. 자신의 설명 방식을 이해하고 그 설명 방식을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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