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해 내려고 과도하게 신경 쓰면 이상하게도 그 일의 성과가 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시험을 볼 때 결과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긴장감 때문에 시험불안이 높아진다. 데이트를 할 때 성공적인 데이트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과도하게 사로잡히면, 데이트를 망친다.
어떤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면, 우리는 결과에 집중한다.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염려로 쉽게 바뀐다. 염려는 그 일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결국 잘하려는 의도가 일을 망치게 된다.
사람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던진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쉽게 맘에 와 닿지 않는다. 결과에 집중하고 싶어서 집중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의식은 결과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고, 끊임없이 염려를 생산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을 결과에 대한 염려나 부담감에 눌려 고민한다면, 이걸 활용해 보면 어떨까? 이건 바로 '리츄얼(Ritual)'이다. 리츄얼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의식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리츄얼이라는 용어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종교의식, 올림픽 선수들이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특정한 행동들, 일상의 루틴들 등 다양한 행동과 의미를 포함하는 용어가 리츄얼이다.
종교에서 예배나 미사 등의 종교의식에는 나름의 절차가 있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는 가운데 신도는 일상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종교적 의식에 집중한다.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서브를 넣기 전 공을 땅에 다섯 번 튕기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 김연아는 몸을 풀 때 항상 경기장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돈 후 뒤로 서서 S자를 그리며 활주 한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매일 아침 8시~8시 30분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쓸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리츄얼을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수행을 돕는 데, 리츄얼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심리학에서 리츄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의식화된 행동이 수행에 대한 염려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그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이 일의 결과가 어떻게 주어질지 모르고,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모를 때 우리는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마음은 쉽게 산만해진다.
한번 불확실성을 인식한 뇌는 불확실성의 그림자의 영향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불확실성의 그림자 아래에서 갈길을 찾지 못하는 의식은 아까운 시간만 죽이고 만다.
특정한 환경, 일정한 절차적 행동을 따르는 리츄얼은 결과에 대한 집착과 불확실성에 헤매는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준다. 염려의 무한루프를 깨트리고, 현재라는 숭고한 시간 앞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마인드셋을 새롭게 장착함으로, 염려만 하다 지쳐버리는 나를 실행력 갑으로 변화시킨다.
그럼 일상에서 어떻게 리츄얼을 만들고 활용할 수 있을까? 먼저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특정한 행동을 구체화하고 그 행동을 프로세스로 만든다. 리츄얼의 조건은 구체화된 환경이나 행동, 일련의 행동의 연결, 그리고 반복이다. 단일한 행동보다는 행동에 순서와 절차가 있을 때 리츄얼은 더욱 강해진다.
예를 들어 기획 작업을 해야 한다. 핵심을 찾고, 생각을 엮어 창의적이 아이디어를 탄생시켜야 하는 기획은 고된 작업이다. 불확실성의 공포에 쉽게 얼어붙을 수 있는 일이다. 이때 간단한 리츄얼을 하나 만들어 보자. 예를 들면 책상을 깨끗이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하나 듣는다. 이제 노트와 펜을 꺼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일단 노트 한 페이지에 가득 채운다. 사실 어떤 행동이든 가능하다. 중요한 건 행동이나 조건을 보다 구체화하고 이를 반복하는 일이다. 여기에 종교의식을 치르는 듯 경건하게(?) 모아진 마음을 마련하면 더욱 좋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이 반복되면, 이는 리츄얼로 변한다. 리츄얼은 주의력을 환기시키며, 눈 앞에 놓인 일을 다시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인식시켜 준다. 일의 결과에 염려하거나 다른 자극에 주의를 빼앗겨 헤매는 나를 현재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일정한 절차의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목표를 향한 영점을 맞추며, 오늘 계획한 일을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무의식적 다짐을 외친다.
리츄얼 일이 진행되기 전에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을 마친 후에도 리츄얼을 활용할 수 있다. 일을 마치고 리츄얼을 행할 때 우리는 보상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뇌는 보상에 민감하다. 어떤 행동에 보상이 주어지면, 그 행동은 강화되고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상은 꼭 물질적 보상,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리츄얼을 활용하면 우리 뇌는 행동에 대한 보상을 인식할 수 있다.
나는 과거 내 행동을 관찰하며, 어떤 태도로 일을 진행하면 그 일을 좀 더 강화하고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당시 내가 발견한 건 목표로 한 일을 완수했을 때 간단한 행동을 취함으로 내가 그 일을 해냈다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글의 초고를 쓰고, 손가락을 두 번 튕기며, ‘해냈다’하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이 주제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 아이디어가 연결되며, 빈 종이를 채워나간다. 초고를 쓴 후 생각은 두 갈래 길로 갈 수 있다. 하나는 ‘퇴고는 언제 다하지?’, ‘글쓰기는 너무 힘들어.’라고 생각할 수 있고, ‘한 문장도 완성하기 힘들 것 같았는데, 어떻게 초고를 완성했지?’, ‘오늘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아’라는 생각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계획한 일을 완수했을 때 스스로 간단한 리츄얼을 해주면, 지금 이 일이 잘 진행되고 있음을 인식시켜 줌과 동시에 어떤 일에 도전하고, 그 일을 해내는 과정이 꽤나 즐거운 일임을 자신의 뇌에게 알려줄 수 있다.
나중에 B.J 포그의 “습관의 디테일”이라는 책에서 그가 제시한 방법이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방법과 동일하다는 사실에 반가워했다. 그 또한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칭찬하는 행동을 설계’하라고 했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 뇌에 보상체계를 활성화하고, 강력한 습관으로 연결 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감정을 통해 강화되는데, 특정한 행동에 감정을 담으면 그 감정은 보다 강력하게 전달된다. 계획한 일을 마친 뒤 손을 높이 뻗거나, 발 구르기, 크게 심호흡을 하며 해냈다는 감정에 집중하기,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고, “예쓰”하고 외치기 등은 긍정적인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강화시켜준다.
누구에게나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욕은 자칫 염려를 낳는다. 그리고 염려는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결과에 대한 염려는 뇌의 작업기억(정보를 처리하는 단기적 기억) 처리에 영향을 주어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염려 자체가 뇌의 기능을 떨어트리게 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염려에 눌려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리츄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일상의 리츄얼이 새로운 나를 깨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