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결혼 자격증도 필요한 시대
결혼하는 이유 VS 이혼하는 이유
"이제 진짜 끝이네! 아유, 좋아라."
"조용히 해, 쪽팔린다."
"나쁜 새끼..."
가정법원 협의이혼의사 확인실.
20대 젊은 부부가 이혼 결정을 확인하고 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이혼을 결정하는 순간의 여러 형태 중 하나로, 여자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한 원망을 남자에게 퍼붓고, 남자는 천장 조명이나 올려다보며 복화술을 펼치는 경우이다.
하루에도 수십 쌍의 이혼을 보는 상아의 시선은 여자 쪽으로 향했다.
내 인생에 이혼이라니. 안 그런 척하지만 여자는 그동안 겪어온 고통과 수치심, 두려움으로 이미 잔뜩 웅크려져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자락 기대도 보인다. 그래도 한때는 사랑했던 이 인간이 헤어지는 마당에 사과라도 한마디 하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 순서는 8살 남자아이를 둔 40대 부부였다. 시댁과의 갈등으로 아내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었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아내의 요구로 이혼을 결정했다는 부부다.
후... 이게 뭐냐고...
2년 차 가정법원 판사인 상아는 1년에 수만 쌍의 이혼, 조이혼율 1.8%라는 현실의 한복판에 있다. 조이혼율이란 인구 1,000명당 이혼한 인구 수로, 1.8%로면 세계 상위권이다.
이혼이 개인의 불행이고 죽을죄도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많다. 결혼하는 이유는 하나였을 텐데, 이혼하는 이유는 사연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결혼 전부터 어쩐지 이상했다, 이미 조짐을 보였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건에 떠밀려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의 뒷모습들을 볼 때면, 상아는 준비에 준비를 해도 부족하지 않은 게 결혼이다 싶다. 아니 웬만하면 안 하는 게 좋을 듯싶다.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나도 벌써 기안이랑 결혼했을까.
상아는 요즘 부쩍 결혼 얘기를 꺼내는 남친 기안이 떠오른다. 솔직히 상아는 아직 자신이 없다. 가지가지 이혼 사연들을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은 바보라서 이 지경까지 왔겠나 싶기 때문이다.
결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까똑!
[언제 도착?]
상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안의 메시지는 해맑기만 하다.
[10분 뒤]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상아는 10분의 여유를 더 챙기고 2층 화장실로 향했다.
급히 나오느라 제대로 점검이 안된 머리도 다시 묶고, 톡톡 파운데이션도 두들겨주고, 이왕이면 입술까지 살짝 발라주자니, 괜히 오그라든다.
오상아는 아직도 한기안에게 이쁘게 보이고 싶은가 보네.
벌써 9년 차 연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식 커플인데, 기안은 아직도 상아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그 많은 남자들 중 기안이만 보인다.
"많이 기다렸지? 뭐 먼저 마시고 밥 먹으러 나갈까? 아님 여기서 그냥 밥부터?"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상아의 말은 의자에 앉기도 전에 끝나 있었다.
"이렇게 성격이 급하신데, 왜 결혼만 예외일까."
"뭐야, 만나자마자."
"난 이제 결혼이라는 말 자주 할 거야. 자주 한다고 가볍게 듣지는 말아줬으면 하고."
"결혼 스트레스 주지 말아 주세요."
"이혼사유, 이혼조종, 협의이혼, 이혼결정... 넌 하루 종일 이혼이라는 단어와 살고 있어. 그건 공평하지 않지. 앞으론 내가 결혼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지게 해 줄게."
순간 상아는 자존심이 상했다.
기안의 말투가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다독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엔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며 씨익 웃는 게, 상아도 처음 보는 밉상이다.
이봐, 얘도 내가 못 보던 모습이 있잖아. 이래서 내가 결혼에 자신이 없는 거라고.
상아는 한껏 낙담하며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게 결혼이다. 이 생각에 난 변함없어."
"우리가 '아무나'라는 거야? 9년 차 남친한테 할 말은 아닌 듯. 섭섭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데, 막연히 우린 잘살 거야, 하면서 결혼하는 게 문제라고. 먼저, 미리, 충분히, 준비를 하고..."
"9년 만났고, 둘 다 자리 잡았고, 양가 부모님도 원하시고. 뭘 더?"
"됐어. 그만해."
"시험이라도 쳐서 자격증이라도 받아와야 하나. 한기안은 오상아와 결혼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뭐 이런 거."
결혼과 시험이라는 안 어울리는 조합에, 상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험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 그런 시험이라도 있음 이혼율은 낮아지지 않을까."
"네네, 판사님. 그런 건 어디 정부기관에 맡기시고 일단 식사부터 하시지요."
대화는 웃으며 끝냈지만 상아는 한 자락 찜찜한 기분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결혼 얘기만 나오면 자신이 모지리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