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의 뜻을 아시나요?
[소설] 결혼 자격증도 필요한 시대
살다 보면 당연히 이런 뜻인 줄 알고 쓰던 단어가,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뻘쭘해질 때가 있다.
상아에게는 '허니문(honeymoon)'이 그랬다.
상아는 허니문이 꿀처럼 달콤한 신혼 기간, 혹은 신혼여행을 뜻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그 어원이 가진 원래의 의미가, 달이 차고 기울듯이 꿀처럼 달콤한 시간도 곧 줄어들고 현실적인 문제가 찾아온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는 걸 알고 흠칫 놀란 적이 있다.
상아에게 그걸 알려준 건 선배 판사였다.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법복을 입은 날이었다.
"오상아 판사, 멋있네. 판사로서의 허니문을 즐겨봐. 아주 짧겠지만."
상아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듯하자 선배 판사는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고, 그날부터 상아에게 허니문은 달달한 행복을 상징하는 단어에서, 곧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것을 암시해 주는 단어로 탈바꿈했다.
그것은 꽤나 강렬한 반전이었다.
미진이 결혼고시 1차 탈락이라는 문자를 받은 후, 상아는 뜬금없이 '허니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결혼고시라는 걸 너무 만만하게 본 걸까.
허니문이 달콤한 말인 줄로만 알았다가 한방 먹었듯, 결혼고시에 반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상아는 기안과의 긴 연애사의 한 줄 이벤트처럼, 뭔가 환기시키는 경험이 될 거라는 호기심에 시작한 게 컸다. 더 솔직히 말하면 기안이가 한다 하니, '니가 하면 나도 한다'였다.
그런데 실제로 누군가가 떨어지고, 떨어진 자의 낙담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바로 그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혹스러웠다.
숨소리조차 소음이 될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미진이는 아까부터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듯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한동안의 정적을 깬 건 역시나 대훈이었다.
"자, 자, 일단 좀 마시자."
대훈이 맥주병을 허공에 들어 올리며 건배 시늉을 하고는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노무 결혼고시가 내 1주년 파티에 재를 뿌리는구나~"
대훈이 타령조로 혼잣말을 할 때였다.
미진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쪽팔려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지금은 꼼짝도 못 하겠어요."
미진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한 손으로는 맥주 밑동을 만지작거렸다.
시선을 내리깐 채 맥주병 밑동만 보고 있었지만, 앙다문 입술이 애써 눈물을 참으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세 사람 역시 자기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요?"
미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학 졸업하고 제대로 취직 한번 한 적 없고, 모아 놓은 돈도,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그런 걸로 볼 때 결혼하기에는 너무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한 건가? 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근데?"
"좀 전에 저랑 비슷한 상황인 친구랑 연락해 봤는데, 걔는 그 문자 안 받았대요."
"그래?"
그럼 뭘까. 나름 미진이를 안다고 생각하는 세 사람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 링크 열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상아가 문자에 적힌 안내 링크 얘기를 꺼냈다.
"지금 열기는 싫어요. 무서워..."
상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성격...? 니가 성격이 좀 욱 하잖냐. 그걸 어떻게 알고. 하. 하. 하."
대훈이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하나도 안 웃기거든."
상아가 정색을 하자, 대훈이도 다시 얼른 정색을 했다.
"단 거 땡기는 사람 없어? 지금 케이크 먹자고 하면 다들 날 죽이려 들겠지."
대훈이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맥주 4병을 더 꺼내 왔다.
"내가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게 있는데 말이야."
대훈이 각 1병씩 새 맥주를 전달하며 말했다.
"미진이 너 그거 뭐라고 썼냐? 그 응시원서에 있던 질문 두 개."
"그거요? 그냥 솔직하게 썼는대요."
"그니까, 뭐라고 썼을까, 우리 미진이."
미진이 곰곰이 떠올리더니, 아예 휴대폰을 열고는 응시원서를 찾아 읽어주었다.
"결혼고시에 왜 응시하셨습니까. 이거는 결혼고시를 보고 나면 결혼에 대해 자신감이 생길 거 같다. 결혼고시를 통해 내 결혼에 대한 생각도 점검하고, 나중에 결혼 상대를 만날 때도 결혼고시가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응시했다."
"응. 그리고 두 번째는?"
"당신에게 결혼은 무엇입니까. 이거는.. 아.. 이거는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짧게 썼어요. 결혼은 나에게 울타리다.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안정되게 살고 싶다. 결혼을 통해 나만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
아. 그렇게...
세 사람은 동시에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이다. 글과 말은 자기 자신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 경제적 안정부터 운운했으니, 심사위원들에게는 결혼을 취업처럼 생각할 여지가 있는 위험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미진이 말대로 솔직한 것이기는 했다. 미진이는 평소에도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사랑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조건은 좋되, 싫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는 결혼할 거라고 했다.
어느 때는 그저 환경을 바꾸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웬만한 사람은 다 싫다고 한다는 거였다. 싫은 이유가 천만 가지도 넘었다.
미진이 얼굴이 화끈거린다는 듯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글로 적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소리 내서 읽어보니까 되게 속물처럼 썼다 싶네요."
"뭘 속물까지. 솔직하긴 했네."
대훈이가 편을 들었다.
"맞잖아. 다들 능력 있고, 잘 나가는 사람 만나서 편-안하게, 이왕이면 우-월하게 살고 싶은 거. 마침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없던 사랑도 생겼다가, 조건이 바뀌면 사랑도 고통으로 바뀌는 거고."
대훈이 취했나 싶게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기안이 그만하라는 듯 워워시켰다.
"됐어. 우리끼리 이런 얘기 더 할 필요도 없다. 시간 차가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셋도 내일 바로 문자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럼 또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맞아. 우리 지금 너무 몰입했다. 이게 뭐라고."
상아도 기안의 말에 동의했다.
"걱정 마세요. 세 분한테는 절대 이런 문자 안 올 거니까."
정말 자기 답변이 원인이었다 싶어서인지, 미진의 목소리는 더욱 침통해져 있었다.
"자, 이쯤에서 모두 주목."
대훈이 갑자기 맹세하는 사람처럼 한 손을 들고는 모두를 집중시켰다.
"내가 고백할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