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결혼 자격증도 필요한 시대
2주간 하고도 이틀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결혼고시 서류 제출은 마감되었고, 더 이상 링크 연결도 되지 않았다.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기로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각 개인의 속은 어떨지언정 세상은 아랑곳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상아 역시 막상 서류를 낸 후부터는 오히려 편안했다.
변화라고 한다면 기안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고 느낀다는 거였다.
매일 통화하고 문자하고,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잠깐이라도 꼭 보고...
기안이의 태도가 달라진 것도 없는데, 상아는 그냥 직감했다.
같은 색감에 채도만 살짝 달라졌을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 아는 차이라고나 할까.
그 변화라는 게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도 헷갈렸다.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고.
상아는 혼잣말을 하며 대훈이네 카페로 향했다.
[카페 후니 1주년 기념! 가게 문 닫고 소소하게 치맥 파뤼 9시. 올 사람만 오시오.]
도도한 내용과 달리, 귀여운 토끼가 무릎 꿇고 싹싹 빌고 있는 이모티콘이 따라다니는 메시지를 받은 건 오후 1시쯤이다.
이미 며칠 전부터 모이기로 했건만, 대훈이 다시 한번 확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카페에 들어서니, 대훈과 미진은 한창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고, 기안은 상아를 기다리고 있던 듯 문쪽을 보고 있다가 씩 웃었다.
"어이구, 판사님 어서 오십쇼. 1인 1닭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대훈이 장난스레 두 손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치킨 4박스, 330cc 병맥주 4병, 마른안주에 과일까지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와우, 뭐가 이렇게 많아. 1년 동안 번 거 다 쓰시는 중?"
상아도 농을 던지며 앉았다.
"맥주는 냉장고에 더 있고요, 케이크도 있어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위한 이벤트에 진심인 분은 처음이랍니다. 역쉬~ 울 사장님."
미진이가 대훈이를 향해 엄지 척을 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문 안 닫고 버틴 나. 장하다, 기특하다~!!"
"기특하다! 기특하다!"
대훈이 선창을 하고, 세 사람도 동시에 소리치며 건배를 했다.
쨍, 쨍! 4개의 맥주병 부딪치는 소리가 분위기를 한층 경쾌하게 만들어주었다.
네 사람이 이렇게 모인 것도 결혼고시 응시 문자를 받은 날 이후 처음이었다.
한바탕 대훈이의 카페 운영 하소연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다음 술안주는 결혼고시가 되었다.
미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산 인증. 그거 땜에 며칠 꿀꿀했네요."
상아로서는 이미 집에서 몇 번 들은 주제였다. 또 그 얘기구나 싶었지만 집에서는 뻔한 신세타령처럼 들렸는데, 이렇게 네 명이 마주 앉아 들으니 새삼 집중이 되었다.
"내가 알바만 했잖아요. 그렇다고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훈이 냉장고에서 맥주 4병을 더 꺼내오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건 좀 그렇더라. 명색이 나라에서, 좋은 취지로 하는 걸 텐데, 엉? 무슨 결혼정보회사처럼 수익이니 재산이니 증명하라고 하고."
"다행히 사장님이 여기 카페에서 일하는 거, 재직증명서 만들어줘서 일단 그걸로 내기는 했는데."
미진이 한숨을 쉬었다.
"결혼 자격으로 경제 능력을 보는 거구나 싶으니까. 이 나이 되도록 뭐 했나 한심하기도 하고."
"뭘 그렇게 생각해. 없으면 없는 대로 해당되는 것만 내라고 했던데."
기안이 화제를 돌려보라는 듯 상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금 상아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던 신문기사 제목이 떠오를 뿐이었다.
대한민국 미혼남녀, 결혼 안 하는 이유 1위. 결혼자금 부족. 경제 부담 너무 커(31.3%)
상아는 미진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이 거창해서 자산 인증이지, 보통 기본적으로 제출하는 신용 서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미진이 말대로 본인의 능력으로 결혼자금은 마련할 수 있는지 체크한 게 아닐까.
그때였다.
취기가 오른 듯 벌게진 얼굴로 대훈이 말했다.
"요즘 TV나 OTT를 봐도 남자 여자가 모여서 짝꿍 찾고, 썸 타고 사귀고 하는 프로가 많더라. 일반인들끼리 소개팅하는 거, 일반인하고 연예인하고 만나는 거, 이혼한 부부를 다시 만나게 하는 것도 봤고, 커플들끼리 바꿔서 만나 보는 것도 본 거 같고."
"맞아. 어떨 땐 결혼, 이혼 아니면 방송 못 만드나 싶을 정도야."
상아도 맞장구를 쳤다.
"내가 이상한 건가, 세상이 이상한 건가. 남자 여자가 서로 호감 갖고 좋아하고 그런 게 엄청 미묘한 건데, 그걸 카메라 앞에서 한다? 그게 솔직할 수 있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런 프로에 나갔다가 진짜로 결혼한 사람들도 있대."
기안이도 한마디 보탤 때였다.
"언니, 저 화장실."
미진이 입 모양으로 상아에게 말하고는 조용히 일어났다.
대훈이의 말도 계속 이어졌다.
"예전에 연예인들이 가상으로 결혼해서 사는 프로가 있었잖냐. 난 그거 첨 봤을 때 진짜 소름이 쫙 돋았다. 저게 지금 리얼인가? 헷갈리더라고."
대훈이 오징어포를 잘근잘근 씹으며 말을 이었다.
"연예인들 몇 쌍이 나와서, 실제 부부가 결혼생활 하듯이 흉내 내는 걸 보는데, 뭐 저런 허망한 프로가 다 있나. 이상했어. 암튼."
그런 게 있었나? 상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로 내 결론이 뭐냐. 옛날에는 방송은 방송이고, 내 현실은 현실이고. 경계가 있었거든. 근데 이제 결혼이며 연애같이 지극히 미묘한 개인의 감성, 감정까지 방송 소재로 삼으니까. 내가 사는 현실이랑 방송으로 보는 삶이랑 경계가 막 엉키는 것 같다는 거야."
대훈이 목이 마른지 맥주를 연거푸 두세 번 넘겼다.
"그 결과, 결혼고시 같은 것도 생기는 거고. 방송 나오는 출연자한테 하듯, 우리한테까지 개인 정보며 자산 정보를 막 내라고 해도, 우리도 그냥 눼눼 여깄습니다요, 하고."
"......"
상아가 물끄러미 대훈이를 바라봤다.
상아는 처음으로 대훈이 막 말하는 것 같아도 은근히 통찰력이 있다고 느꼈다.
"근데, 쟤는 저기 서서 뭐 하냐?"
대훈이 두 번째 오징어포를 찢다 말고, 화장실 쪽을 바라봤다.
화장실 문 앞에는 미진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세 사람 쪽을 보며 서 있었다.
"어머, 미진아, 괜찮아?"
상아가 벌떡 일어나 한걸음에 미진이 곁으로 다가갔다.
"취한 거야? 못 걷겠어?"
상아가 부축해주려 했지만, 미진이는 오히려 상아의 손에 자기 휴대폰을 넘겼다.
"언니, 이게 무슨 말인지 해석 좀 해줘요. 진짜 취했나.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돼서요. 아까 왔나 본데 이제 봤네요."
미진이가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문자가 띄워져 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참결혼실현부입니다.
금번에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결혼고시에 응시해 주신 김미진 님께 감사드립니다.
김미진 님께서 제출하신 서류 및 응시 원서의 검토가 완료되었습니다.
결과, 김미진 님께서는 2단계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보다는 결혼의 의미와 개념에 대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신 그룹으로 선정되셨음을 알립니다.
이에 대해 문의가 있으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참결혼실현부는 언제나 김미진 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언니 이게 지금, 제가 1차에서 떨어졌다 이 말인 거죠?"
상아 옆에 바짝 붙어 다시 한번 문자를 뚫어지게 보던 미진이 물었다.
태연하러 애썼지만 미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