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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머리 쫑쫑 땋고 출근

행복한 마음은 이성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by 도이

이번 가을은 버섯이 많이 나는 계절이다.

감사하는 마음도 평화로워야 생긴다.

행복한 마음은 이성적 노력으로 생기기 어렵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이번 여름은 지나치게 뜨거워 가을이 오지 않을 것만 같더니 서늘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고 있다. 최근 여름이불 위에 두터운 겨울이불을 함께 덮고 잔다. 더우면 위에 있는 겨울이불을 걷어내고 여름이불만 덮고, 추우면 이불 두 개를 한꺼번에 덮고 잔다.

내가 어린 시절엔 엄마, 아버지, 언니 나 그렇게 네 사람이 작은 방에서 함께 잤다. 막내인 나는 엄마 옆자리가 내 지정석이었다. 자다가 답답해 잠을 깨 보면 무거운 솜이불이 내 가슴 위로 무겁게 덮여있었다. 어린 나는 더워서 다리로 이불을 발목밑까지 차서 발밑에 이불을 내려놓고 잠을 자다 보면 또다시 목까지 덮여있었다. 밤새 두꺼운 목화솜이불 때문에 여러 번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했었다.

어젯밤 나의 딸아이 잠자는 것을 보니, 여름 이불만 덮어주었는데도 이불을 좀처럼 덮고 자지 않는 것이었다. 나이 든 내가 이불 두 개를 덮고 자는데 반해 아무것도 덮지 않고 자는 딸아이가 추울 듯하여 겨울 이불을 가져가서 덮어주었다. 딸아이는 "더워~"라고 잠시 투정 부리더니 그대로 잠을 잔다.

그렇게 나는 내 엄마가 하던 것을 요즘 내 딸아이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이불을 밤새 덮어주시던 나의 엄마가 요즘 그리워지고 있다. 이제 내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인 나를 그리 따르지도 않고 내 손길을 그리 바라지도 않는데 오십 넘은 나는 밤새 이불을 덮어주던 엄마가 그립다. 그렇게 오십 넘은 내가 다시 어린 아기가 되어간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풀어헤치니 그야말로 폭탄머리다. 빗으로 빗고 앞머리만 남겨두고 두 갈래로 쫑쫑 땋아버렸다. 그리고 뒤에 하나로 묶으니 구름을 쓴 것 같던 폭탄머리가 아주 얌전한 새색시처럼 되었다.

그리고 추석 지난 차를 타지 않고 아파트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와 큰 대로를 건너 남산을 통해 출근을 하기로 했다. 남산 경사로를 올라가니 숨이 차 헉헉거렸다. 남산은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지만 그래도 운동량이 거의 없는 나를 숨차게 만든다.

올해는 유난히 버섯이 많이 나는 가을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종류의 버섯들이 여기저기 불쑥불쑥 낙엽을 머리에 이거나 구멍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어떤 것은 빨간 갓을 어떤 것은 하얀색의 갓을, 또 어떤 것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시커먼 갓을 흉물스럽게 덮어쓰고 오솔길 여기저기 솟아오르고 있다.

대부분 독이 있을 듯하여 직접 만지는 것이 꺼려졌다. 작은 나뭇가지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갓 위에 마치 여드름처럼 도돌도돌 나 있는 갓의 껍질은 긁어도 보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버섯들이 그렇게 산 이곳저곳에서 올라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버섯들을 관찰하다가 문득 어제 현하언니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그럼 행복해질 거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다. 사실 감사할 일은 너무나 많다.

내가 저녁에 들어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아침에 일어나 수도꼭지를 열면 깨끗한 물이 나와 세수를 할 수 있고,

창밖에 오동나무와 아카시아가 가득한 산이 있고,

그 산에 여러 종류의 새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즐겁고,

내가 아직 건강해서 스스로 걷고 움직이고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고,

숨 쉴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고,

작고 싸구려지만 내 소유의 작은 차가 있어 어디든 갈 수 있고,

사실 감사하려면 세상 모든 것이 다 감사한 존재들이다. 그 모든 것들이 있어 나는 존재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나는 울고, 웃고, 기쁘고, 슬프고, 숨 쉬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 다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중 하나만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거나 삶을 지속할 수 없기에 너무나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고마운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이런 것은 마음이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지옥이면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봐도 감탄할 수 없고,

아무리 멋진 음악을 들어도 가슴에 와닫지 않고,

아무리 영화같이 멋진 풍경 속에 있어도

아무리 좋은 사람과 함께 있어도

내 마음이 지옥이면

그 모든 것들이 남의 일처럼 공허하고 내 것일 수가 없다.


그러니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한 사람에게 감사함을 강제로 느끼라고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머리로는 정말 그래야 하는데

가슴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느낌은 머리보다 가슴이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고마운 언니여!

내게 무조건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지 마요.

잠시 의기소침해 있을게요. ^^


버섯이 가득한 산을 내려와 간신히 늦지 않게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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