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취준생의 2년간 허리통증치료기 3
솔직히 고백한다. 앞에선 다 통달한 척 까불었지만 나라고 척척 "어? 허리가 아프네? 그럼 내 몸 전체를 살펴봐야겠다." 이렇게 챗 GPT 답변처럼 딱 떨어지게 움직인 건 아니었다.
허리가 아프니 당연히 허리만 보고 달려왔다. 벌이 자꾸 사라진다면, 벌이 돌아다니는 경로에 곰이 있나, 벌 도둑이 있나 이런걸 보게 되지, 단번에 수트를 척 입고 나와선 "아 그건 말이죠. 다 이상 기후 때문입니다. 결국 지구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생기는 현상인거죠."라며 거시적인 발언을 단번에 할 수 있게 되진 않는다.
난 범생이다. 그것도 마니아적인. 뭐 하나에 빠지면 1부터 10은 커녕 100까지는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덕질은 그 가수의 부모님이 한식뷔페를 한다는 것 까지, 아니면 대학생 때 했던 버스킹 영상을 암암리(?)에 다운받기 까지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더 이상 물이 안 나올 때까지 깊숙이까지 찾아보고 골방에서 혼자 공부하고 그렇게 혼자 점수를 잘 받는 그런 싸가지 없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 싸가지가 안타까움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쟤는 노력은 하는데 성적은 안 나오는 자의 표본이라고 누가 말 한 건 아니고 나 혼자서 생각했던 말이다.
아무튼 혼자서 파고 들어가니 숲은 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저기 숨겨져있는 아주 작은 이파리의 잎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느라 온 시간을 다 썼다.
그러니 허리를 어떻게 낫게 할까가 온통 내 관심사였을 뿐이다. 허리 낫는 운동법, 병원, 수술법... 유튜브, 허리질환 카페 뿐만 아니라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 갔다. 거기서 아래 칸에 있는 책을 보려고 엉거주춤 안는 순간 끔찍한 통증이 찾아와서 그만뒀지만.
하지만 사실 처음 아플 때 허리는 그다니 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내가 보던 이파리는 따로 있었다.
그때 난 어떻게든 나의 유능함을 보여야만 했다. 아니, 그때가 아니라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쓸모 잇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는 게 내 인생 미션이라고.
그리고 쓸모없는 상태를 나는 못견뎌했다.
당시 내 상태는 무능 그 자체였다. 무려 2년 가까이 어떤 회사에도 취업하지 못했다. 라디오 피디가 되겠다며 서울에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던 내 몸부림은 그다지 눈에 띄지 못했다. 아까 그 아피리가 살짝 흔들린 정도? 결국 본가로 내려왔다. 하지만 여기서도 공기업 준비한답시고 헤매고 다녔고 제정신을 잡지 못했다. 그러니 나이가 28을 먹고 도서관 휴무일도 못챙긴다며 아버지께 불같이 혼이나 났다.
그런데 어느날 허리가 아팠다. 허린지 어딘지도 모르게 갑자기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빨리 주저 안고라도 싶었지만 안타깝게 여긴 화장실 샤워기 앞이었다. 겨우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지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까지 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마음 같아서는 1살 조카의 걸음법으로 가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난 아무렇지 않게 보여야 했다. 당시 난 내 무능을 숨기느라 급급해서 부모님이 걱정할 순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상하게 그 걱정이 공격으로 느껴지기도, 나를 비참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제와 다름없이 슬슬 걸어나와서 (하지만 최대한 안 아프기 위해선 머리에 물컵이라도 있는냥 아주 조심해서 걸어야만 했다.) 방문을 닫고 그제서야 끙끙 소리르 냈다. 엄마아빠꼐 지금 물어봐도 내가 아프던 첫날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같은 한 공간에 같은 시간에 있었으면서도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바깥 티비소리를 배경음으로 정신 없이 아팠다.
허리도 다 나 혼자 해결해야했다. 누구도 그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나 혼자 해결하면서 나 혼자 또 아파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내 무능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 한겹, 두 겹, 64겹 크루아상 마냥 둘둘 나를 둘러쌓다.
그렇게 겨우 자고 일어나서 다음날이 됐는데 나름 괜찮았다. 그래도 오늘 스터디 카페는 쉬기로 했다. 어차피 가봣자 별 하는 거 없이 돌아올거면서 괜히 주름이나 잡아봤다. 그러다 또 이것저것 한참 찾아봐서 허리에 수건도 깔고 무릎 밑에도 깔았다. 금세 저녁이 된다.
몇달 전 찾아본 이상근증후군 스트레칭을 다시 켰다. 이걸로 나 엉덩이 통증도 다 해결한 여자야. 그때처럼 엉덩이를 통통 쳐주고 엉덩이 근육도 수축시켜준다. 그다음 자세로 넘어갔다. 이번엔 앞다리를 기역자로 만들고 뒷다리를 쭉 펴주고...
악!!!!!
순식간에 허리가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아니 이거 허리가 분명 찢어졌다.
며칠전이랑 같이 기어서 겨우 침대 위로 올라갓다. 아프지 않게 몸을 뉘이는 건 또 다른 단계였다. 겨우 몸이 일직선이 되어서야 눈물을 질질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거 나 혼자 해결할 수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