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치료 온 병원의 효과?
유착.
이게 무시무시한 거다. 신경증상은 우선 존재만으로 무섭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종아리가 땡땡 부어서 마치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실제로 보기엔 전혀 부어있지 않다. 그런데도 종아리가 무거워서 걸을 수 없어진다.
말초신경에 정말 이상이 생겼던 걸까?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며 검사를 해봐도 그만 좀 귀찮게 하라는 듯 ‘이상 없음’이란 검사지만 뱉어댔다. 그리고 어느새 팬이 되게 만든 영상 속 의사의 말. 디스크가 아니라도 신경 증상이 생길 수 있다.
건강할 때는 각자 자리에서 함께 잘 지내던 사이가 너무 붙어있으니, 서로를 못살게 구는 거다. 근육을 움직이지 않으면 신경이 근육과 엉겨 붙는다. 그러다 보면 조금만 움직여도 신경이 건드려지고, 이 둘 사이를 전혀 모르는 나만 알 수 없는 신경통에 시달렸다.
언니가 알아낸 한의사는 ‘약침’으로 근육과 신경이 엉겨 붙은 그 끈적한 사이를 약물로 떨어뜨려 주겠다는 의미였다. 어찌 보면 양방의 근육주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주사하는 내용물은 다르다. 양방에선 염증을 줄여주는 스테로이드제이고, 한방에서는 의사마다 직접 조제하는 한약물을 투여한다.
주요성분은 죽염이었다. 알칼리성과 미네랄 성분이 담겨 염증 완화며, 관절 이완이며 아무튼 나에겐 좋단다. 무엇보다 스테로이드 주사와 다르게 반복적으로 사용해도 면역력 저하와 같은 부작용이 심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 옆에 있는 한의원이었다. 언니네 커다란 차가 시장 골목에 지나다니기엔 너무 비대했다. 바짝 핸들 가까이 당겨 잡은 언니의 손과 허리를 본 순간, 내비게이터에서 시장 주차장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느라 허둥지둥했다.
결국 ”니 먼저 내려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3시간 만에 땅을 밟았다. 바쁘게 방석과 휴대폰만 챙기고 들어선 입구. 속옷 가게와 과일 가게 사이에 자리했다. 과일 가게 천막을 통과하며 입구로 가니, 계단을 올라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후들후들한 다리로 올라섰다.
‘점심시간이 곧’이라는 말과 달리 너무 친절하게 “따뜻한 물 한 잔 드릴까요” 하며 묻는 간호사님의 말을 사양하고 방석을 뒤에 기대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괜히 부모님 없이 병원에 온 초등학생처럼 뻘쭘해 있다, 언니가 들어서자 반가워 일어섰다.
첫인상은 플리스를 입은 옆집 아저씨였다. 말하기 전부터 한숨이 나오려는 나의 병력을 읊어놓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러지 말고, 지금 맞을래?”
설렁설렁해보이는 모습과 달리, 점심시간을 초과하고도 치료해주려 하셨다.
장장 3시간에 걸쳐 이곳에 오느라 아파진 허리에 바로 급효약을 때려 붓는 건 대환영이었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가림막 너머로 대용량약침을 준비하는 간호사님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의원 환자복 지퍼가 열리고 이곳저곳 약물이 근육 사이로 시큰하게 들어왔다. 온몸이 한꺼번에 얼얼해졌다.
“그래도 잘 맞네”
한번 나와서 걸어볼래?
어떻노“
원래 경주분이라 그런지 사투리가 낯익게 들렸다. 휘적휘적 병원 침대들 틈 사이를 왔다가 갔다 해봤다. 음…. 잘 모르겠다. 그냥 얼얼하고 벙벙하다.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며 사회적인 답변을 하고 말았다. 조금 누워있다 다시 일어나니 기운이 빠져버려 다리를 붙잡고 침대에서 나왔다. 한의원 치료는 생각보다 힘들다. 피곤하고.
언니와 나를 배웅하러 원장님이 나오셨다.
“그래도 다행이네. 항생제 너무 오래 먹고 장 다 망가져서 여기 오는 사람들 많다.”
이미 나도 장은 망가졌는데. 내가 다행인 몸이 맞나. 갑옷으로 둘러싸인 투구벌레처럼 위로의 말도 튕겨 내버렸다.
뜬금없이 뚝 떨어진 이곳에서 할 일이라곤 전혀 없었기에 매일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기로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하루 중 중요 업무가 병원 가기라더니. 딱 그 모습이었다. “취준생 병원으로 출근하게 되다! “이건 웹소설 제목도 아니고.
숙소 오피스텔이 바로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김없이 패딩 모자에 마스크, 장갑까지 꽁꽁 싸맨 차림을 하고 한의원에 도착했다. 벌써 3일째였다. 오늘은 전침이나, 부항이 안 아프길 빌면서 누웠다. 선생님이 산책할 때 몇 분 걷냐고 물으신다. 10분이요.
”그럼 오늘은 30분을 한번 걸어봐.
네? 어 근데 30분 걸으면 아픈데….한번 해봐 봐“
오늘은 30분을 걷는다.
30분. 2년 동안 넘고 싶었던 숫자다. 가까이라도 가고 싶었던 숫자다. 어쩌면 1시간을 기준으로 삼았으면 더 걸었을까.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산책하는 시간. 그 숫자가 가능할까? 여전히 기대감은 없었다. 걱정만 있을 뿐.
점심먹고 산책하는 시간. 긴장감으로 뻣뻣하게 발을 내디뎠다가,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휴대폰을 한번 꺼내 시간을 봤다. 5분이 지났다. 원래라면 숙소 방향으로 몸을 틀었을 시간이다. 마음 속으로 응원을 하곤 조금 더 걸었다. 다행히 10분이 됐다. 여기부터가 진짜지. 내 세상에 없던 공간이다. 불가능의 영역이란 무의 공간과 같다.
앞으로 더 나가며 감각으로 발이나 허벅지, 종아리를 더듬어 훑어봤지만, 나쁘지 않았다. 살짝 불편했지만 내가 아는 그 통증이 아니었다. 나를 끙끙거리게 할 그런 통증.
점점 주변이 더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대화하며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점점 몸이 두둥실 뜨고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사랑스러운 업비트에 브라스가 돋보이는 음악이 뒤로 깔리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배우들이 단체로 군무를 추기 시작한다. 춥고 희멀건 도시에 핑크빛 빛깔로 보정도 깔린다.
“여러분~ 제가! 지금! 걷고 있어요”
제가 지금 걷고 있다고요!”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막아서고는 2000년대 속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같은 목소리로, 작위적인 웃음을 휘날리며 뛰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숙소로 들어와서 누구에게든 이 사실을 내 입 밖으로 터뜨리고 싶었다. 얼른 ‘언니님’이라고 적힌 이름을 연락처에서 찾았다.
“언니야 내가 30분을 걸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전화를 끊고나서도 흥분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3일은 30분의 행운이 사라지기 쉬운 시간이었다. 근육과 그렇게 뒤엉켜있던 신경은 쉽게 헤어지질 않았다. 한번 헤어졌던 커플이 다시 붙기 쉽듯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30분이 25분으로.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추나를 시작했다.
언니와 나의 전화 분위기도 며칠 전과 사뭇 달라졌다.결국 운동을 해야하는 거라며 툴툴 댔다. 이곳에 오기 전에 갈등이 있었던 주제를 다시 꺼내버렸다. 지금이라도 이만하고 내려가서 운동해야겠다는 말도 안되는 심술이었다. 얼마 전 까진 수중에도 없던 30분이란 금덩이가 사라질 것 같은 초조함이 날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