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의사에게로 가는 원정 치료
언니가 아침에 갑자기 말을 꺼낸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 뭔데~“
무슨 말이 튀어나올까 두려워져, 괜히 장난스럽게 눈을 흘겨본다.
"아니 별 게 아니라
한의사들 보는 게시판에 허리통증 치료 강의 모집 글이 있더라고
그런데 치료법이 되게 효과적인가 봐.
어떤 70살 할아버지도 갔다가 하루이틀 만에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하고"
“아니 그럴 수가 있나?” 여전히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흘러갈까 가늠하며, 반신반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분이 통상적으로 투여하는 약침의 5~10배 정도, 대용량으로 주사하면
근육하고 신경 사이에 생긴 유착을 바로 풀어줘서 괜찮아진다더라고. 그래서….“
드디어 결론이 나오려 한다.
“니가 거기서 한 몇 주만이라도 치료를 받고 오면 어떤데”
응?
거기가 어딘데?
경기도 하남.
그냥 에어비앤비 이런 거 잡아가지고…
언니의 목소리는 뒷전이고,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입에서 준비 땅! 과 함께 마구잡이로 튀어 나가려던 말들이 일제히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선다.
하남? 경기도? 여긴 안동인데. 3시간 거린데
혼자서 지낼 수 있을까? 일단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안되는 이유를 하나둘 다 꺼내고도 저 아래쪽까지 남은 건, 운동이었다. 운동센터를 집착적으로 다니고 있었다. 아침 10시 반이면 센터에 갔다가 돌아와서 3시쯤에도 맨몸 근육 운동을 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빼놓고. 심지어 PT선생님이 오후에는 스트레칭만 하라며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참이었다.
“아 그때 꾸준히 운동을 했더라면“ 같은 후회의 통곡에 갇혀 있던 내가 운동할 수 있는 몸이 되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데. 벼르고 별렸던 그 마음만큼 꾸준히 하려고 최선을 다해 내 몸을 컨트롤 중이었다.
“아니 봐바라. 운동은 꾸준하게 오랜 시간이 쌓여야 되는 거잖아. 근데 이건 몇 주 만에 확 효과가 나온다니까?”
“어쨌든 운동 안 하면 결국 그 효과가 다 빠지는데?”
“그러면 그때 운동하면 되잖아? 지금 운동 조금 안 한다고 확 나빠지고 그러지 않는다고. ”
“전에 안 해서 나빠졌다니까?”
나의 치료라는 목표는 같은데, 우리의 말은 막 부딪혔다. 각자가 보는 세상이 다르니 어쩔 수 없었다. 각자 느끼는 것도, 확신이 드는 것도 다르다. 언니의 단호한 눈빛에 그 세상으로 끼어들어 가보기로 했다.
나는 경기도 하남에 먼저 올라가서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부전여전, 나랑 비슷한 통증을 앓는 아빠도 엄마랑 같이 나중에 올라와 일주일간 치료를 받고, 또 인천으로 옮겨, 한약을 짓는다. (언니의 열정이 또 새로운 한의원을 알아냈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나를 언니 집으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간다.
이게 우리의 대장정 계획이었다.
잠깐, 그럴 거면 언니에게 내 세상도 한번 끼워넣기로 했다. 다른 지역 병원 치료를 받는 세계의 문이 열렸으니, 내가 선망하던 동탄의 B 병원도 예약하기로 했다.
나는 당시 B 병원에 오묘한 팬심을 갖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심정을 대변해 주는 사람에게 빨려 들었다. “힘들죠?”라고, 말해줬던(물론 노래로) 에픽하이에게 내 사춘기를 다 내줬다면, ”걷기만으로 허리 통증 나을 수 없다!”라고 단언해 주는 사람의 영상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보이는 그의 성격은 세상 까칠해 보였다. 내 말대로 안 하다가 꼭 난리가 나는 환자가 많다고. 그래 놓고, 자기한테 따지니까 어이가 없다는 평하는, 준수하지만 퍼석해 보이는 얼굴은 꽤 스트레스로 시퍼레 보였다. 난 그런 환자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은 이상한 복종심이 들었다. 동시에 똑같은 민폐 환자로 찍힐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한때 그 병원 근처에서 방을 잡고, 치료를 받겠다며 발끈했던 때도 있었지만, 요리도 청소도 어려운 내겐 비현실적인 아이디어일 뿐이었다.
여전히 B 병원으로 방문은 입장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콘서트장에 괜히 와본 어떤 팬의 마음과 비슷했다. 치료까진 어려울 걸 아는데 ‘한번 얘기라도 들어보자‘ 싶었다.
언니가 알아낸 하남 한의원이 치료 기간을 2주로 잡았다면, 동탄은 6개월이었으니, 천지 차이였다. 걸을 수 있는 몸이 될 때까지 외출도 자제시키는 치료 방식이었기에, 독방 감옥 이미지가 저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목적지는 그곳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계속 남아있었다.
어쨌든 우린 각자 덕질하게 된 의사와 약속을 잡았다. 마치 아이돌 팬 간의 기싸움 같기도 했다. 이번 주 음악방송은 우리 오빠들 거야. 내 병을 치료해 줄 사람은 바로 저 의사야
가는 건 정해졌다. 가는 길이 문제였다. 조건은, 10분밖에 못 걷는 몸이다. 환승 거리가 10분을 넘는지를 알아내려 KTX에 전화했다, SRT에 전화했다, 뺑뺑이를 도는 모습에 언니가 결국 장거리 운전을 결심해 줬다. 여행 비지엠에, 나의 진로며, 치료며 이것저것 열변을 토하며 오니 걱정이 무색하게 3시간이 가뿐했다. 생각보다 아늑한 오피스텔에서 야무지게 닭죽과 닭칼국수까지 배달시켜 먹고, 언니를 배웅했다. 얼마만의 적막함이 찾아왔다.
의술은 과거엔 주술과 같은 개념이었다. 질병은 고통이고 치료는 신비였다. 권력, 명예, 부 이전에 건강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삶이 없다. 차라리 죽음에 가깝다. 아니 죽고 싶어진다. 그런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의사다. 그러니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봤던 영화, ‘하이파이브’에서 초능력을 갖게 된 교주가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는 방식 역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이 된다. 이 사람은 좀 다르다고.
’이상 없다.‘
’좀 이상하다.‘
이런 말을 했던 의사들 틈에서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눈물 나게 반가운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기본적으로 불신이 있건만 혹시나 한다. 한 차원을 건너 이곳에 왔다. 내일 나는 추앙하게 될 의사를 만나게 될까? 아니면 또 회의 어린 불신으로 빠져들까. 혹시 모르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