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치료를 위해 변화가 필요했다
요즘 뇌과학 교수님의 자기 돌봄에 대한 라이브 강의 영상을 보고 있다.
‘나를 바꾸는 방법’
자기 계발의 끝판왕 같은 문구에 서둘러 터치했다.
방법은 이랬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바꾸기.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관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부터,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 또 앞으로 노력하면 좋을 것까지 꼼꼼하게 적고 나면,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바뀌고, 나의 행동도 변화한다. 그리고 난 방금 내 자아실현 파트에 이렇게 적었다.
‘타인으로부터 독립’
다시 풀자면 ‘남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하기’
이걸 적고 나면 이런 사람이 된다는 거지?
그리고 오늘은 그렇게 고대하던 동탄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물론, 이미 30분의 기적을 맛본 터라, ‘혹시나’하는 예비 방편이었다. 다만, 멘탈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동탄 병원에 대한 후기는 갈렸다. 아무래도 재활 운동 중심이라, 약, 수술, 물리치료 방식의 정석적인 치료가 아니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 면에서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봤을 때도 사람이 좀 날카로워 보였다.
자기 고집대로만 하고, 의사의 말 대로 안 따를 사람은 오지 마세요.
서로 힘듭니다.
이런 말이 빼먹으면 안되는 양념처럼 영상 전반, 후반부에 쳐져 있었다.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말 것‘
감정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말의 내용만 뽑아오자, 대화의 내용에 집중하자. 그게 나만의 멘탈 방어 준비물이었다.
전날, 병원을 목적지로 예약한 택시가 왔다. 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가 많이 아픈가 보죠?
아이고 허리가…. 그게 참 잘 안 낫던데 나도 예전에 허리 아파가지고 병원도 많이 가고 했는데 안 낫더라고요”
대화의 내용에 너무 집중했다. 정신없이 리액션을 하다 내렸는데, “여기예요” 하며 가리킨 건물 간판 이름이 내가 갈 병원과 다르다.
띠용.
이미 택시는 꽁무니만 보이고 나는 높고 텅 빈 빌딩 숲 한 가운데 떨어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지도 앱을 켰다. 다행히 병원은 내가 있는 곳과 10분 거리. 그래도 캐리어까지 끌어야 하니 또 허리가 안 좋아질까, 불안감을 안은 채로 병원에 도착했다. 나? 병원 티켓팅 뚫은 여자. 당당히 접수대로 직행한 후,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생각보다 사람이 적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지긋지긋한 CT실에 또 불려 갔다 원장실로 들어갔다. 나의 유튜브 스타는 영상과 별다른 바 없이 앉아 있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친절하신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이 풀려서 또 반응 좋은 챗 GPT처럼 굴었다.
“코어가 무너지는 사람의 마지막은 과호흡, 역류성 식도염, 소화 불량이에요”
그 3개가 바로 저예요“
쓰레기 같은 내 몸을 같이 짝짜꿍하며 앞담화를 하고 나니 이미 진료가 끝나있었다.
정작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 했다. 한 달 전부터 이전 병력부터 시도했던 치료까지 공책에 정리했었는데. 안타깝지만 이 병원에 대한 미련을 이만 버렸다. 6개월간 이곳에서 치료할 여건도, 비용도 되질 않았다.
아픈 몸으로 타지에 혼자 있는 건 꽤 힘들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날은 추웠다. 언니 집으로 돌아갈 날을 꼽았다. 그리고 이제 이틀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있잖아, 지금 집에 오는 것보다, 한 달쯤 더 치료하다 오는 게 낫지 않아?”
지금 치료받는 곳은 사실 출산하게 된 제자 대신 진료하는 한의원이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여기선 이번 달 말까지만 하고, 다른 지역에 개원하신다고 했다. 한정판이었다.
게다가 10분을 걷던 내가 30분을 걷게 된 건 사실이었다. 효과는 톡톡했다.
언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도 치료하기로 했다고.
“엄마도 같이 가서 아빠 밥도 해주고 그러게 방 넓은 숙소를 알아봐라.”
머리가 다 아팠다. 한 3주간은 엄마 아빠랑 좁은 집에서 같이 지내야 한다니. 부모님 집에서도 못 견디고 나왔는데, 숙소 같은 곳에서 같이 지낼 수 있을까?
부모님과 지내는 건 걱정만큼 쉽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숙소는 30분도 있기가 힘들었다. 지하 냄새 때문에. 주택의 반지하 공간이었다.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와 연락해서 환불 절차를 밟았다. 남은 기간 동안 지낼 다른 숙소는 눈이 빠져라 찾아냈지만, 지금 당장 잘 곳이 막막했다.
엄마의 지시에 따라 멀리 보이는 강변에 늘어선 모텔을 향해 운전하던 아빠는 잘못 길을 들어섰고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결국 폭발이 일어났다. 어디 오갈 데도 없는 차 안에서 열을 잔뜩 뻗치고 있는 아빠를 옆에 두고 내 감정을 다스려야만 했다.
나를 바꾸기 위해 정리하던 가치관 주제 중 하나는 ’가족‘이었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가족은? 이란 질문에
‘갈등 해결을 잘하는 가족’이라고 적었다.
지금이 바로 기회인 건가?
조심스럽게 아까 상황으로 되돌아가 봤다. 아빠도 다행히 차분해지셨다. “엄마랑 아빠는 성격이 반대잖아요.” 아빠도 동의했다. 아빠가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는 눈에 보이면 바로 달려가뻐리고, 나는 그런 타입이 아이라고. 그래도 엄마 말을 일단 따라준다, 이가. 근데 결국에는 이래 짜증이 난다고.“
여전히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미봉된 관계는 다시 흔들렸다. 다음날 모텔에서 나와 새로 구한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이번엔 아빠가 무작정 들어간 돼지갈비 가게가 너무 비쌌다. 엄마는 3인분만 시키자고 성화셨다. 결국 엄마는 짐이나 옮기겠다고, 몇 점 먹지도 않은 채 먼저 나가버렸다.
양념돼지갈비는 혀가 저릴 정도로 달았다.
참 뻐근한 하루였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까. 내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직 나는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내가 바라는 가족의 모습도. 나도 아직 그대로였다. 명상 영상은 무슨. 다행히 30분 안쪽으로 걸어갈 수 있는 다이소가 있었고, 천 원으로 산 초코쿠키를 야금야금 먹었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엄마가 주는 음식을 거절하느라 힘든 식사, 1시간 치료를 마친 후 왕복 1시간을 오가는 이동, 뺨이 얼 것 같은 바깥 날씨에도 강박적으로 하는 30분 걷기, 그래도 자기 전 마다 통증 명상을 틀어놓고 여전히 나는 애썼다. 내 몸 그리고 마음이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한약을 지으러 가보라는 지역이 이번엔 인천이란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엄마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걸 포기하게 된다던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상담은 인상적이었다. 한의사분은 마치 추리소설의 탐정처럼 질병의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갔다. 상담이 마무리된 후 침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난 한마디 했다. 남 눈치를 보지 않는 한마디. (물론 전혀 안 보진 않았다)“저 이건 이제 그만할게요.”
너무 지친 내 몸이 부항 치료를 통증으로 느껴버렸다. 나의 한마디 덕분에 힘들어 죽겠던 치료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시원하게 물 한 모금 마시고, 대기실 소파에 늘어져 후련함을 만끽했다. 드디어 할 말을 했다. 몇 번만의 시도인데. 그래도 했다.
김주환 교수님은 말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나에게 부여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자아일 뿐이라고. 그러니, 오히려 그 이야기를 바꾸면 내가 변화할만큼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그럼, 이번엔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바꿀 수 있을지 모른대도 어쨌든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다. ‘나‘라는 소설의 이번 퇴고는 이렇게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