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탐정과 허리 통증 용의자들

허리 통증의 원인을 밝혀내다

by 림보

사건은 벌어졌고 인천 거점으로 활동하는 탐정은 나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행위를 탐문하기로 했다.


똑똑,


첫 번째 용의자가 들어선다.


자신의 이름표에 ‘감정’이라고 쓴다.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건네준 용지엔 감정표정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 9가지 감정 중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감정 3개를 골라보세요. 한의원에서 받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심리 테스트 같은 질문에 어리둥절한 채로 골라본다.



우울하다/ 참지 못한다/ 불안하다


자, 심문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다음은 목격자라고 할 수 있는 용의자가 들어왔다.


어떨 때 허리가 많이 아프죠?

이미 레퍼토리가 수백 번 정해진 답. “걸을 때랑 서 있을 때요.”


“어떻게 아프죠?"

음...종아리가 무겁다…. 그러면 발바닥이 뭐하나 덧씌우고 걷는 느낌도 들고?”


“헉 맞아요”


이미 너 같은 놈들은 신물 나게 겪어봤다는 듯 내가 말로는 꺼내지 못한 느낌을 척척 문장으로 만드신다.


“발도 좀 따뜻하게 했으면 좋겠고?”

의도를 유추하기 어려운 질문들도 이어진다.




수면’이라는 이름을 단 용의자가 떠밀리듯이 조사실 들어온다.


“잠이 안 온다는 게 막 생각 많고 새벽까지 말똥말똥하고 이런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더워서 그런 거죠?”


“어…. 어…. 네.”

유도신문에 당하고 말았다. ‘나 진짜 잠 안 오는 거 맞는데…. 아닌가?’ 점점 생각할 틈도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놀이공원 알바생만큼이나 엄청난 말 빠르기다.



다시 탐정 조수가 문을 열고 안내한다. 오늘 마지막 용의자입니다.


“변은 시원하게 보는 게 일주일에 몇 번 정도에요?”

“음…. 잘 없는데요….”

“없다고?”


숙여있던 얼굴이 확 올라온다. 눈빛이 번뜩였다.


마침내 쫓던 범인 꼬리가 잡혔고, 병이 버둥거렸다. 선생님은 금세 낚아챘다.

엉망이 됐던 머리를 쓸어올리고 특유의 단호한 어투로 정리를 시작했다.


자, 지금 보면 첫 번째는요 천성적으로 말단까지 기운이 가질 못해요. 여기 사진 보면 가슴 쪽만 빨갛잖아요.


오자마자 찍은 적외선 체열 검사기 사진을 보여줬다. 가슴엔 시뻘겋게 불이 나고 아래쪽으론 점점 파래지다가 손과 발에 가서는 아예 끊겼다. 발이 너무 시리긴 하다.



두 번째는 변 문제.

내장 기관이 아래쪽으로 통하질 않아요. 그래서 배에 가스가 차고, 독소가 차서 앞으로 근육이 당겨지니까 허리까지 아파지는 거죠.

2년간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일타강사처럼 10분 만에 내 병을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하는 곳은 처음 봤다.


나도 머리가 띵했다.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내가 정말 변을 시원하게 본 적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적어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큰 거 보고 나왔다고 하면 친구들이 왜 이렇게 빨리 나오냐고 했던 기억이 났다.

같이 들어온 엄마도 신이났다. 선생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엄마 기억 속 내 모습을 마구 꺼냈다.


“쟤가 막 밥 먹다가도 화장실 갔다오고 이랬다니까요.”


어쩔 땐 너무 흘러넘쳤고 또, 너무 꽉 막혔었다. 그리고 난 문제인 줄도 자각하지 못했다. 20년간 자각하지 못했던 사투리를 누군가 지적했을 때처럼 화들짝 놀랐다. 너무 오랜 시간 이렇게 살아왔다.


“화장실 갔다오면 허리 컨디션은 어때요?”


지렁이같이 작은 덩이라도 몸에서 수욱 빠져나가고 나면, 몸이 탁 풀리고, 꽉 뭉쳐있던 다리도 가벼워지는 느낌. 이제서야 생각났다.



곧 본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연휴를 지나 배송해 온 한약과의 죽음의 이인삼각 레이스가 시작됐다. 병은 소멸하지 않으려 패악질을 부렸다. 통증은 분명 줄었지만, 잠이 안 오고, 힘도 없고 역류성 식도염은 끔찍했다. 일주일만 더 먹어보고 지켜보자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내겐 일주일’만’이 아녔다. 잠을 못 잔 날은 땅에 처박힌 채 사는 기분이었다. 몸은 흐물텅 문어가 되어 책상에 늘어졌다. 아무리 '환승 연애' 같은 도파민 폭발 영상이 틀어져 있대도 자꾸만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차라리 스르륵 졸음에 빠졌으면 말도 안 했을 거다. 정신은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역류성 식도염이 있는 내겐 한약도 치명타였다. 신맛, 매운맛이 없는 한약은 없었다. 게다가 물도 한 모금씩으로 나눠서 마셔야 했던 시기였다. 꿀꺽 꿀꺽 꿀꺽은 절대 안 되고, 무조건 꿀꺽. 단 한 번의 목 삼킴만이 허용됐다. 목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 다른 부위의 통증을 자극하기도 했다. 컴퓨터 좀 한다고 키보드를 치면, 뭔가 모를 뜨거움이 가슴으로, 목으로 올라왔다. 걷기 운동도 약을 먹은 지 40분은 지나야 가슴이 자극받지 않았다.



“간식을 아예 끊어봐.”


하남에서 치료했던 한의사분의 또 다른 제자가 알고 보니 본가 지역에 있었다. 그분 한의원에서 진료하는 도중 나온 얘기였다.


“근데 공복도 역류성 식도염에 안 좋지 않아요?”

“이게 그렇다니까. 병 나숫는다고 하는 것들이 사실 안 좋아지는 게 많다.”

“4시되면 배고픈데 어떡해요?”

“참아야지 뭐.”


첫날 진료 한번 만에 이 한의사 아저씨와 거리감이 확 줄어들었다.



간식 참기는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먹으면 아프고, 안 먹으면 배고파 죽겠고. 피곤한 날엔 책상 모퉁이에 겨우 기댄 채 주린 배를 부여잡았다. 이미 식사 자체 종류까지 까탈스러워야 했고, 한숟가락의 과식도 금물이었다. 안타깝게도 통제는 폭발을 의미했다. 점점 못 참고 눈 돌아가듯 간식을 먹거나 화가 난 채로 저녁밥을 끝없이 먹는 일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분노가 무시무시했다. 밥 먹을 때면 예민함이 극에 달했고 고3 수험생처럼 집안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어버렸다.



반대로 한의원 가서는 또 많이 울었다. 하루 만에 거리감을 좁힌 이 한의사 아저씨는 자꾸 남의 마음을 헤집었다.


“말해봐라. 지금 뭐가 제일 힘드노”

“한약을 먹기가 힘들면 용량을 좀 줄여달라 해. 내가 볼 땐 니한테 약이 좀 센 거 같은데”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은 명탐정 코난이 범인을 추리해내는 장면이 생각날 정도로 명쾌했다. 다만 범인이 잡히는 과정은 지난했다. 세네번은 약이 다시 도착했고 ‘일주일만 먹어보자’의 결심도 점점 무감해져갔다.


결국 나의 지속적인 호소에 언니까지 약 지은 병원과 통화에 나섰다. 물론 나도 피드백을 한다고 했지만, 한의사인 언니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다행히 용량을 줄이고 나서 컨디션은 월등히 좋아졌다. 통증이 줄어든 행복이 그제야 느껴졌다.


드디어 병이 기력을 소진해갔다. 그건 아주 조금씩, 또 어떻게 보면 순식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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